::禪達茶會

가이락기락야

나무에게 2024. 3. 23. 08:08

 

소엽 자단 새싹

 

가이락기락야 可以樂其樂也




술을 즐긴다는 건 술 마시는 순간을 놀이처럼 여겨 후련함을 만끽하고자 함이다. 세상 모두가 제 뜻이 서려 제 안에 가두어 둔 생각만 넘친다. 내 것을 너에게 주고 네 것을 내가 얻는 데 드는 공력에 비해 더디고 둔하다. 

움츠렸다 뛰듯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음흉하다. 상대의 심리를 읽고 헤아려보는 따스함이 아쉽다. 정감은 그렇게 탄생하여 진한 여운이 되고 감동으로 적립한다. 그게 아니라 역으로 제 이로움을 챙기려 사람의 허술함을 좇는다면 반드시 후환이 있어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이 계속 누적된다. 

내 것은 안으로 감춘다. 아니다 내놓을 게 없다. 그러니 갈무리도 없다. 제 하는 많은 일정과 약조는 제 것이다. 다만 순간을 놀이처럼 순수하였던 동일시의 관계가 달라졌다. 그러니 불편하다. 쌍방이 일방으로 치달리는 건 관계의 혼돈이다. 혼돈에서 정립되는 정감은 없다. 다만 회한만 는다.

아무리 홀로라도 즐길 수 있다. 아니다, 홀로여야 웅숭깊다. 풍류는 혼자의 놀이다. 내놓아도 지닌 심성에 입각한 이로움만 취할 뿐이다. 그러니 공유하여 같은 생각으로 한 방향을 나설 수 없는 이치에 이른다. 山水遊觀 惟心無私累 然後可以樂其樂也 이다. 홀로 산수를 유람하는 건 오로지 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 마음은 제 이로움만 추구하는 누적된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이다. 그래야 그 즐거운 바를 즐길 수 있다. 권근의 '騎牛說'에서 배운다.

노는 수준을 맞출 수 없으니 신선과 벗하다 제 혼자 즐길 수밖에 없다. 신선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으니 외견상 혼자여도 내용으로는 늘 벗과 함께 함이다. 그 벗은 나를 항상 끝없는 깨우침과 우주의 섭생으로 이끈다. 세상의 '하고자 함'이라는 欲의 세계에 마음을 매달면 慾이 되는 법이다. 욕심은 그래서 개운하지 않다. 아프면 깨닫는다. 더 아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