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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멀고 가까움

나무에게 2013. 12. 27. 15:13

다산, 멀고 가까움 / 온형근

 



일곱 살에 멀고 가까움의 다른 풍경을 읽고
유배지에서 그 이치를 통렬하게 써냈지요
다시는 말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지요
나를 지나가는 세월을 읽어내지 않았고
책 속에 글이 쏟아지는 광채를 줍고 있었지요
화성을 설계하고 거중기를 만들었던 공덕까지도
계곡물을 끌어다 바닷돌 삼신선도를 적셨어도


차를 우려 맑은 탕색으로 거울을 삼아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채근하는 일은
남인이며 노론인지를 밝혀내지 않는 일이었고
어둡고 컴컴한 밤길을 걷는 일에 익숙해졌었지요
빠져나갈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이 하늘이었건만
말을 하고 싶은 데, 말할 수 없는 고독한 한숨이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예언했었지요


그러니까 군주는 멀고 가까움이 아니라
귀한 곳에서 추락하여 흔적도 없어지는
마치 가마솥처럼 달아 올랐다 식으면 차거워지는
무쇠의 두께에 정념을 숨겨 두는 영혼인지라
다르기에 눈과 귀를 가리고 숨긴 신하의 가슴에는
방화수류정의 달빛과 강진만의 빛살이 눈부셨겠지요


그러나 서정적인 풍경을 말하지 않았지요
그 절실함에 도저히 다가갈 수 없어 책을 썼지요
사도세자가 죽은 해 태어난 다산
화성 곳곳 다산의 발길 닿지 않은 곳 없었을
군주의 고민과 다산의 받들어 모심이 만났을
이 골목 저 골목 수런대는 들뜸과 젊은 기상들
한번은 사랑을 위해 심장 달궈 터질 것 같은
오래된 침묵 속에서 바람과 햇빛이 터져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