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함께

핀오크와의 만남-프롤로그

나무에게 2015. 7. 6. 22:36

<!-by_daum->

1993년 3월이다. 핀오크를 파종한 것이.

핀오크 종자를 수입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였던 한 해가 있었기에 10 드럼통의 핀오크 종자를 준비할 수 있었다. 10 드럼통의 도토리만한 핀오크 종자가 모두 몇 개인지를 알기 위하여 간단한 산수를 하였다. 1미터 床(bed)에 가운데 1개 양쪽 3개씩 7개를 파종하고 앞 뒤 간격을 10센티미터로 결정하였다. 그러니 총 종자 알 수와 파종량이 계산되어지고, 면적에 맞는 묘포 설계가 가능해진다. 이때의 설계 경험과 전임지 이천에서의 설계 및 구획, 파종, 재배치 식재 등의 경험이 아직까지 내게 가장 큰 재산임에 틀림없다. 아무나 이런 직접적인 고민과 실천이 가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존 묘포장에 육성되고 있었던 나무들을 이식해야 한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는 묘포장은 삽목상, 파종상, 육성묘, 조경수 규격 도달목, 묘포장 경관을 돋보이게 해주는 주도로 주변의 조경수 성목까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몇 군데를 이식하고 고쳐서 파종할 일이 아니다. 전체를 옮겨 심고 전체에 핀오크 파종을 하고자 함이다. 힘든 일이고 지난한 과정이 예고 된 것이다. 서른 살 전반기의 경력 7년차에 접어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나무에 대한 정열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교내 곳곳에 조경으로 필요한 성목을 먼저 옮겨 심고, 일부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하여 학교의 빈 땅을 찾아 줄 맞춰서 육성목으로 식재하였다. 관목과 파종묘들도 임시로 가식장을 만들어 멀찌감치 가식하였다. 이렇게 자리를 비우는 공사에 매달리며 지쳐갔다.

 

바쁘고 긴박하게 움직였다.

식재 간격에 맞춰서 심은 육성목들이 그 후에 조경 업자들에게 많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93년도에 2학년이고 3학년이었던 내게 조경을 배우는 학생들은 너나없이 굴취, 운반, 식재 과정에 함께 하였다. 벅차고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었지만 내 열정과 의지 가득한 확신은 살아 움직이는 생동의 아이템이었고, 학습 콘텐츠였다. 이것이 학생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학생들도 눈이 빛나고 있었다. 과연 경제성이 있는가를 의심하는 학생들에게 틀림없이 터진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시대에 필요한 나무를이 개발하여 준비하는 것은 나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예측이며 자신감이다. 지금 그때의 움직임과 콘텐츠를 되살려 다시 하라면 이미 변해버린 많은 상황들로 시작조차 못하고 삐걱댈 것이다. 그러나 여전한 것은 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내 안에 유전자처럼 심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출처 : :::사이SAI:::조경문화교육공동체
글쓴이 : 나무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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