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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의 깊이

나무에게 2018. 1. 27. 04:33

 

비 오는 날 우산으로 나를 가린 채

광교산 요모조모 살피며 고요를 즐기다

사방 빗소리

오만가지 잡것들이 오직 하나로

올곧게 정렬되어 직진하는 순간에

덜컹 소스라치듯 인기척에 놀라는데

혼쭐 빠지고 심장 두어 쪽 자빠진다.

 

펄펄 내리는 그해 정월 이 밭 저 밭

쌓인 눈 풍요로워 들창문 여닫고

냅다 건넌방 문지방 넘어 주섬주섬

산릉선까지 거침없이 환하게 거닐다

밤새 산바람과 눈결이 교접하여 이뤄낸

울퉁불퉁 내고 들어간 돌무덤 흙 구멍

찬란하여 평탄한 들판이라 내디디며

아득하게 모르는 깊이에 빠져 누웠다.

 

 

 

-온형근, ‘인기척의 깊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