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함께

찰피나무 분분한 꽃날림

나무에게 2015. 7. 1. 15:39

찰피나무 분분한 꽃날림 / 온형근

 

 

 

 

꼭 여기여야 만난다. 이번에는 청계사다.

그때 치악산 구룡사에서도 그랬고, 서울농대 수원캠퍼스에서도 그랬다. 처음 만난 듯 늘 새롭고 고개 쳐들고 숙이질 못한다. 벌들은 또 그리 왱왱대며 주위를 맴도는지 늘 기억 속에 벌과 꽃이 함께 한다. 

 

찰피나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저절로다.

어느 하나 놓칠 게 없는 나무다. 수형이 반듯하고 꽃이 밀원이라 벌에게는 꿈같은 보금자리에 놓인다. 피나무꿀이 그래서 인기다. 인기라고 하면 할 말이 더 있다. 예전에 군대 제대하는 사람들 손에 피나무 바둑판 한 개씩 들려져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대열에 끼지 못하였겠다. 아울러 피나무는 종류가 매우 많지만, 목탁에 사용할 정도의 알 큰 나무는 찰피나무가 제격이다.

 

분분한 꽃망울이 활짝 피어 있을 때 쓰러진다.

찰피나무 꽃 핀 모습을 보는 것은 지복이다. 복이 어느 정점을 찍고 돌아나올 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시절을 기억하고 메모하였다가 일부러 서둘러 가지 않는 한, 미처 생각지 않았다가 만나는 기쁨이란 속으로 신나서 들뜨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야 싱글벙글이지만 괜히 이상하게 여길까봐 피부를 이루고 있는 세포마다 벙글어지는 들뜸의 대상이 내 자신이라는 데에서 쓰러진다.

 

사찰마다는 아니지만 마음 깊은 생각을 본다.

쉽게 모든 사찰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찰피나무는 의식 있고 마음 깊은 생각을 지닌 선지자와 만나는 기분이다. 누군가 나무를 알고 구하려고 마음 먹고, 어디선가 가져와 심었다는 것이다. 분분한 꽃망울을 보려고 했겠는가. 가을이면 프로펠러 달린 열매가 핑구르르 날리면서 떨어져 사방을 뒹굴면 그것을 청소하느라 투덜댈 동자승이야 그 깊은 나무의 결을 모르겠지만, 얼마나 대단한 고마운 생각이었겠는가.

 

찰피나무를 만나면 그래서 우쭐해진다.

꽃 분분 피어 심장형 잎에 가려서 함초롬하게 내려 피고 있는 찰피나무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내가 너를 바라봄이, 기대함이 무엇이었겠는가를 다시 생각한다. 평소에 보고 싶어했던 게 분명하지만 일상에서 아무 이상없이 불편없이 지냈다는 게 스스로 송구한 입장이다.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말하여 키우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만나자마자 빠져들게 하는 것은 나와 찰피나무가 서로를 아쉬워하는 인정에 갇혀 있는 게다. 서로를 아쉬워하는 것은 기대감이고 그래서 서로의 내면이 만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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