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2024. 1. 25. 14:23

솔바람 숲에 눕다

온형근

 

   북저남고의 비스듬한 고구려풍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풍우는 활짝 열린 하늘을 수놓으며 고스란히 솔숲 바람에 미끄러진다. 남쪽 성벽의 단애 굽어보다 어질하다. 동문을 통해 남문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서 두려움은 헤실거리며 풀린다. 성채 안쪽 짙은 그늘을 따라 올라가며 도열한 둥근 강돌의 석환石丸. 제각기 속살로 파고든 접선은 치안을 담보하였다.

   애틋하여 그리워하는 정 흠뻑 담아 잘 만든 콘크리트 정자, 사모정까지만 오르고 말 것을. 조남익 시인의 '온달장군을 위한 진혼곡'을 읽고 나니 시인과 각자와 시주의 묘합이 담대함을 솟구친다. 단숨에 달려 오르는 남한강 북풍에 탑승하여 훌쩍 산성 안을 사뿐히 걷는다.

   말 부려 뛰고 달리면 말의 무릎이 쉬 닳을까. 급정거와 발진을 이겨낼 재간이 있을까. 가장 높직한 남쪽 꼭대기 소나무 군락에서 굽어살핀다. 기울기 열어젖트리는 하단, 두 개의 계단을 갖춘 누정은 무심하다. 오로지 생기발랄한 산성 중앙을 돋움새김한 낮은 구릉 언덕이 동과 서를 사이좋게 나눈다.

   북에서 남으로 굵직한 돌무더기와 흙살로 판돈 삼은 건 소나무 굵직한 줄기의 귀갑龜甲이다. 천년의 배포를 두르고 다시 오백년을 별첨한다. 고깔 솟아난 가운데 줄기 어드메 솔숲 바람에 눕는다. 태화산 줄기 남한강으로 달려올 때, 아침 햇살 눈부심은 주변 산의 읍배揖拜, 포갠 손 놓치지 않게끔 호소하듯 풍광에 새긴다.

   -다시올문학 동인지 2024년 송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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