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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과 감

by 나무에게 2018. 11. 11.

감 따러 오라기에 나선 길
안개 걷히며 활력에 뻗친 감빛이 눈부신데
긴 장대 끝 원형의 철사에 매달린 나일론 봉투
툭툭 철사 걸이로 감을 당기면 쏙 빠지며 담긴다.
무른 감꼭지도 담기고 더러 땅으로 곤두박질
꼭지에 매달린 채 가지까지 덤으로 따라오는데,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옮겨갈 때쯤 뒷목 무겁고
촉도 무디어 어디가 철사이고 감꼭지 인지
감도 느려져 감 조차 앙탈 지게 버틴다.


까치 떼에게 남길 감은 나무의 우듬지를 지키고
간섭에 부러지면서 넘어가는 감나무의 가지는 
그리하여 그의 천성에 다다르는 게 분명하다.
촉이 아무리 날카로워 꼭지를 자를지언정
늦은 감이 있어 감나무를 있게 하는 것을
지키지 못해 툭툭 털어내는 일 기꺼이 접수하고
그래도 촉보다는 감이 은은하여 산뜻한 것을 알아
감 껍질의 두꺼워짐에서 홍시의 속살이 익는다.


-온형근, ‘촉과 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