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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78

내원재 찬란 내원재 찬란온형근      원림 입구 내원재 들어가면서 첫 벤치에 잠시 머문다.    아침 빛나는 햇살 등에 업고   흔들리는 대숲과 큰 나무의 잎새는 알게 된다.    태곳적부터 나를 키우고 다스렸던 건   반짝이며 너스레 치는 바람의 치근덕이었음을    길바닥으로 호수의 바람 소리 치오른다.   청둥오리 가족의 단란한 아침이 파묻혀   내원재 오르는 길의 꿈틀댐이 발바닥을 감친다.    흙길로 찬란한 잎새 춤추듯 흔들리며 스민다.   잠시 어질,   언덕길이 메밀 부침개처럼 포근하고 푹신하다.    내원재를 오래도록 둥지로 삼은   입춘부터 백로까지 멧비둘기 대대로 반긴다. 시작 메모>>조원동 원림의 입구는 가파르다. 출발의 처음이 가파른 게 좋다. 원림을 크게 내원內苑과 외원外苑으로 나눈다. 내원의.. 2024. 10. 10.
산길로 봄비 산길로 봄비온형근      봄비 내린 고단한 밤들은 산불을 재웠다.​   건조하여 흙먼지 풀풀 날리던 원림   아직 잎이 나지 않은 푸른숲 꾀꼬리 길은   봄비에 파인 가는 굴착의 물길 끊이지 않는다.​   산길의 속살은 백골이었다가 잿빛이더니   실루엣으로 갈아입고 힐끔댄다.   그토록 보고 싶어 안절하더니   어쩌지 못하던 하루 지나고서야   봄비에 쓸린 단단한 속살처럼 괜찮다 괜찮아​   버드나무 연못가로 뿜어내는 연둣빛   빗물 따라 겨우내 쌓인 산비탈 유기물로   물가는 희뿌옇고 탁하게 떠다니는 떡진 꽃길   씻겨 내리는 일이 한결같이 가벼웠었나   벚꽃 나들이 호숫가 인기척으로 몸살이다. 시작 메모>>원림은 참여라는 행위로 완성된다. 봄비 내리는 산길에서 나를 관찰하는 일은 커다란 위안이다. .. 2024. 10. 10.
백차 우전 -섬진다원 백차 우전 -섬진다원온형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화개 장터는 늘 북적인다.   헤식어 볼 게 없을 때 강 건너 광양 쪽 산자락 떠올린다.   속마음 좀체로 내 놓지 않는 차 농사에 진심인 차인   섣부른 숫기라고는 애초에 갖출 생각조차 없는 이    백운산 등지고 섬진강을 내려보는 꽉 찬 차의 마음으로   시대와 격조가 아무리 흔들어도 요동 한 번 않는다.   시끄러운 통화처럼 세상 금방 바뀔 듯 현란한 지절거림에도   묵묵히 듣다가 기어코 차의 전신에 다가서는 사람    몇 해를 몇 밤을 새벽 이슬 마다 않고 녹차 우전을 덖고   어느 해는 황차를 만들기도 했던 준수한 섬진차의 기력   섬진강 벚꽃 필 때, 매화 필 제, 더는 밀리는 주차장 나서지 말자 옥죈 어느 무렵   백차의 세계에 크게 .. 2024. 10. 10.
송홧가루 송홧가루온형근      무슨 사연일까   송화 솔솔 날리는 숲정원    지상에 뿌리내린 모든 광합성이   빗김에 떨어진 송화로 그득하여   이파리마다 문양을 새겨 힐끔대고   청량해진 숲길을 챈다.    이염된 이파리마다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한 태고의 반점은   송화 터뜨리는 어쩌지 못하는 푹신함을   멧비둘기 구슬픔에 발걸음을 싣고   지붕 없는 숲길에 꾀꼬리도 운다.  시작 메모>>숲정원에 송화 가득 피었다. 송화 필 때면 송화를 꿀에 타서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킨다. 목마른 계절이 시작된다. 비라도 내린 숲의 잎새마다 태고의 문양으로 잎맥을 다툰다. 같으면서 달라 힐끔댄다. 광합성을 해야 하는 잎새마다 송화 두툼하다. 깻잎에 가루 입혀 튀긴 두께감으로 푹신하다. 송화 터질 때마다 멧비둘기 구슬프.. 2024. 10. 10.
궁남지 버드나무 궁남지 버드나무온형근      아, 아름다움을 친견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   대부분 그저 백치미를 부리듯   먼 산 응시하는 바람의 상태를 살피는 일인 줄 알았어   어쩌다 바싹 회가 동할 때 응석처럼 생동하다   시무룩해지는 게 풍경의 미학인 것을​   왔다 머무는 잠시도 없이 떠나는 절기가 있는가 하면   존재만으로 구경하다가 흠결투성이라 알게 되는   있고 없음을 나누는 게   애초에 늘어진 버드나무 가는 줄기처럼 흔들리는 것을​   될 줄 알고 대들었다가 어처구니없다고   웃고 마는 우주적 자아가 있는가 하면   안개에 휩싸였다 개이는 동안 부스스 산발을 드러내는   호숫가 산책처럼 습한 나날도 있어​   불어오는 풍문에 방향 잃고 흔들리는 버들잎   연초록 숨결을 나누는 찰나   한순간이 .. 2024. 10. 10.
개나리 꽃 밀치며 개나리 꽃 밀치며온형근      문 닫다 낀 손톱   메밀국수처럼 물드는 동안    개나리 꽃 밀치며 혓바닥 생김의 잎새 파랗게 치고 오른다. 시작 메모>>언제부턴가 개나리의 봄이 화사함을 넘어섰다. 시골 촌스럽다는 한때를,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유전인자를 지녔음으로 바뀐다. 그 선명하고도 범접할 수 없는 빛의 뚜렷한 착색에 찬탄한다. 잿빛 도시의 콘크리트를 한 번에 생동으로 뒤바꾼다. 미세먼지 뒤집어 쓴 농도 짙은 날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김없이 선명하다. 그 한 때를 기다리느라 꽃 밀치며 파란 잎새 치민다. 2024.10.10 -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 연달래 연달래연달래온형근      고개를 바투 세우고   수술과 암술을 활짝   수줍은 듯 당당하게 열어 장하던   ​연달래라.. 2024. 10. 10.
연달래 연달래온형근      고개를 바투 세우고   수술과 암술을 활짝   수줍은 듯 당당하게 열어 장하던   ​연달래라 부르면 좋을 참철쭉​   분홍색 바래 홍조는 사라지고   흔들리며 짓무른 비틀림의 몸짓   소멸의 바람에 춤추며 다가선다.​   천천히 자라니 미모를 ​건져올리기에 허술한데   원각루 주변에서 재잘대며 안부를 나눈다.​​   대답 대신 굽은 소나무 언덕길을 막아서며   뒷켠 솔마당으로 울창한 대숲의 샛길   강바람 포개질까 한쪽 벽 막은   대청마루에 앉아 부용정 연못의 윤슬에   떠나지 못하는 연달래의 화사함을 쐰다. 시작 메모>>연달래는 참철쭉이다. 진달래 피고 지면 연달래가 고개늘 내민다. 수줍으면서 당당한 키를 지녔다. 굽은 소나무 밑에서 홍조를 띤 모습은 미모의 특별한 형상이다. 소.. 2024. 10. 10.
추석 삼대 추석 삼대온형근      멀고 먼 여행처럼 음복주에 취한다.   그이들 다들 없는데도   단어도 잘 떠 오르지 않더구먼 주문처럼 음복   하나 둘 곁을 떠났으니 나눌, 더 따를   혼자 채우고 비우기를 여러 차례   하나 둘 곁으로 다가서니 또 한 잔, 다시 살피는    누군가는 찾아오고 찾고 두리번 댈까   아무 소용 없는 세상의 끄트머리에 스민다.   손주 보러 나가고 싶은데 낮술 얼그레 해   가급적 머뭇댄다.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겠노라   이 찢어지는 가슴 다독거려 움찔움찔    붉그적 푸르적 시작 메모>>고요하였다가 번듯해진다는 건 자주 본 가까운 이들의 왁자함이다. 명절, 그것도 한가위가 접속이 수월하다. 2024.10.10 - [::신작시::/창작|생산] - 평온 평온평온온형근   깊지 않은.. 2024. 10. 10.
평온 평온온형근   깊지 않은 생각 인다.그때는 반갑고 좋아서 바빠굶고 친구 없이 살기로 선언하여딱 한 명 연락 오는 그 이 고요하니굶는다. 좋을 때는 신나서 행복했고먹고 싶은 게 없었다. 나와 만나는 지금은 화려하여먹고 싶은 게 없다.  시작 메모 >>모두 가진 듯 흐뭇한 날들을 접는다.  2024.10.08 - [::신작시::/창작|생산] - 종아리 종아리종아리온형근  놀라서 우주에서 가장 빠른 용수철 누른다.딴딴해진 근육 경련 파르르 떨며 이크 신음,어쩌지 못하는 순간을 미처 사귀지 못한 혈행 미약으로 냅다 혼미해진 탓일까 자는 일ohnsan.tistory.com2024.10.08 - [::신작시::/창작|생산] - 빛바랜 친절 빛바랜 친절빛바랜 친절온형근  잠깐 꽃을 피웠을 때도 주변이 환하지는 않았다.. 2024. 10. 10.
종아리 종아리온형근  놀라서 우주에서 가장 빠른 용수철 누른다.딴딴해진 근육 경련 파르르 떨며 이크 신음,어쩌지 못하는 순간을 미처 사귀지 못한 혈행 미약으로 냅다 혼미해진 탓일까 자는 일을 멈추고 종아리를 어루만진다.짧은 것은 일하는 거라는데 잠잘 때 종아리는장요근 풀어주느라 알람까지 호출한멀쩡한 낮 시간의 깨어있음과는 달라서 밤자리 애쓴 흔적 계통없어 요란 떠나보다창문 열고 여름 밤 폭우 소리처럼 몰려 다니는탄식 몇 줄기 쏟아 붓고 떠나는 집중호우처럼한쪽 발로 한쪽 종아리 안부를 두들겨 노크한다. 시작 메모>>잠은 설치는 게 아니라 깨라고 있다. 종아리 쥐는 깨우는 알람이다. 지나치지 않다고 가끔이었잖아 라고 항변, 놀라 튀어 오르는 건 예정에 있는 여정이다. 놀라지 말라. 두들겨 문을 열고 만난다. 다룰 .. 2024. 10. 8.
빛바랜 친절 빛바랜 친절온형근  잠깐 꽃을 피웠을 때도 주변이 환하지는 않았다.  아팠다가 괜찮았다가 끊임없이 나를 봐 달라는  수습 어려운 왼쪽 허벅지를 파고드는 협착처럼  여러 날을 너와 나는 옹기종기 사는 수밖에 없었지  알거나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 송화가루 분칠하고  여름의 가뭄과 다습이 교차할 때 벌레는 구멍을 뚫고  보잘 것 없는 외면으로 먼 발치였어도 괜찮다 했다.  언덕을 치고 오르는 신선한 바람은 알았겠다.  어디서 보랏빛 생경스러운 이치를 따왔는지  내려가는 길에서 안보이던 게 친절하게 삐죽 내민다.  한 무리 뭉쳐 자라거나 떨어져 있거나,  누리장나무의 열매가 입을 봉하였다 터졌을 때,  저 천의무봉의 표정과 깨끗한 도발이  가히 내 마음에 모셔질 궁극의 도법이 아니겠는가  작가 한마디원림을 노니.. 2024. 10. 8.
조팝나무 조팝나무온형근   새카만 밤중을 조금도 쉬지 않고 눈 내리며 소나무 가지 휘청대던 꼭두새벽처럼금방 빨아 다듬이로 두들긴 엄마의 옥양목을 펼쳐 놓은 듯 겨울 지낸 목화 이불솜 새로 타서 펼쳐 놓았을까 낭창낭창 조청에 버무린 유과였다가 입언저리로 너풀너풀 쌀튀밥이었던 천지를 하얗게 뒤덮은 조팝나무 환하다. 시작 메모 >>조팝나무 꽃이 세상을 환하게 비출때면, 봄이 이미 여름을 향하여 손짓할 때이다. 조팝나무의 꽃이 세상을 환하게 한다는 것은 이처럼 고결한 색상을 내는 게 없다는 의미, 옥양목이 주는 뻣뻣함도 조팝나무 군락은 지닌다.  2024.04.09 - [::신작시::/나무 詩] - 꽃바람 꽃바람꽃바람 온형근 비가 오고 질척댔고 울적했다. 꽃은 피었고 벚꽃은 들떴다. 날 좋은 봄날이라고 벚꽃 명소마다 배.. 2024. 4. 22.
안동 고산정 협곡에서 안동 고산정 협곡에서 온형근 당신에게 다가서는 길이 셀 수 없이 많았음을 우린 서로 몰라도 된다. 어떤 풍파와 그런 가로막음과 저런 깨어짐이 살여울 즐비하였다는 사실조차 알 바 아니다. 하나였던 산줄기 암벽이 터져 헤어졌으니 홀로 외로운 산이어서 고산이고 떨어져 푸른 손짓 하니 취벽이다. 네가 고산으로 나를 부르고 내가 취벽으로 하여금 모래톱을 걷는다. 낙동강은 본선만으로 긋지 않는다. 숱한 지선으로 흐트러지고 헝클어졌다가 남은 물줄기 하나가 아름다운 소나무 협곡을 만나 결기에 찬 행보를 거듭하여 그대를 잇는다. 푸른 산을 향해 두 손 모은 선학대는 맑고 푸른 못 속에 드리워 이리저리 출렁이고 이녁과 별유천지인 고산정 원림을 품는 건 독산(獨山)의 불거진 바위를 등진 나룻배 -2024. 03. 25. 2.. 2024. 4. 14.
꽃바람 꽃바람온형근   비가 오고 질척댔고 울적했다.   꽃은 피었고 벚꽃은 들떴다.   날 좋은 봄날이라고 벚꽃 명소마다 배달 앱은 에스엔에스에 편승하여 빛나게 달렸다.   손주와 나선 가족에게 도시락과 돗자리는 소풍의 절정이다.   누군가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봄날 풍경   그날은 거짓말처럼 사전 투표도 따뜻했다.   자고 나니 숲의 바람이 세차다.   꽃잎 길가에 가득하여 꽃길만 걸으라더니   꽃길이 아니라 꽃바람 날리는 출근이다.   꽃길도 바람이 불면 새길을 낸다.   잎 먼저 나온 산벚나무에게 꽃의 품격을 넘긴다. 2024.04.06 - [::신작시::/나무 詩] - 나무의 떨림 나무의 떨림나무의 떨림 온형근 나무의 새 순은 제 잎 모양을 모른다. 그러니 아이의 입술 내민 삐침이며 심드렁 펼쳐 내기 전.. 2024. 4. 9.
나무의 떨림 나무의 떨림온형근   나무의 새 순은 제 잎 모양을 모른다.   그러니 아이의 입술 내민 삐침이며 심드렁   펼쳐 내기 전에는 세필이라 그릴 게 없어    두렵고 신산하여 긋고 말고 할 여지    애초에 불러내지 않았을 봄바람에 흠뻑 젖는다.   이파리 가장자리에 결각을 낼지   잎 표면에 곡진한 주름을 깊게 낼지 흔적만 낼지   기하의 규칙일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한 번씩 비틀고도 싶고   아무나 달려들어 긁어댈까 봐 거친 융모를 앞뒤로 두를지까지도   애먼 데 먼산에는 별 말고는 빛나지 않았으니   처음 색깔을 청초하게 시작하여 묵직하게 덧칠할지    유화로 반짝이거나  두툼할지를   내 맘대로 못하는 게 어디 있겠냐던 실존은   애초에 잎자루 길이조차 알 수 없었으니   나무의 새순이야말로 천진난.. 2024. 4. 6.
만휴정 외다리 만휴정 외다리 온형근 만휴정 오르내리는 냇길 둑마다 개나리 노란 꽃눈 울먹이며 터지려 안달이다. 금방이라도 망울 터트려 가슴을 활짝 펼칠 기세 내 집의 보물은 청렴과 결백 바위글씨 새겨진 너럭바위에 비스듬히 누워 손을 괸 채 풍류에 든다. 너럭바위 다가선 거대한 흑갈색 암반을 한 송이 진달래꽃이 벋댄다. 산자락 아래로 부는 바람이 왼쪽 어깨를 툭 치길래 돌린 고개 거기 그 자리에 작은 생강나무 천지인의 세상에 나온 첫 꽃망울인 듯 다소곳이 물길을 내려다본다. 오른쪽 어깨 저편 둑길에 핀 환한 생강나무 제법 굵은 줄기에 생동이라는 문장을 반점으로 새겼다. 천 년 억겁을 지닌 너럭바위의 품은 산맥의 암반과 마주친 곳에 골 하나 내준다. 물길이 빠른 몸놀림으로 소리 내며 흐른다. 꼭 내주는 데로 흐르라고 댓잎.. 2024. 4. 2.
선계를 비질하다 선계를 비질하다온형근   출몰 시간을 따져 보았으나 미궁이다.    어디서 나타났을지    빗자루는 싸리나무여서 불타는 화력으로 날아다닐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상체만 숙인 체 힘찬 비질이었을   산길 가장자리로 선명하게 긁은 빗자루 자국이 여울 물결   신선이 선계를 비질할 때는    인시寅時   산짐승도 사람의 흔적도 없어   산길을 수놓는 싸리비의 넘실댐이 엿보이지 않는 아득한 시간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그의 득도는   산길을 거닐며 가꾸는 정화의 맨발   빗자루로 산길을 쓴다는 것이   그의 초월이 욕망을 벗어나 그저 그런 것임을 즐기는 모습  2024.03.14 - [::신작시::/조원동 원림] - 큰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큰오색딱따구리 온형근 봄은 어느 날 쓰윽 찾아오는 것 이라면 .. 2024. 3. 19.
쥐똥나무 새순 쥐똥나무 새순 온형근 춘분 다가선 숲으로 드는 햇살은 겨우내 묵은 산비탈 초입의 쥐똥나무 새순 양지 밝은 여린 심성을 꼬드겨 일 낸다. 원림 숲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아 산들바람에 실어 온 따스함에 옷깃을 여미는데 둔하여 불감이려니 거들떠보기를 외면하였더니 어느새 환한 샛노랑을 들고일어난다. 2024.03.11 - [::신작시::/나무 詩] - 소나무 명상 소나무 명상 소나무 명상 온형근 폭설, 쯤이야 혹한에도 거위털외투 거들떠보거나 춥다고 오리부추구이 입맛 다시지 않았다. 산수유 꽃눈 터지려는 파열음, 모골이 송연해질 때도 나는 강건하여 딱따구리에 ohnsan.tistory.com 2024.03.08 - [::신작시::/나무 詩] - 꽃눈 꽃눈 꽃눈 온형근 옆으로 누운 채 무릎 접은 사지는 고슴도치처럼.. 2024. 3. 18.
산목재 언덕 마루 산목재 언덕 마루온형근   무릎 연골 달래어 쪼그려 앉는다.   숲을 비집고 학교 운동장의 왁자함이 간간하다.   지난밤 쩍 하며 꺾인 소나무는 아직도 시퍼렇다.   언덕 마루에서 한참 갈 곳 놓친 시선으로 진달래 꽃망울 수런댄다.   다시는 기웃대지 않겠노라는    물까치 몰려다니듯 떼쓰지 않겠노라는   겨우내 차던 볼에 춘풍 약산성으로 살랑인다.   화답은 기약 없는 푸르른 편지   움츠렸던 생각들이 들고일어나 숲길은 들썩이고   기다렸을까? 꿈틀거리는 미물 같은 염두를 향하여 달려드는 새의 부리   산목재 치고 오르는 춘정은 저만치 지고 필테지 2024. 3. 15.
큰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온형근      봄은 어느 날 쓰윽 찾아오는 것   이라면 낭만 넘치는 언사였을까    아니더라, 옆집 아저씨 건넛마을 아줌마, 언필칭 젊은것들이 노인네라 부르던 삼인칭 객관화에 제 부모 호칭까지 물들었을 때, 쯤이면 요단강이 보이고 북망산 근처에 내몰린 게다. 피었으니 지고 그 자리 내주는 봄은 꾸역꾸역 두런거림으로 움찔대며 큰오색딱따구리 기척으로 퍼뜩 봄이라 알아차린다.    라고, 기어코 오고 말았구나 얄궂은 봄,   어찌 겨우내 기척도 없이 원림을 잊더니   내원재 입구 올라서자마자 반기는 게    너뿐이랴, 붉은머리오목눈이까지 얕게 찢으며 반긴다.  -2024년 다시올문학 봄호 2024. 3. 14.
가느라 휘젓는 봄을 가느라 휘젓는 봄을온형근      활력 넘치는 산천으로 소소하게 바람이 분다.​   우듬지 몇 개 부러져   성록의 잎 난타로 흔들리고   떡갈나무 사이로 햇살 파고들어   지상으로 빛과 그늘을 요분질 하는   가느라 사각대는 봄​​   나는 없었네    곡해의 심지만 키워 낸 봄을   묻힌 세월에서 한 걸음도 비켜서지 못했네​   층층나무 흰 꽃 바래는 동안   국수나무 노랗게 몽울 터지는 덤불이 되고   가슴은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 위리안치된 채   떡갈나무 빛살로도 휘젓는 봄을   도대체 어쩌자고 쫄밋거리는 통찰이냐​​-다시올문학 2024년 봄호 2024. 3. 14.
소나무 명상 소나무 명상 온형근 폭설, 쯤이야 혹한에도 거위털외투 거들떠보거나 춥다고 오리부추구이 입맛 다시지 않았다. 산수유 꽃눈 터지려는 파열음, 모골이 송연해질 때도 나는 강건하여 딱따구리에 몸을 내주지 않는다. 해춘할 때 얼음이나 잔설에 측은지심도 갖지 않은 게 엊그제 눈 녹고 바람 잦아들면 그만이라 쑥쑥 위로 고개 쳐들고 비취에서 초록과 청동풍뎅이색으로 계절을 입기만 하면 그만이라 룰루랄라 기분 좋아 산목재에서 굽어보고 있었건만 남들은 내가 큰 해탈을 염두에 두고 오르내리는 어떤 이를 돌보았다고 수런대지만 바람이 산 아래에서 위로 불 때마다 시원하다 방심했을 뿐 명상하느라 망상을 밑둥치로 내려보내려 애쓸 때 모가지에 맷돌만 한 헛구역질로 신음할 때 헛헛하여 바람 새는 그곳에 봄물 올라 꽉 차더니 나의 봄은 .. 2024. 3. 11.
한탄강 고석정 한탄강 고석정 온형근 겨울 한탄강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길을 굳이 옛 계단으로 접어든다. 안전줄을 끌어 잡아야 할 정도로 단차가 크다. 내려가면서 고석바위 꼭대기 소나무와 눈이 마주친다. 소나무 눈망울에 물기 어리더니 암벽 아래 쪽빛 물결에 일렁인다. 얼마나 깊을지 고독한 바위를 둘러싼 수면은 깊이를 알 수 없다. 점점 명랑하고 청아한 소리가 나를 이끌더니 햇살이 속살거리며 물보라 공중으로 튕겨 오르는 반짝이며 꺾여 흐르는 여울물 맑고 투명한 물결 소리는 명창의 구음처럼 잔향으로 남는다. 고석정은 고석(孤石)에 기대어 머문다. 고석바위에 엉금엉금 기어올랐다는 기이한 풍류는 콘크리트 정자에 올라 눈길만 더듬는다. 지금은 올라갈 수 없는 문화재 기어코 오르고야 말겠다는 각오의 마음도 식고 협곡의 주름에 고석바.. 2024. 3. 8.
꽃눈 꽃눈 온형근 옆으로 누운 채 무릎 접은 사지는 고슴도치처럼 불거진 살가죽으로 날카로운 가시를 장착한 듯 당장이라도 뚫고 찌를 듯 팽팽하다. 다가설 수 없는 긴장이 공기에 파열음을 낸다. 마스크 없이 혀를 천장으로 둥글게 말아 속셈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단속한다. 2024. 3. 8.
암서재에서 우암을 만나다 암서재에서 우암을 만나다 온형근 날이 쌀쌀해지니 깐깐했던 어른이 그립다. 한번 마음먹으면 절대로 화두를 놓지 않는다. 요즘처럼 시도 때도 없는 말 바꾸기 놀이에 진절머리 난다. 꼬장꼬장하여 시종일관하는 어른은 다 어디 있는가. 이럴 때면 우암 송시열이 떠오른다. 조원동 원림을 미음완보하다가 갑자기 겨울 초입의 화양구곡이 보고싶다. 귀마개와 목도리, 장갑을 챙긴다. 계곡 바람이 진세의 발열을 쓸어 내린다. 차가운 물기가 얼굴을 때리며 깊은 숨을 낸다. 계곡의 바람은 싸늘하게 젖은 겨울 물살을 간질거린다. 차갑게 언 볼을 이즈러지듯 씰룩이며 나도 파문으로 젖고 싶다. 우암은 화양구곡을 경영하면서 누구를 용서하였을까? 결국 자신을 궁극의 수양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다. 암서재를 거점으로 삼아 계절을 달리하며 구.. 2024. 3. 5.
화성을 걷는다 화성을 걷는다 온형근 북서포루에 엄청난 비둘기, 비둘기, 떼로 난다. 북서포루 지붕 위로 난 씀바귀 꽃 어쩌다 넓은 공원에 심어진 띠는 잡초에 짓눌려 어울림의 경지에 이른다. 띠와 잡초의 환상적인 점령 띠는 군사용으로 불지를 수 있어 유용하다는데 관상용 띠조차 비에 쓸린 흔적, 깊은 골이 파졌네 얼굴 긁힌 채 보기 사나운 흉터의 몰골 팔달산 경계 능선 따라 어긋나게 걷다가 만난, 화양루에는 곱게 나이 먹은 여자들이 신발 벗고 도시락까지 싸 들고 앉아 화투를 바라보는 얼굴 표정이 행복하다. 이 신발이 저 신발을 참담하게 기약없이 바라본다. 지동시장 언덕 다시 이어지는 왼쪽으로 개망초꽃이 흐드러져 동남각루 마루식 목조가 요새가 된다. 동남각루에 오르면 위풍당당한 교회 건물 자체가 스카이라인일 때 바람은 시야.. 2024. 3. 5.
별유천지 금수정 별유천지 금수정 온형근 비단처럼 매끄러운 물 흐름 은빛 물살에 시달린 모래는 기슭으로 몰려 모래사장이 되어 백로 어슬렁어슬렁 노닐다가 한순간에 날아올랐더니 고니와 청둥오리 무심한 듯 따로 어울린다. 은빛 모래에 쏘인 햇살이 보를 타는 물살로 스민다. 파안대소하듯 튕겨 나오는 물보라는 가끔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올라 정자 마루를 힐끗댄다. 내 얼굴 슬쩍 건드렸던 지난밤 꿈에 어린 모양 사라진 오백 년 정인의 흐릿한 촉감 바위 글씨를 쓰며 어울려 거닐 때 강 건너 솔숲에서 노래를 부르면 금수정으로 달려가 거문고로 화답하였지 그때 별유천지 흰 물결 일고 백로는 이때다 싶어 혀끝을 맵게 오므려 날았다. 신선은 흰 구름 타고 튀어 오르는 물살마다 둥지를 트고 2024.02.18 - [::신작시::/시의 풍경을 거.. 2024. 2. 25.
노랫가락 3수 노랫가락 3수 온형근 바람이 물 소린가 물 소리 바람인가 석벽에 달린 노송 움츠리고 춤을 추네 백운이 허위적거리고 창천에서 내리더라사랑도 거짓말이요 임이 날 위함도 또 거짓말 꿈에 와서 보인다 하니 그것도 역시 못 믿겠구료 날같이 잠 못 이루면 꿈인들 어이 꿀수 있나그리워 애닯아도 부디 오지 마옵소서 만나서 아픈 가슴 상사보다 더 하오니 나 혼자 기다리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리라 애닯을 게 무어 있을까 서러움이 그렇게 자리 잡는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봐야겠다고 기어코 오른 산길 내려 올 때 부디 오지 마라 메아리로 울리는 것을 어화 둥둥 들떴다가 에야 디야 서글픈 낙조 다음이 없다는 데, 매번 다음이고야 마는 모두 헛 일 꽃이 피어 나를 벙글게 했다고 지는 꽃 말릴 수 없듯이 가는 것은 지듯 시.. 2024. 2. 25.
안개의 원림을 걷는다 안개의 원림을 걷는다온형근   믿음이라는 건 맡기는 일이다.   마음을 맡기는 거라서   어쩌면 처분을 기다리는    수동의 소극이 개입한다.   알아서 즉흥이어도 따르겠다는 자포자기    세상 맛 다 보았을 "날 잡아 잡숴!"   의지한다는 건 그래서   싹을 틔우지 않아야 한다.   애초에 의념을 떠 올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어디 그게 쉽게 설명이나 될까.   갈수록 더 무뎌지는 처분에 다다른    어찌하라고 나는 상관없으니   점점 소멸로 치닫는 신뢰의 두께감이   무중력의 내홍으로 가는중이어서 서운함은   내게 내재되어 소중한 순간에 맡겼던    그리움 같은 것을 거적이라 거추장스럽다 여긴다.   아닌 척하는 잔망스러움은 눈치를 찾고   이내 남사스러운 통증은 협착되어 천년의 한숨에 실린다. 2024. 2. 21.
기구대棄拘臺 기구대棄拘臺 - 금쇄동 원림. 02 온형근 마당이 있고 사랑방이었을 때 우리는 자꾸 떠나고 외면하고 멀어져 갈 때 못 견디게 혼자의 경계 틈바구니에 낀 채 겨우 구차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까 그러니 그를 버리겠다는 의지는 차별 두지 않겠다는 불차 석문을 통과 잠시 일단 쉬어야 하는 하휴이니 숨차서 머뭇대는 토끼의 눈과 마주한다. 발간 눈 주위에서 뿜어낸 환각 도리뱅뱅 발 디딘 바위에서 곧추서는 의분 을 비우려 했건마는 역부족 구차함을 버리는 높은 풍경에서 큰 숨 하나 2024.02.17 - [::신작시::/시의 풍경을 거닐다] - 금으로 둘러싸인 안뜰에서 금으로 둘러싸인 안뜰에서 금으로 둘러싸인 안뜰에서 - 금쇄동 원림. 01 온형근 고기가 없으면 살이 마를 뿐이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마음이 비속해진다. .. 2024.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