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고라니고속도로12 오색의 새벽, 언덕길 오색의 새벽, 언덕길온형근 오색터미널로 내려가는 게곡에서 찬 기운 몰려온다 모자를 세워 쓴다 오색터미널 앞 공중전화 부스에 손을 찜하고 되돌린다 언덕을 오른다 KBS와 MBC에 나온 두 식당이 마주보며 집단 시설 지구의 처음을 알린다 오색 온천장, 설악 온천장, 온천 용천장, 오색그린야드 호텔, 주차장, 별관을 지나치며 남설악 매표소로 간다 건널목 흰 선에 눈도장을 찍고 언덕을 내려간다 버스 기사가 꾸부정 핸들에 가슴을 얹었다 온천 용천장에 검은 잠바가 나를 보며 움찔한다 말 걸려다 만다 설악 온천장 앞에서 오리털 파카가 나를 보며 움찔한다 다가서려다 만다 오색 온천장 앞 바짝 마른 신경질이 잰걸음으로 나를 향하다 되돌아선다 황태 해장국으로 가득한 식당들이 이어진다 오색터미널로 다시 흐른다 조금 있으..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24. 11. 22. 직시直視 직시온형근 넘치지 않는다흐르지 않아 움직이지도 않는다지나쳤구나 싶은 때를 안다기세를 꺾어바라볼 수 있는 참된 마음을 끄집어낸다호방하다는 생각잘 이해한다는 생각세상의 쓴맛 단맛 다 맛본 유연함이라는 생각에서소통되지 않는 부분을바르게 뚫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마저똑바로 바라본다그런 연후에 이르는 자유 또한 알지 못한다넘치지 않는 것일 테다넘치려는 기운에 묻혀 있을 뿐똑바로 바라본다넘치고 나면 망가져 있을까망가지고 나면 비워져 있을까 Direct gazeOHN Hyung-geun Does not overflow Does not flow and does not move Knows the time when it seems to have passed Breaks the momentum D..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자서_흔적을 더듬어 가다 궤적 하나 떨꾼다. 自序............ 흔적을 더듬어 가다 궤적 하나 떨꾼다.이조차 비워야 할 땡글땡글한 마음임을 알면서도.아직도 청주에서 목천 사이 경부고속도로의 고라니,내 눈과 마주친 까만 눈동자가 깊고 그윽하기만 하다. 다시 풀을 뽑기로 한다.깊이 오래도록 머물러야 할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너무 사랑해 달아오른 입김으로 외려 숨이 콱콱 막혀야 한다.다시 나무에게로 돌아간다.사람의 발길에 채이고공중으로 날리는 서툰 약속과가벼워 쥐어지지 않는 헛말의 홍수에서한적한 숲, 풀과 벌레를 육화시키는 나무의 거처로.일을 해 본 사람은 외로움도 절망도 기쁨의 희망도 인연에 따라 흐르게 두는 것을 배운다.소리와 침묵이 호흡과 정지가쓸쓸하고 고요하게 서로 사랑하는 줄 알게 된다.대금 높낮이의 파편이 달게 남아그리워하다가 절절해..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온몸에 절단기 소리 온몸에 절단기 소리 온형근 앞 창문을 닫았다 옆 창문도 닫아야 했다 화장실 쪽창이 열려 있다 온몸에 절단기 소리가 쥐어 짜진다 책을 읽거나 아득한 생각에 절어 있는데 어김없이 꼭 고만한 간격으로 길거리 마당에 펼쳐진 절단기의 고통스러운 고속회전은 세상의 열려있는 간극 바람이거나 햇살이거나 낮아진 그늘 근처이거나를 가리지 않아 냅다 휘둘려 있다 뿌리 깊숙이 땅속에 묻어 두었다 풀어내는 어둡고 습기 있는 소리를 끄집어내고는 징허게 울어댄다 몸을 뒤척이며 귀 막고 코 박아 보나 들리는 동안에는 찢어지듯 산산조각 된다 절단기에 물려 있는 철판만 자로 잰듯 잘라져 있었다 The sound of a cutter all over the body Ohn Hyung-Geun I closed the front wi..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시인의 가슴 시인의 가슴온형근 그에게 하단전下丹田은 둥글고 넓고 물렁하다 그는 배꼽 아래에 대하여 공부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배꼽 위쪽에 유난히 천착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슴이 발달하였다 뭔가가 제 혼자 자라며 지경에 이르는 것이 있다면 가슴일 것이다 파헤쳐져 도려낸 상처와 물려 터진 그의 가슴은 단단하다 하단에 대하여 진지할 때 난처하다 그의 하단은 배고프고 빈곤한 시인의 변덕스런 아랫배일 뿐이다 맑고 탁한 음식을 구반할 줄 모르는 길들지 않은 아랫배 그러나 굶거나 부실하여도 풍경 좋은 산천을 만나면 익힌 술로 거나해지는 정신을 섭생으로 모시고 있다 숱한 짓이김 가슴앓이로 성벽을 쌓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쯤에서 가슴 깃들여 접는다Poet's Heart Ohn Hyung-Geun F..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탱탱한 종아리 탱탱한 종아리 온형근 과천에서 계곡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관악산은 청명의 형태로 드물게 건강하다 연주암에서 공양이 있다는 앎에 빈손임에도 희망이라는 알맹이가 일렁인다 사당에서 올라가는 길과 달리 종아리에 힘이 든다 산행 이튿날 어김없이 탱탱해진 종아리를 손바닥으로 비비고 두딜긴다 짜리~한 진통이 종아리에서 온몸으로 옮겨지는데도 또 건드리고 싶다 길거리에서 종아리만 커져 보여 저 종아리도 탱탱하게 알이 배여 문지르면 짜리 할까 저들 아픈 종아리를 지녔어도 얼굴 환하게 화평하다 관악산에서 얻어 온 종아리로 껍질 벗긴 속깊은 미소 짓는데 지나며 보이는 세상의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종아리들이 모두 예쁘다 Firm CalvesOhn Hyeong-Geun Climbing Gwanaksan alo..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별도 달도 별도 달도 온형근 잘못된 것은 들뜸이 아닐까 늘 쳐다보며 다독거려야 할 참인데 무언가 보이려는 그런 것들 별도 달도 놀고 나면 남은 것은 울렁거림 허망한 광대 짓이라고 생각했을 때 억 광년의 우주로 실려 다녔다Separate stars and moon Ohn Hyung-geun Could it be that the mistake is excitement Always looking and soothing, as it should be Trying to show something Such things After the stars and moon have played What remains is a queasy feeling When I thought it was a futile clown act ..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테니스 앨보 테니스 앨보 온형근 붙잡을만한 튼실한 것들 곳곳 삐죽 뻗기만 하면 매달릴 수 있는 것들 손이 민망해 스치기만 해도 달라붙는 것들은 밀쳐내는 부력을 가졌다 낯설어져 더 깊고 퍼즐처럼 짜 맞추기 어려워 낭떠러지처럼 심하게 갈라졌다 팔꿈치에서 삐그덕거리는 경고 일상의 널려 있는 자리에서 막힌 채 생동하는 앨보 제 것인 양 바닥을 기고 좌중에서 푹 익어가고 있다 몹시 매 맞아 시퍼렇게 멍든 언어의 기운 욱신거려 끝도 없는 나락 한참을 지나쳐 온몸의 장독을 다독거릴 수 있는 천근 같은 몸의 부분들이 각기 따로 앉아 둔덕을 이룬다 Tennis Elbow Ohn Hyung-geun Sturdy things to hold onto Things that can be clung to if they just st..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아침 햇살 아침 햇살온형근 한동안 잊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지지리도 다급한 일상은 늘 고개를 한쪽으로 꺾어 둔다 만져보면 단단해져 매만지기 어려운 저잣거리를 닮았다 그러나 아침 햇살을 만난다 새삼스럽다는 생각으로 그의 따스한 어루만짐에 이끌린다 뜨겁지도 않고 설익지 않은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다 거칠 것 없이 세상으로 다가오는 것 피할 수 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음에도 선택이라 만남이 유예되어 있다는 것 가슴 아래에서 따스한 기운이 솟아오르면서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지는 것 그리하여 그와 만나는 날은 오랜만에 세상의 기운 생성, 생성, 생성으로 가득하여 그윽해지는것 Morning Sunshine Ohn Hyung-geun The desperately urgent daily life, which I h..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간肝 간肝 온형근 거울로 상기된 눈이 나를 쳐다본다 눈은 간을 읽게 해준다 삼각형을 닮아 있는 간을 매만지다 나무를 만난다 간은 나무의 성질을 가졌다 발갛게 익은 눈망울을 보면서 갈등의 모습을 떠올린다 갈등은 나무의 심재다 심재는 죽어 있는 부분이지만 색을 지녔다 생명이 오고 가는 통로는 아니지만 촉촉하여 살아 있어 보인다 심재처럼 간도 젖어 있을 게다 갈등이 심한 날은 간이 말라드나 보다 바짝 마르다 보니 논바닥 갈라지듯 눈을 벌겋게 상기시켜 호소한다 호소는 늘 눈망울로 젖어있다Liver Ohn Hyeong-geun The eyes reflected in the mirror look at me. The eyes allow me to read the liver. I touch the liver,..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화농化膿 화농化膿온형근 열이 많았던 날 슬쩍 귀 위로 포도상구균이 침입한다 분화구가 서너 개 생기더니 백혈구 유인 인지나 로이코시딘을 생성하여 감염 부위에 화농성 염炎을 일으킨다 농즙膿汁이 들락거리고 항생제 주사를 맞고 절룩거린다 생성과 소멸 사이가 보름이더니 길어지고 딱딱해진 피지로 포장된 길이 뒷목으로 이어져 찢어내겠다고 가라앚기를 기다리다가 견딜만하다고 그가 살아내는 방식 찢어내도 다시 찢어낼 게 예비 되었을 거라는 생각 그에게 화농균은 그렇게 들락거렸건만 들어낼 생각 그의 몸에 거추장스러운 대상들이 꽤 매달려 있다는 그래서 흐르는 물살을 위해 물길을 터 주자는 뒷목이 뻣뻣할 때쯤에야 겨우 도인체조를 한다 굴신屈伸이 어려울 때쯤에야 화농이 터진다 Suppuration Ohn Hyung-geun T..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조기 매운탕과 아버지 조기 매운탕과 아버지온형근 아버지를 남편과 부산역으로 모셨거든 아직 시아버지와 시댁 식구들이 그대로 남았는데 도망치듯 남편과 모시다 드린다고 나섰건만 오후 열한 시 열차 시간은 두어 시간 남았다는 거지 일흔의 아버지를 모시고 대구탕 대접을 하려는데 조기 매운탕을 드신다며 잠시 자리를 뜨셨어 남편은 장인께서 술 드시는 몰두에 열차표가 없을 것이니 편하게 술 드시고 근처에서 주무신 후 아침에 출발하게 소곤거리며 아버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일흔의 아버지가 철도 패밀리 카드를 만드셨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데 정성을 쏟으신 거지 그러니 잔뜩 조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시고 "나도 그렇게 살지 못해 이란 말할 자격은 없지만, 忍자 하나더라. '참을 인' 자." "내 얼마나 모을 줄 모르지만, 사돈어른과 국외든..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