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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10

내원재 찬란 내원재 찬란온형근      원림 입구 내원재 들어가면서 첫 벤치에 잠시 머문다.    아침 빛나는 햇살 등에 업고   흔들리는 대숲과 큰 나무의 잎새는 알게 된다.    태곳적부터 나를 키우고 다스렸던 건   반짝이며 너스레 치는 바람의 치근덕이었음을    길바닥으로 호수의 바람 소리 치오른다.   청둥오리 가족의 단란한 아침이 파묻혀   내원재 오르는 길의 꿈틀댐이 발바닥을 감친다.    흙길로 찬란한 잎새 춤추듯 흔들리며 스민다.   잠시 어질,   언덕길이 메밀 부침개처럼 포근하고 푹신하다.    내원재를 오래도록 둥지로 삼은   입춘부터 백로까지 멧비둘기 대대로 반긴다. 시작 메모>>조원동 원림의 입구는 가파르다. 출발의 처음이 가파른 게 좋다. 원림을 크게 내원內苑과 외원外苑으로 나눈다. 내원의.. 2024. 10. 10.
산길로 봄비 산길로 봄비온형근      봄비 내린 고단한 밤들은 산불을 재웠다.​   건조하여 흙먼지 풀풀 날리던 원림   아직 잎이 나지 않은 푸른숲 꾀꼬리 길은   봄비에 파인 가는 굴착의 물길 끊이지 않는다.​   산길의 속살은 백골이었다가 잿빛이더니   실루엣으로 갈아입고 힐끔댄다.   그토록 보고 싶어 안절하더니   어쩌지 못하던 하루 지나고서야   봄비에 쓸린 단단한 속살처럼 괜찮다 괜찮아​   버드나무 연못가로 뿜어내는 연둣빛   빗물 따라 겨우내 쌓인 산비탈 유기물로   물가는 희뿌옇고 탁하게 떠다니는 떡진 꽃길   씻겨 내리는 일이 한결같이 가벼웠었나   벚꽃 나들이 호숫가 인기척으로 몸살이다. 시작 메모>>원림은 참여라는 행위로 완성된다. 봄비 내리는 산길에서 나를 관찰하는 일은 커다란 위안이다. .. 2024. 10. 10.
선계를 비질하다 선계를 비질하다온형근   출몰 시간을 따져 보았으나 미궁이다.    어디서 나타났을지    빗자루는 싸리나무여서 불타는 화력으로 날아다닐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상체만 숙인 체 힘찬 비질이었을   산길 가장자리로 선명하게 긁은 빗자루 자국이 여울 물결   신선이 선계를 비질할 때는    인시寅時   산짐승도 사람의 흔적도 없어   산길을 수놓는 싸리비의 넘실댐이 엿보이지 않는 아득한 시간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그의 득도는   산길을 거닐며 가꾸는 정화의 맨발   빗자루로 산길을 쓴다는 것이   그의 초월이 욕망을 벗어나 그저 그런 것임을 즐기는 모습  2024.03.14 - [::신작시::/조원동 원림] - 큰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큰오색딱따구리 온형근 봄은 어느 날 쓰윽 찾아오는 것 이라면 .. 2024. 3. 19.
산목재 언덕 마루 산목재 언덕 마루온형근   무릎 연골 달래어 쪼그려 앉는다.   숲을 비집고 학교 운동장의 왁자함이 간간하다.   지난밤 쩍 하며 꺾인 소나무는 아직도 시퍼렇다.   언덕 마루에서 한참 갈 곳 놓친 시선으로 진달래 꽃망울 수런댄다.   다시는 기웃대지 않겠노라는    물까치 몰려다니듯 떼쓰지 않겠노라는   겨우내 차던 볼에 춘풍 약산성으로 살랑인다.   화답은 기약 없는 푸르른 편지   움츠렸던 생각들이 들고일어나 숲길은 들썩이고   기다렸을까? 꿈틀거리는 미물 같은 염두를 향하여 달려드는 새의 부리   산목재 치고 오르는 춘정은 저만치 지고 필테지 2024. 3. 15.
큰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온형근      봄은 어느 날 쓰윽 찾아오는 것   이라면 낭만 넘치는 언사였을까    아니더라, 옆집 아저씨 건넛마을 아줌마, 언필칭 젊은것들이 노인네라 부르던 삼인칭 객관화에 제 부모 호칭까지 물들었을 때, 쯤이면 요단강이 보이고 북망산 근처에 내몰린 게다. 피었으니 지고 그 자리 내주는 봄은 꾸역꾸역 두런거림으로 움찔대며 큰오색딱따구리 기척으로 퍼뜩 봄이라 알아차린다.    라고, 기어코 오고 말았구나 얄궂은 봄,   어찌 겨우내 기척도 없이 원림을 잊더니   내원재 입구 올라서자마자 반기는 게    너뿐이랴, 붉은머리오목눈이까지 얕게 찢으며 반긴다.  -2024년 다시올문학 봄호 2024. 3. 14.
가느라 휘젓는 봄을 가느라 휘젓는 봄을온형근      활력 넘치는 산천으로 소소하게 바람이 분다.​   우듬지 몇 개 부러져   성록의 잎 난타로 흔들리고   떡갈나무 사이로 햇살 파고들어   지상으로 빛과 그늘을 요분질 하는   가느라 사각대는 봄​​   나는 없었네    곡해의 심지만 키워 낸 봄을   묻힌 세월에서 한 걸음도 비켜서지 못했네​   층층나무 흰 꽃 바래는 동안   국수나무 노랗게 몽울 터지는 덤불이 되고   가슴은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 위리안치된 채   떡갈나무 빛살로도 휘젓는 봄을   도대체 어쩌자고 쫄밋거리는 통찰이냐​​-다시올문학 2024년 봄호 2024. 3. 14.
안개의 원림을 걷는다 안개의 원림을 걷는다온형근   믿음이라는 건 맡기는 일이다.   마음을 맡기는 거라서   어쩌면 처분을 기다리는    수동의 소극이 개입한다.   알아서 즉흥이어도 따르겠다는 자포자기    세상 맛 다 보았을 "날 잡아 잡숴!"   의지한다는 건 그래서   싹을 틔우지 않아야 한다.   애초에 의념을 떠 올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어디 그게 쉽게 설명이나 될까.   갈수록 더 무뎌지는 처분에 다다른    어찌하라고 나는 상관없으니   점점 소멸로 치닫는 신뢰의 두께감이   무중력의 내홍으로 가는중이어서 서운함은   내게 내재되어 소중한 순간에 맡겼던    그리움 같은 것을 거적이라 거추장스럽다 여긴다.   아닌 척하는 잔망스러움은 눈치를 찾고   이내 남사스러운 통증은 협착되어 천년의 한숨에 실린다. 2024. 2. 21.
우듬지 우듬지온형근      상수리나무 우듬지는 바람으로 성장하고 몸살 한다. 오솔길에 몸져누운 초단부 잎사귀는 꺾이기 쉬웠던 마디에서 뭉친 채 기울어 뒹군다. 말라 오그라든 잎에서 방금 떨어진 잎새까지 지상에서의 소소한 연륜을 증명하듯​   죽음도 오므라지면서 말라가는 것   윤기 줄고 말수 끊기는 것   예상치 않은 험한 일에 놀라    가슴 철렁 내려앉고    언덕과 내리막에서 여러 번 접질리고   마른다는 게 바람이고   바람이 숨이고 명줄이어서   그예 실려 살고 지는 거​   꼭대기에서 떨어져 지상에서 잠깐 여위는 거​​   - 「우듬지」, 『다시올문학』, 2022년 여름호(통권 52호), 47쪽. 2024. 1. 14.
유현재幽玄岾 유현재幽玄岾온형근      바람길이었던 그의 고개는 달름하다.   호수에서 산 쪽 바라보매 세 번 굴절되어   마지막 고갯길은 아득한 듯 숲이다.   하나를 후미지게 길이로 끌러 두더니   두 번째 고개를 두둑 쌓듯 가로지른다.   도톰하게 포갠 입술 속이 그윽하다.​   무릇 보이는 것에 마음이 다가서듯   깊고 그윽한 지경에 닿는 것은   고갯길이 아니라 속내를 부르는 풍치여서   절로 흥 불러내는 아름다운 지경이라   드러내는 너와 보고 있는 내가 낳은 풍경이   꺾어 도는 고갯길의 유현幽玄을 짓는다.​​   -「유현재幽玄岾」, 『다시올문학』, 2022년 여름호(통권 52호), 46쪽. 2024. 1. 14.
완이재를 다시 읽는다 완이재를 다시 읽는다온형근   기쁨을 즐겨 살핀다고 객관율을 부여해   완이재翫怡岾,   완상의 즐거움으로 여덟 구비 언덕을 아꼈다.   오르거나 내릴 적에 우회하지 않는다.   맞대면으로 부대낀다.   피한다고 상대가 포기하는 법은 없기에   가장 늦게 눈이 녹는 얼음판 넷째 구비에도   살얼음일지언정 설설 기는 종종걸음으로 응대한다.   이른 곳은 묵은 얼음 녹아 질척인다.   곳곳에 피어난 햇살만으로 봄 기운 어찌하다 말하기에 맹랑하다.   터무니 없이 빈정을 듣다 결연하게 내쳤던 지난날이 있기에   거칠고 험한 고개일수록 즐긴다.   뻔한 수고로움 동반한 고통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길로 들어서면 어디를 통과하고 나오는 곳까지 뚜렷한데도 2024.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