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65 송간세로 송간세로 (松間細路)온형근 원림 소롯길에 무거워 떨어진 손가락만 한 송충이물컹 터질라, 발길 돌리려다백 년 소나무 붉은 구갑으로 꽉 채워지는 평안환해지는 송간세로松間細路를 걷는다.능선을 따라 가늘고 긴 길에는가지 말라고 손 내미는꽃 진 국수나무 길미음완보微吟緩步 않는다면금세 달라붙어 하나의 덤불로 꽉 막힐 난감오르고 내리는 동안 망연자실 녹음방초에 두근대다가평지를 걷는 동안 굵은 통증이 근육을 잡아끈다.가지 말고 쉬었다 가라고쪼그려 되돌아 볼 이고정跠顧亭이라도 마련할 테니이미 퍼질러 웅크려 앉아 돌아보고 있으니직박구리야 찌익찌익 말라(2021. 6. 10. 7:47) 시작 메모산길을 오르다 마주친 송충이 한 마리, 그 작은 생명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소나무 숲길의 고즈넉함이 내 마음을 적신다.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5. 2. 12. 경(敬) 경(敬)온형근 경(敬)은 공경한다는 것, 삼가고 또 삼가는 마음가짐 아침마다 산행 출근, 횟수를 즐기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을 또 새롭게 하는 덕목으로 삼는다. 삼는 일이 많아야 삼갈 일도 생긴다. 종일 아무 일 없다가 뜬금없이 빚 받듯 요구하거나 받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마음 열고 기꺼이 풀면 그 끝에서 괜히 친하지 않아야 할 일도 흐뭇하여 숙연해진다. 친하다는 것이 다 무어람친하지 않다는 건 또한 어디에서 둥지를 트는가아무것도 아닌 일로 호흡이 가빠질 때아무것도 아닌 일로 얼굴이 붉어질 때그러면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 기분에 빠져 보는 게다. 어디까지 불이 붙었다가 언제쯤 재가 될지를 두고 보는 대체의 미학 산출(山出)로 시 한 편 쓰고 연재 원고 초를 긋는다.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마무..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5. 2. 2. 눈발 산행 눈발 산행온형근 살을 에이는 추위라고 사방에 다그치듯,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라너나없이 듣고 말하기를 편지로 방송에서문어체인데 구어체로 안부를 묻고 움츠리곤 했지 그때 에인 살이 회복되어 풍요로워진 지금도옛 집 앞 고개길에 쌓인 눈 비료 포대 썰매에다부지고 날렵하게 앉아 오르내리며 살 에이는 놀이를눈발 어지럽게 흩날리며 푹푹 빠지는 원림에서더듬으며 한 발 한 발 뾰드득 뽀드득 소리 바꾸며 젓듯 나선다. 밤새 소복해진 눈을 생채기 하듯 왁자하게 터는나무의 안부에는 고요를 깨며 와르르 쏟아내는 눈벼락 있어원로 분지에도 인기척 하나 없이 눈발만 낯 때리고시야를 내리니 명주 이불 위 걷듯 푹신하여 떠나기 싫네 Snowflake Hiking Ohn Hyung-geun The biting cold presses..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5. 1. 28. 청설모 청설모온형근원림 곳곳에 불쑥 만나기에 놀랍지 않은 인사는 흐뭇하여먼저랄 것 없이 수신호처럼 마음을 주고받는다고 여겼지 놀라면서 진정하고 앞에서 쫄랑대며 바쁠 때곁을 조심스레 지나고 저만치 나아가서는 되돌아 안위를 살피는 게 그게 그리 대수랍니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빙 돌아 발꿈치 들고 살살언덕 오를 때 내는 씩씩거림조차도 입 오므려 낮추고마치 살아 있는 것들끼리는 한결 무심하여 무정해야 하듯눈길도 손길도 마주침도 다가섬도소나무 등걸에서 나무꼭대기까지 냅다 들춰 메고 그리 빠르게 손절하면 되는지요 초목만 아우르지 말고 바위나 흙길에까지 다정하라는 게무생물에도 유정하라는 일침이었을무정하여 뒤돌아 만감을 되새기며 쓸쓸하지 말라는 약조봄날 넘쳐흐르는 강물처럼달빛이 너무 밝아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것처..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5. 1. 23. 원림의 경청 원림의 경청온형근 걷다 보면 협착의 둔중한 뻣뻣한 통증으로 심하게 주저앉는 난처에 이른다.그러다 원림을 소요하다 보면 아팠던 통증이 감쪽같이 아득한 기억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이로움.그때 스며드는 의아심으로 괴롭더니왜 이럴까를 연발하다 기어코 알고 말았다.내 허리 협착이 변덕을 부리는 게 아니라지나는 땅의 상태가 내 몸에 전해지는 것임을많이 상해 아픈 길에서는 통증으로 주저앉고건강한 원림 길에서는 옛사람의 훈기로 펄펄 난다.그러니 내가 아픈 게 아니라땅이 아픈 것을 내가 온전히 가져오는 게다.그러니까 아직은 걷는 데에 탈 하나 없으니아플 때마다 길을 잘 찾아 풍수를 보고 비보하며 걸을 일이다.아아. 땅이 많이 아프구나!주저앉아 땅의 통증을 경청한다. (다시올문학 2025 봄호 투고) Listeni..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5. 1. 11. 새날은 가지 않은 길 새날은 가지 않은 길온형근 해가 바뀌어 붙잡고 있는 울화통을 내친다. 삼십만 평의 원림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새해 첫날 책 읽고 뉴스 끊으니 산사가 이렇겠다 싶어 대견하다. 세 시간 십여 킬로미터를 소요하니 환희 몽실몽실 피어난다. 이제 한해의 이틀을 보냈으니 헤아릴 수 없는 창창한 많은 날들로 폐부 깊숙이 맑고 고요한 몇 갑자의 내공에서 뿜는 기운이 온몸을 활보한다. 그날 저녁이었다. 과메기가 영일만에서 몸 풀고 있기에 구색 맞추다 혼술은 뉴스를 소환하고 울화는 분노와 섞여 석탄주는 담백하게 목 간질이며 애석하고 또 서운했다. 밤을 꼬박 세웠으나 눈만 충혈되었을 뿐 되돌릴 수 없는 어제의 기시감으로 남자의 무력감에 풀 죽는다.빗장을 걸어 채우고 일찌감치 와선에 든다. 첫 날과 둘째 날의 작위..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5. 1. 4. 파랑새 파랑새온형근 울고 불고 뚝뚝 정감 그득했더랬는데 그예 퇴임, 환한 아이들의 왁자함과도 다시 작별자주 주겠다던 연락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불통, 전화 커녕 흔한 카톡 하나도 절약하여 아낀다.그러니 잊지 않고 곧잘 찾아오는 현구는 대체 어떤 생각일까. 규경이도 그렇고자기 살아내기에 분주하여 새해 첫 월요일처럼 매일 설렐테지이른 새벽에 깨어 파랑새를 찾아 나설텐데세월이라는 역병으로 기억은 조작되어 새해 인사도 나눌 수 없구나내일이 소한이다. 바짝 여미고들 다니거라다들 괜찮은거지? Bluebird Ohn Hyung-geun Crying, wailing, full of affection, but eventually retired, bidding farewell again to the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29. 협착 협착온형근 숲가 어느 살림집일까 수탉이 운다. 한 골짜기 지나 잠긴 목책 안에서 목청 높여 응답하는오솔길이 깊고 고요할 때 적막은 까마귀에게도 전해지는지 까악대면서 영혼 이탈 경계하듯 마구 우짖는해소 기침 쏟아내는 아침나절의 노년이 무색하다. 내리막길 언덕쯤에 꾸부려 앉아 아직도, 조금 남은 내리막길을 내려본다. 좀 더 머물자내려가면 더 걸을 길 없어지잖아협착이여 남은 길 저리다 마비되면 끌고 기어서라도 걷게 떠나지 마소어느덧 그대와 한 몸임을 이리 늦게 고백하오StenosisOhn Hyung-geun Which forest house could it be The rooster crows. Passing through a valley Responding loudly from with..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23. 동지 산행 동지 산행온형근 빈손으로 원림에 든다. 이미 내원재 오를 때 외투를 벗어 팔 겨드랑이에 장착하고 동지팥죽 같은 등골의 끈적임을 감지한다. 완이재를 내려와 산목재 재나무에 잠시 걸터 앉는다. 진달래 겨울눈 피골이 팽팽하여 금방이라도 나 몰라라 터질까 봐 두런댔다. 먹이 생존 마친 물까치 떼의 연푸른 꽁지깃 아침 햇살과 함께 동지를 건넜는지 산천은 거짓말처럼 잔잔한 여울을 닮았다. 동지의 공제선(空際線)이 견고하여 일출조차 뚫지 못한다. 다만 천천히 걷는 이마로 이따금씩 온기로 손 내민다. Comrade's winter solstice mountain hikeOhn Hyung-geun Entering the garden empty-handed. Already Taking off the coat an..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19. 각개의 사연 각개의 사연온형근 미명이 걷히고 어두운 입산 순간에 하산자를 둘이나 봉면하면서 나보다 이른 각개의 사연은 뭘까를 풀어놓는다. 오르막에서 벗었던 외투 능선에서 되입는다. 울창하여 꽉 조이며 제 품이던 오솔길은 낙엽 이후 확장되어 숲마다 꼬마길 드러나고 호수로 이어져 물기는 눈발에 버무려진 채 한기로 으스스하다. 시린 손 품 안으로 꽂아 가슴에 비벼대다 망극하여 놀라고 바지 주머니에 여러 번 칼손으로 디민다. 바야흐로 장갑으로 거듭 사유할지라.Each person's storyOhn Hyung-geun As dawn clears In the dark moment of entering the mountain, encountering two people descen..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16. 계명성길 계명성길온형근 이른 봄부터 닭 울음소리로 황홀하였다. 황야의 너른 들판 지평선에서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의 뜨거운 순혈로 꿈틀댄다. 영혼이 차고 시원 한 샘물에 풍덩 명징해진다. 이내 전신을 싸고 맴돈 다. 아득한 시원의 들판 저 너머에서 닭 울음소리 건너왔으니 그 또한 태양족의 일원이리라. 네 울던 오솔길을 계명성 길이라 기념한다. 멧비둘기와 뭇 산새와 달리 내 안의 숨어 있던 원시의 생기가 힘줄 돋듯 정수리로 뒷덜미까지 꿈틀대며 허둥댄다. 잠시 아찔해지며 현묘의 지경에 놓인다. 원림에 닭 치는 이 또한 누구인가. 누가 태양족의 전령인 계명성을 거두었는가. GyeomseongilOhn Hyung-geun From early spri..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14. 대설 안부 대설 안부온형근 대설 끝 무렵 살짝 내린 눈발에 숲은 흰옷으로 환복하였다가 이내 녹는다.언 땅 위로 나뭇잎 불려 쪄낸 듯 쑤석거려젖은 솔잎은 짙은 고동색으로 연노랑 마른 솔가리와 섞여 어울린다.부득불 따로 세계를 지어내지 않는다. 희끗희끗 살얼음판 딛고 안부 묻는다.적의를 감춘 편안한 눈매 반들반들 위로흠뻑 물기 머금은 젖은 소나무 잎 밟으며급하게 바람의 힘을 빌려 위장한 낙엽 수북하게 뒤덮인 숲의 바닥으로연청색 긴꼬리의 물까치 무리지어 왁자하다. Heavy Snow GreetingOhn Hyung-geun At the end of the heavy snow, the forest in the lightly falling snowflakes Changed into white clothes and..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12. 슬그머니 슬그머니온형근 슬그머니 그러하다. 울긋불긋 수다로 그득해지는 숲은 온통 나신이다. 눈길 닿는 시야각과 그 너머로 드문드문 수런대는 사람의 기척 산목재에서 잠깐 겨울바람 흡기할 때 큰부리까마귀 울음 굵고 걸다. 나무 꼭대기에서 그 또한 외롭더니 다른 나무 우듬지로 날아간다. 통통하게 살 오른 물까치 긴꼬리는 아침 햇살 비껴 연한 블루로 나부끼며 얕은 언덕 양지바른 숲속 낙엽 들추는 가족 건사로 무리 지어 슬그머니 분주하다. StealthilyOhn Hyung-geun Stealthily, it is so. The forest, full of colorful chatter, is all yours. The line of sight and the occasio..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11. 동트다 동트다온형근 동터 오르는 대설 지난 임천은 참나무 낙엽으로 수놓은 황톳빛 산색이어서 동해 바다의 기척만으로도 환하여 새악시 홍조마냥 따습다. 비탈진 나무로 호수의 촉촉한 물기를 말리느라 풀풀 진흙 먼지까지 들고일어나는 말간 동이 눈부신 햇무리라 뒤틀린 배알 보따리 끄집어 밝은 가루를 흩뿌린다. 붉은 혀 내밀 듯 솟구치는 햇무리 갖춘 천지를 인양하는 아침 해와 경건한 눈빛으로 마주하니 이미 땀으로 젖어 무거워진 한짐의 몸이 빛나는 황금빛 황토의 결 따라 스며든다. Dawn breaksOhn Hyung-geun After the heavy snow, the forest begins to brighten The moun..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9. 골짝 골짝온형근 홰치며 목청 높이던 계명성 길은 그날 이후 맨발로 걷듯 그림자로 다가오듯 기척 없이 공명한다. 고개 돌려 그윽한 눈길 닿는 곳 임천의 골짜기 낙엽으로 두툼하게 몰려 들썩한다. 환하게 드러난 등줄기 바로 곁에서 골짜기 따라잡는다. 나목의 떨기나무, 야몰찬 바람 줄기를 쓸어낸다. 내원재 오를 때 외투를 풀더니 백두고원 길에서 벗어 제껴 팔장 짓는다. 오호라 쪼그려 앉을 틈도 없이 골짜기로 달려간 바람 한 줌 어제부터 보여 달라 애걸했었나 보다. ValleyOhn Hyeong-geun Flapping and raising its voice, the path of Gyemyunseong S..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7. 호피 고양이 호피 고양이온형근 등짝 젖고 눈썹 마스크 입김으로 허옇다. 조원동 원림은 살짝 얼어 흙살이 애먼 범벅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대설 전후의 습설을 털고 빈의자 혼자 낙엽의 신갈나무 숲의 깊어진 눈매를 부라린다. 느릿하게 물방울 호피 문양의 살진 고양이가 기억을 더듬는다. 갓난애 울음소리로 주파수를 달리하며 천천히 고개 외로 꼬며 걷는다. 다시 원림 숲의 임연부에 놓인 빈의자를 매섭게 노려본다. 야생이 된 고양이 턱 괴고 수없이 눈을 끔벅인다. 눈길이 마추친다. 견딜 수 없이 다정하여 나도 끔벅댄다. Leopard CatOhn Hyung-geun Back is wet, eyebrows are white with breath on the mas..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6. 장갑과 귀마개 장갑과 귀마개온형근 고이 모신 두툼한 겨울의 기억을 꺼내 입는다. 왼 주머니에는 모바일 터치 장갑 볼록한 오른손에 주먹 크기의 귀마개 숨겨진 따스한 마음을 읽는다. 산행 출근하며 칠 벗겨진 벤치에 앉아 깊게 단전을 난타하며 소주천을 돌리던 숨결 막 얼기 시작한 호수를 비껴서 더운 몸은 왼손에 벗어 제낀 윗도리를 접어든 채 식힌다. 손끝 시리고 콧물 안팎의 감응으로 분주한데 겨울 찬 공기를 뚫고 햇살은 얼마나 정다운지 Gloves and earmuffsOhn Hyung-geun I take out and wear the thick memories of winter that I cherished. In the left pocket, mobile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5. 옛 길 옛 길온형근 십 리 길은 나서는 자에게 첫 발을 내딛게 하는 신발이 된다. 손 시리지 않고 귀 빨개지지 않는 날은 나서는 순간 구름 위에 뜬 기분 갈 곳조차 잊은 채 둥둥 떠다녀 몸은 부리라고 있는 거 옛사람 바지런한 날들은 여전하여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뒤바꾸며 매일의 십 리 길이 오늘로 환생한다. 십 리 길 어디쯤 와 있을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더 있을 질고 언 바닥 눈 가리고 못 본 척 덧없음에 익숙할 결국 꿈을 꾸었을까, 자고 나면 다시 십 리 길 Old RoadOhn Hyung-geun The Sim-ri road becomes the shoes that let the one stepping out take the first st..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4. 흰 눈의 산수 흰 눈의 산수온형근 깨알같이 잔잔한 많은 날들이 뭉테기로 굴러 넘어갔고 하루를 시작하는 원림에서 하루의 알곡을 거둔다. 하루를 열고 기다리는 의례는 처절하도록 고요하다. 완이재를 지키는 수직의 나무줄기 흰 눈 위에 짙은 먹선으로 갈겨져 길은 오밀조밀 드러냈다 가린 채 굵은 먹질 만으로 산수가 완성되는 묘합 청딱따구리 생나무 쪼아대던 계명성 길도 사방이 하루를 머금고 쉬는지 가라앉아 지나가는 손님이고 움직임은 긋는 그림이라 오늘 저어 나가는 양명한 오솔길을 지나 산목재 근처 이르러니 휘청 미끄럽다. 다시금 깨처럼 고소한 알곡을 거두러 큰 나무에 기대어 협착을 쪼며 달랜다.The snowy landscapeOhn Hyung-geun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3. 흰 눈의 뒷면 흰 눈의 뒷면온형근 리기다소나무 줄기에서 돋아난 맹아에 흰 눈이 고이 맺힌다. 줄기 한켠에 피어난 눈꽃 완이재翫怡岾 내려가는 고운 서설에 곱게 닿는다. 흰 눈의 뒷면이 드러나고 지난 가을에 푸르던 신갈나무 잎과 솔잎의 맨살에도 맺힌다. 직립의 나무마다 눈꽃을 모시는 위치와 방향이 다르다. 굽거나 휜 줄기가 각기 다른 형상을 지니듯 눈꽃이 들붙은 자리가 나무의 안방이고 사당이다. 흰 눈은 숲의 뒷면으로 포근한 안위를 덮으며 환해진 숲속에서 경계의 눈빛을 쏘아댄다.The back of the white snowOhn Hyung-geun White snow gathers and settles on the sprouts emerging from the trunk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2. 신선의 계절 신선의 계절온형근 신선의 계절이 있다면 겨울이리라 봐라, 고요하여 살 에이는 차가운 숨 섞인 한기 옴짝달싹 얼얼하더니 입 벌린 채 콧김 닿은 입술과 턱 주변 결빙되어 애초에 표정 잃은 하얀 석고였을까 움츠린 산야를 즐기는 건 인적 드문 정경 계절의 고단함을 끝내 주저앉아 기다렸던 높고 낮은 경계 없이 익숙한 친밀로 다가와 곳곳에서 출몰하는 신선의 허연 입김으로 자취를 추적한다. 겨울은 신선의 계절이라고 아주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는 적막한 원림이라고 The Season of the ImmortalOhn Hyung-geun If there is a season of the immortal, it must be winter Look, The c..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2. 1. 기감로 기감로온형근 원림을 거닐다 보면 완이재 내려와 왼쪽에 골짜기 끼고 잠깐 수평의 오솔길 짧은 구간에서 한량없이 스르륵 빨려 드는 쪽잠처럼 황홀하다. 일찌감치 기감로라 이름 붙인 그곳 겨울산이 그리우면 기감을 안겨주는 세포의 떨림과 대면한다. 겨울산이 당도하라 이르니 서둘러 툭툭 털고 오래되어 아련한 기억 뭉개며 순간으로 별이 된 어떤 겨울의 눈매를 여태도 부여잡고 나도 모르게 흠칫대는 겨울산아 아직 그대로 거기 있느냐던 서먹서먹한 그리움Gigamro Ohn Hyung-geun As you stroll through the garden Coming down to Wani-jae, keeping the valley on the left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1. 30. 겨울산 겨울산온형근 밤을 맞이하는 겨울산은 덧술에 고두밥 넣어 휘저을 때 손등에 닿치는 따가운 기운처럼 우람하다. 회오리로 때리는 차가운 타격으로 오지다. 골격이 다부지고 드러난 살결은 백옥같이 희고 달빛처럼 차다. 나 하나 에워싸는 불빛으로 겨울산 밤길을 가늠하기에는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노릇이나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터덜터덜 푸념으로 걷고 왔음이다. 외원재를 오르다 평지에 이르면 협착이 어지럽게 춤추며 앞을 가린다. 대설 앞둔 겨울산아 푸르고 좁던 길, 어느새 활짝 벌려 환해졌으니 홀로 걷기에 민망하여 자꾸 되돌아보는 겨울산아 너만 거기 혼자 남겨졌겠니?Winter MountainOHN Hyung-geun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1. 30. 첫눈은 예민한 타전 첫눈은 예민한 타전온형근 자고 나면 확 바뀐 세상 눈 내린 아침 풍경, 세 겹으로 여미고 옷깃을 세운 채 빨려 든다. 첫눈은 그대가 되어 아직 이승에서 만날 수 있다는 예민한 타전 금세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원림을 기분 좋게 촉촉이 적신 물 머금은 낙엽까지 안개의 속살이 멀리서 그대를 에워쌀 때 푸른 숲 꾀꼬리 노래로 울창했던 계절로 스르륵 들게 한다. 태양은 눈물에 흐려져 아득히 모호하고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듯 막막하다.The first snow is a sensitive tappingOHN Hyung-geun A world that changes completely overnight Morning scenery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1. 29. 첫눈 첫눈온형근 첫눈 내린다. 내리고 내리고 내린다, 숲을 둘러싼 첫눈의 아우라 숲이 젖는다. 첫눈이 녹는다. 알갱이 허물어져 흩어진다. 설중 산행의 첫눈이 날고 날린다. 고갯길 몇 구비 지나며 언덕을 오른다. 뒷발에 힘을 주어 내디딘다. 쭉쭉 뻗는 뒷발에 잇속을 비벼 끈다. 첫눈의 적채층 속 낙엽은 미끄럽다. 숲에서 떨어진 호수의 수면이 기면서 고요하다. 길이 끝나는 급한 절벽으로 숲 줄기 꼿꼿하다. 소나무 숲 사이 좁은 길을 지난다. 이번 첫눈은 힘 있는 눈발로 춤춘다. First SnowOHN Hyung-geun The first snow falls. Falling, falling, and falling,..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1. 28. 새벽달과 별 새벽달과 별온형근 겨울비에 몇 번을 띄우고 삭힌 솔갈비의 뭉침과 도토리를 덮어 줄 낙엽의 짓이김은 마치 잔월효성殘月曉星처럼 낡아진 새벽 완이재를 부대끼며 만난다. 달은 손수 빛살 흘리면서 제 덩치를 갉아먹고 어둑새벽 별은 객쩍이 한순간 안색 비추고는 물러간다. 가려거든 장면 활짝 바뀌듯 벼락 치듯 번쩍할 일이지 나서려든 바라볼 참이라도 건네어 질리게 할 것이지 후들거리는 안타까움 타들어가며. 쪼그라들더라 지는 달도 아슴푸레한 허공에서 나 보란 듯 떨면서 움츠리던 샐녘 별도 닭 울음 실종된 미증유의 계명성鷄鳴聲 길이 미물로 꿈틀댈 때야 비로소 사방을 두리번대며 너를 살핀다. Dawn Moon and StarOHN Hyung-geun In the winter ra..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1. 27. 느닷없이 겨울비 느닷없이 겨울비온형근 우산 없이 나선 산행 출근에서 한 방울 뺨을 때릴 때부터 이건 다르다며 빨리 걷다가 뛰다시피 완이재를 두들겨 내려왔다. 쏟아지는 것들은 맥락 없이 거침없다. 마른 옷가지와 머리카락이 기척하기 전 비 피할 수 있겠다 했으나 늦었다. 기세 좋은 점령군처럼 쏟아붓는 데에는 멀찌감치 물러서 맑은 날을 기다릴 수밖에 어느 집 큰 대문 아래 쪼그려 협착을 풀고 쳐다보니 푸른 잣나무 사이로 허연 빗줄기 완연하여 분명한 실존이 아스팔트를 적신다. 빗물이 튕겨져 내디딘 좁은 지붕 아래도 젖는다. 느닷없이 겨울비 오래도록 내린다. 몸 덥히면 다시 뛰듯 나서야 할 듯 Suddenly Winter RainOHN Hyung-geun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1. 26. 산책의 미학 산책의 미학온형근 당신의 그림자가 스친 그 거리에서 나는 기억 못 한다. 지난밤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달빛 아래 나는 알 수가 없다. 침묵 속에 녹아드는 발자국 소리 새벽마다 떠도는 영혼이 머문 곳 깊어가는 밤처럼 그리고 더욱 언제 상처의 더께를 들쳐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떡갈나무 아래 혹시 취한 적 없었던 건 아닐까에 쓸쓸한 바람이 휘파람 불며 크게 원을 긋고 한 방 풍경친다. 흐릿한 기억 속을 더듬으며 맨날 처절하니 기억나는 게 있겠냐고 별들은 무심하게 깜빡이고 그래서 그런가 달빛만이 내 그림자를 동반하는 친구도 길동무도 상기되지 않는 혼자 산책 The Aesthetics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1. 25. 호안정湖安亭에서 물끄러미 호안정湖安亭에서 물끄러미온형근 낙엽 지독하게 몰아 털던 날은 호안정에 앉는다. 호수에 폐부를 시원하게 씻는다. 심호흡하는 잠휴정도 전망이 사정없이 훤하게 열렸다. 숲이 꽉 찼을 때는 바퀴 소리도 폭포라 여겼었는데 용궁으로 모실 토끼가 보이는 한철이다. 겨울 숲은 넓고 눈 내린 숲은 기어코 광활하다. 숲길은 버석대다 숨죽이며 가라앉으며 천천히 계절의 변화에 잦아든다. 원림을 오를 때 벗고 서 있을 때 입는 동안 따닥따닥 모로스 부호로 관절이 울린다. 낙엽 긁히는 소리에서 퍼뜩 일상에서 정성을 다할 뿐임을 의로운 생활이란 모난 생각을 바르게 펼치는 것임을 내 안이 절로 선다. 호젓한 나목의 원림 길에서 자꾸 누군가 따라나선다. 의로써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1. 23. 단풍 산조 단풍 산조온형근 나뭇잎 물기 빠져 마른 채 틀어 올린 빛나는 갈색 단풍 가득 깔린 숲길로 영롱한 기억을 재촉하는 단풍의 흩날림 세상을 다 가진 듯 오밀조밀 오솔길 흥얼거리는 한가로움 그득하다. 흥겨운 붉은 가을 단풍의 시샘일까 춥기 전까지 매달고 있기에 버거웠을까 잔잔한 바람에도 기꺼이 잎꼭지를 끊고 능선 좌우 비탈숲은 울긋불긋 휘두른다. 단풍은 기약없이 머물며 산조를 불어제친다. 시작 메모늦가을 산행에서 마주한 단풍나무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비 온 뒤라 나뭇잎들의 물기가 빠져나가 바싹 마른 모습이 왠지 애잔하다. 하지만 그 마른 잎이 만들어내는 갈색 빛깔은 깊이 있고 성숙하다.오솔길을 걸으며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을 때마다 지난 기억이 피어오..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2024. 11. 21.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