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연작시::화전16 욕망의 구별-화전.55 욕망의 구별 -화전.55 온형근 매우 작은 글씨들이 방 가득 돌아다닌다 어디에도선뜻 손 잡히는 것 없이 쳐다보는 일 만으로 한나절이다 빗소리는 벽 사이의 조그만 구멍을 통하여 들려오는데 꼼짝하기 싫어 비를 맞고 있다 어디에 있는지를 가려내지 못한다 깜깜한 하늘이다 천장의 쥐가 나도는 소리에 정신이 든다 찢어진 문틈으로 유혹은 강하지만 바깥에 나설 의욕은 없다 해결하지 못하는 살아있음에 대한 우울 지독한 삶의 욕망 곳곳에 제 멋이다 처지고 밟히고 돌아서게 하는 잘 산다는 것 정답은 이것이라는 것 좋은 게 좋다는 것에 대한 번지름한 포장 말이다 무엇일까 내 속에 분노를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욕망이 있다 이조차 느끼지 않아야 길나섬과 방들어섬의 구별이 없을 텐데 Distinction of Desire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풍경 하나-화전.45 풍경 하나 -화전.45온형근 아름다운 풍경에 이끌려 내려가니 냇가에 여전히얼음 속 물 흐르는 지극한 소리가 이어진다 사람들은그렇게 늘 한쪽으로 흐르다 다다르지 못하는 많은사연과 함께 저물어간다 내를 타고 이르지 못하는 곳까지 다가갈 때면 돌아설 일이 아득하여 절로 걸음멈추어진다 뜬금 없이 눈물이 맺힐 때면 한숨은 절로꿈결로 이어지고 텅 비어 놓은 가슴이 풍경들로 큰방이 되어 맴돈다오두막 언덕으로 새떼가 비행조차 없이 정물로 앉아 있다 내 쉴 곳이려니 오래도록 바라본다 먼 산이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는 풍경 또한 그럴싸하다landscape one -Hwajeon.45OHN Hyung-geun Drawn to the beautiful scenery, the sound of water flowing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자서_나를 태워 몸을 작게 하는 소박한 운행 화전자서 - 나를 태워 몸을 작게 하는 소박한 운행 잠자는 시간만 사유하고자 한다.깨어 있는 시공간은 움직이고 부딪히고 만들어 내고바라보고 느끼고 땀 흘리며 흙과 범벅되어 있는짐승같은 원초적 생동에 젖고자 한다.내 몸에 필요한 것만큼만 취하기 위해끊임없이 간섭하는 학습되어진 관습을 태워정성껏 보시하는 땀을 쥐어 짜 내어야 한다.내 몸은 나 아닌 우주의 모든 생명에서 비롯되었고우주의 모든 생명 안에서야 비로소 읽혀진다.한 톨의 밥알을 취하고한 사발의 막걸리를 마셨으면한 사발의 씨앗을 뿌리고한 뙈기의 밭을 갈아야 한다.땀 흘리지 않는 하루가 쌓여육신의 업보가 탑을 이루지 않도록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름이 주어져 측은한 것을산자락에 오르고, 산골짝을 찾아 머무는 것만이화전을 이루는 능사가 아님을이름이 주어진..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박윤우_일굼의 미학, 혹은 나무처럼 뿌리내리기 일굼의 미학, 혹은 나무처럼 뿌리내리기 / 박윤우 서경대 교수․문학평론가 1. 위안의 시, 시의 위안 ‘현대인에게 과연 시는 더 이상 위안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스스로 끝없이 고문과도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또 시를 쓰고, 시를 읽는다. 그만큼 우리는 일상의 두꺼운 갑옷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거나, 혹은 일상의 번잡함 위에 부유하는 타인의 모습들을 관찰하는 데 지친 나머지 시름시름 말의 속병을 앓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어쩌면 현대시는 지금 우리에게 따뜻한 이부자리 역을 맡아줄 것을 강요받고 있다. 고유한 창조물로서 시의 위의가 공고히 유지되던 시대에 서정시의 작자는 독자 위에 군림하는 계몽가의 모습으로, 혹은 고독한 방랑자의 모습으로 자신만의 목소..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화장 火葬 - 화전.70 화장 火葬 - 화전.70온형근 골이 백개라 백골산인 동산말 귀퉁이 움막에서 다시는 찾아 들지 못할 길이 풀섶에 덮여 있다 화전은나무로 가득한 숲이되어 흔적조차 없다 기억의 통로에는 습한 물기를 재우는 이끼로 가득하다 계절을 건너 골짝마다 생명 있는 것들에 앞서 생생했던 화전이신음한다 쇠약하여 움직일 때는 흙내음으로 기고 앉아 있을 때는 산천의 기운으로 지탱한다 숨을 헐떡이며 온 몸에 절은 화전의 생기를 뽑아 낸다 잘 마른 장작처럼 뿜어내는 불기운 내 안에 든 화전을 비운다 산천이 윙윙대며 깊고 짙은 산이 되어있다 Cremation 火葬 - Hwa-jeon.70OHN Hyung-geun A hundred valleys, Baekgolsan, in a corner of the Dongsanmal...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산을 내려와 - 화전.69 산을 내려와 -화전.69 온형근 그러니까 산을 내려와 꿈을 잃어버린 오랜 정적은도시의 소나무 등걸에 기대어 껍질로 굳어 있다 진달래 소박한 산길은 장중한 빗줄기 차창을 녹이듯 퍼붓는 날을 울렸다 빈 공원의 단풍을 모으며 네모난 얼음 덩어리가 된 연못에서 비수같이 날카로운 세찬 바람의 결정에 섬뜩해 한다 손마디마다 거친 힘줄 불거진다 그러나 추웠던 날 나를 섧게 하였던 화전은 없다 깊이 새겨지던 꽃길은 달덩이만 남겨두고 더웁지도 서늘하지도 뜨겁고 차지고 둔하고 날카롭고 얼거나 녹거나 그치거나 퍼붓지 않은 채 저리 훤하다 Coming down the mountain - Hwajeon.69 Ohn Hyung-Geun So, coming down the mountain, the long silence of..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육신─화전.68 육신 - 화전.68 온형근산에서 지친 육신 쉬게 하는 동안에도 술은 가슴을뜨겁게 해 준다 달구어진 가슴으로 문지방을 나서면깊은 산길이 열린다 그 길을 수시로 걷는다 산중에나는 작고 힘없이 시시해 나설 때마다 묵은 잎이 밟힌다더 나설 수 없는 길까지 지친 육신이 바람에 결을이루고 허튼 기침 소리를 곁에 둔 채 실려있다The body - Hwajeon.68 Ohn Hyung-Geun While the weary body rests in the mountains, the drink warms the heart When stepping over the threshold with a heated heart A deep mountain path opens, and I walk it frequently in th..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먼 산 ─화전.67 먼 산 - 화전.67 온형근 계절은 바깥의 훤한 창으로 먼 산이 되어 있다 돌이켜 내다보고 싶은데 되돌아오지 않는 시절만 남는다 한때의 명랑함은 지쳐 있다 가슴에 가득 바람만달라붙는다바람은 고요 속 고막을 찢고 들릴 것 없는 고막이된 아픔은 삭아 오래된 눈매로 먼 산만큼 깊어져 있다 A distant mountain - Hwajeon.67 Ohn Hyung-Geun The season has become a distant mountain through the bright window outside. I want to look out, but only the times that won't return remain. All the cheerfulness of a moment is exhausted,..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밤 숲길 ─화전.66 밤 숲길 - 화전.66온형근 밤 숲길로 휘영청 달빛이 잠들지 못해 떠도는 중생혼이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산에서 산을 닮으려하나 밤길을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다만 달빛을 닮아있는 젖은 가슴만이 있을 뿐 산마을 초상집의 사람내음새가 산자락에 퍼져있다 다시 쌓이는 생활의 편린들이 다 좋다 밤 숲길의 온갖 생각이 무섭다 금방이라도 뛰어 내려가 저자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밤 숲길은 나설 것이 못된다 아침이면 다 허황하여 큰 숨으로 산자락 가득한 중생혼과 속마음을 나눈다 또 다른 하루가 화전에 가득하다 화전의 영혼 가득하여 침묵할 수밖에달빛 비치는 밤길을 만나지 않는다면 밭일에 지쳐코 골고 누울 수 있다 삶을 광주리에 담는 넋만으로지닌 것 없다고 손을 펼 수 있겠다Night Forest Path -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슬픔 ─화전.65 슬픔 - 화전.65온형근 살아있다고 외치는 나무와 풀싹들이 슬퍼 보인다새를 담고 있는 둥지까지 죄다 슬퍼 보인다 입 안 가득 슬픔을 씹고 있다 머물다 사라질 슬픔이 아닌 살아있다는 것에 슬픔이 매겨져 있다 바람은 없다 산천에 남아 쓸쓸하게 표류하는 것들은 흔들리지 않게끔설계되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모든 게 흔들리고 있다삶을 바라보면서 우울이 짙은 날은 쳐다볼 게 없다보이는 것들 한 가지도 남지 않은 채 거칠고 슬프다사립문 밖에는 시키지도 않은 냇물이 곡을 이루며 흐른다 지난 여름에 턱없이 달려들어 아꼈던 냇물이다발을 담그기도 벅찬 냇물 앞에 서 본다같은 종족의 목소리가 몹시 그립다 싶은 산천에 새소리 바람소리 귀신소리 가득하다 그리운 얼굴 하나가 반긴다 간질거리며 웃던 세월이 녹아 있다Sadness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꽃샘추위 ─화전.64 꽃샘추위 - 화전.64온형근 밥상을 차려놓고 넋을 잃는다 대체 바스락대던 밤잠의 기억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낸다 새롭게 바뀌는 것들이 있으면 꽃샘 추위가 찾아올 것이다 꽃샘추위 앞에 우뚝 가슴을 열고 나돌아다닌 어제 낮의객기는 이제 생각나지 않는다 봄이 왔다고 그게 저렇게 샘을 부린다 샘 부리는 놈을 야단치겠다 나돌아다녔지만 콧물 하나 남지 않는다 국이 식고 밥풀이돌처럼 굳더라도 천천히 사물의 풍경이라 여긴다 분명 생각해내야 할 일이다 혼자사는 산속에서 산수의 흐트러짐이 이렇다 저자거리에서의 마음과 다르다꽃샘 추위에 거문고처럼 뜯어지는 화두를 따라 어쩌면 불면의 시간들이 봄의 기운에 따르지 못하는 육신의 변화에 동요되는 것이 분명하다Late winter cold snap ─Hwajeon.64Ohn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버들강아지 ─화전.63 버들강아지 - 화전.63온형근겨울을 닮아 은빛 마음을 털어 내지 못한 채겨울 한 쪽을 달랑 매달아 둔 버들강아지 못내 출렁인다 눈 녹아 살찐 냇가로 부산스럽다 툭 터져 버리면 그만일 것이 제 무슨 겨울을 이겨내겠다 아우성정말이지 봄기운 가득 구겨진 육신을 아우른다 구들장을 비벼댈 수 없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 환한 햇살에는 버들강아지 섬뜩한 은빛 비늘이 일렁인다 그 비늘 하나 달랑 주워들어 가슴 깊이 숨긴다 너무 예리한 비늘을 지녔나살면서 빛나고 예리한 것들 지녀 이리 아파하면서도 다시 아픔을 찾아 나선다 봄이다 봄Pussy willow - Hwajeon.63 Ohn Hyung-geun Resembling winter, unable to shake off the silver heart A pussy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안개 가득한 길 - 화전.62 안개 가득한 길 - 화전.62온형근 안개 가득한 길을 내려오는데 곳곳에 핀 나무들의속삭임은 비밀 가득하다 갈 곳을 잃을까봐 마음을 딱히 열어주지 않는 이 길 하루의 처음을 다지지만 달라질 게 없는 산 속에 사는 이치 어디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산을 내려가고 있는데 환장할 정도의 안개숲에서 길을 잃는다 갈 곳이 없었기에 당혹할찌꺼기는 없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있는 길나섬 또한아니다 나를 통하여 나서려 함인가 나의 길을 밝히려함일까 동무함이 이렇다 안개 가득한 길이 깊숙한 사색의 길이라 깊게 파묻히겠다는 진솔함이 외려 신선하다산에서의 나섬에 골짜기도 능선도 숲의 오솔길도화전에 어울려 안개와 함께 피어나는 걸 막지 않는다오늘 같은 날은 내내 걷히지 앟았으면 한다A fog-filled road - H..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겨울 근처 - 화전.61 겨울 근처 - 화전.61온형근 바싹 마른 창호지에 그을음이 살아있다 여러 날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창호지에 배인 담배 내음 핥고있는데 노루 한 마리가 멀쩡하게 마당에서 노닌다 그를 잡아 겨울을 보탤까 하다 지금은 담배를 맡아 내는 게 급선무라 생각하고 눈길을 돌린다 노루가 뛴다마당의 흙을 몇 번 파내더니 제 몸을 돌린다 노루를잡다 다친 오른손이 꿈틀댄다 꿈결처럼 노루에 올라탄다겨울 준비로 서투른 산길을 찾는다 긴 겨울잠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어디서든 별다르지 않을 겨울 근처의 화전이다 Near winter -Hwajeon.61 Ohn Hyung-geun On the parched rice paper, soot remains alive for several days. Could not se..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밤비 - 화전.60 밤비 - 화전.60온형근 밤비다 손님이 찾아드는 소리처럼 화들짝 놀란다반갑게 맞이하라고 숱하게 울어대던 새들도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새가 사위를 더난 사이 빗소리가 영혼을 담아낸다 간장 종지를 꺼내 사람의 체취를 맡다생채기를 한다 둥지로 숨은 새들이 놀란다왜 우느냐고 한거번에 지저귄다 어느새 나는 울었나 보다 밤비였다 Night rain - Hwajeon.60 Ohn Hyung-geun The night rain, startled like the sound of a guest arriving The birds that cried endlessly to greet warmly are also in the darkness Buried within it, as the birds leave the su..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시간 ─화전.59 시간 - 화전.59온형근 여울을 따라 나서니 강이 열리고 새들도 저녁시간의 숲 가장자리로 한꺼번에 몰린다 굽어보기에 아직이르기만 한 산너머에 있을 꽃길은 눈길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기다린 김에 내처 기다려 보는 거지 고즈넉한 이런 시간들이 나를 일깨운다 내 안의 언어를위하여 새들과 나누는 대화가 강물만큼 말라들었다들과 산으로 헤치고 다녀보니 손 쓸 틈 없이 빠르게두 손이 자유로워진다짧은 시간이 모여 긴 시간으로 바뀔 것이라 생각하기까지 내게 주어진 화전은 넉넉하다 강물의 끄트머리에는 시간을 닮아 있는 새들이 쉬고 있다Time - Hwajeon.59Ohn Hyung-geun Following the stream, the river opens, and birds enter evening time At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