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86 오색의 새벽, 언덕길 오색의 새벽, 언덕길온형근 오색터미널로 내려가는 게곡에서 찬 기운 몰려온다 모자를 세워 쓴다 오색터미널 앞 공중전화 부스에 손을 찜하고 되돌린다 언덕을 오른다 KBS와 MBC에 나온 두 식당이 마주보며 집단 시설 지구의 처음을 알린다 오색 온천장, 설악 온천장, 온천 용천장, 오색그린야드 호텔, 주차장, 별관을 지나치며 남설악 매표소로 간다 건널목 흰 선에 눈도장을 찍고 언덕을 내려간다 버스 기사가 꾸부정 핸들에 가슴을 얹었다 온천 용천장에 검은 잠바가 나를 보며 움찔한다 말 걸려다 만다 설악 온천장 앞에서 오리털 파카가 나를 보며 움찔한다 다가서려다 만다 오색 온천장 앞 바짝 마른 신경질이 잰걸음으로 나를 향하다 되돌아선다 황태 해장국으로 가득한 식당들이 이어진다 오색터미널로 다시 흐른다 조금 있으..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24. 11. 22. 설해목(雪害木) 설해목(雪害木) 온형근 이 악물던 옆 나무의 떨림을 삼켰고가지 끝에 매달린 솔내음 일정한 운율로 파고들고밑가지 위아래로 춤추는데목덜미에서 쏟아지던 바람이 공기 터지는 소리를 내며펼쳐진다 소나무 수관에서 빨래판 소리 나오고가늘고 미끈한 가지 아찔아찔 스르르 내려와 무너지며운다날 선 바람의 손놀림이 숨죽이던 문풍지로 쌓여 정적이깃든다밑동으로 봉곳이 돋은 굵은 바람이 올라탄다 껍질은 부어터진 입술로 떨어지지 않는 가지를 나무라면서잎 끝 세운 바람의 여운에 살포시 포개진다눈 온 후 부푼 가지와 잎의 내통으로끽소리 한 번 못 지르고 당신을 낳는다 누가 더 소리 내어 울었는지소나무도 밤을 새우며 고비를 건너고끝도 없이 파고드는 고음과 저음의 파장에 놀라꺼억 하고 속수무책인 가슴 하늘로 드러낸다나뭇가지 끝 깨..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8. 23. 꽃차 꽃차온형근 지는 것은 꽃이었고피어난 것은 꽃차 그대가 피어 즐거웠다 치자거꾸로 그대가 져서 슬퍼한들 목련꽃에서 우린 뜨거운 찻물에비틀대며 시들어가던 너는 깨어나 따스함은 그대 근처를 맴돌고그대는 근거 없이 반듯해지고 나는 하릴없이 그대와 어울려하루 근처 내내 떠나지 못하며 Flower teaOHN Hyung-geun What was fading was the flower What bloomed was the flower tea Let's say that you bloomed and were delighted Even if you fell back and were saddened In the magnolia flower, we were in hot tea You, who were wilting a..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8. 17. 나무 캐기 나무 캐기 온형근 몸은 맑아지는 일에 쓰인다 단순하면서 반복되는 몸의 동작 속에 푸른 바람이 깊은 샘을 퍼올리는 섭생이 담겼다 바람은 나뭇잎 위로하며 편안하게 쏟아지고 몸 가득 파장을 일으켜 바르르 떨게 하고 손과 발은 저항 없이 몸의 파도에 쓸려 제 각각의 숨을 쉰다 그에게 쏟아지는 땀이 인자함 가득 채운 별들을 깨우고 별빛에 쏘인 간단명료하고 희열이던 몸이 우주에서 하나의 별이 된다 기척도 없이 젖어들어 대지를 끓게 하는 달아오름 너와 내가 서로 만나 발그레해지는 몸으로 나무를 캐서 옮겨 심는 일에는 깨달음이라는 별천지가 있다 환하게 피어오르는 얼굴의 미소가 세월 넘나들며 이룬 따스하여 그윽해진 웃음이 자비와 살아있음의 슬픔 넘어선 측은지심의 눈빛 같은 것들이 거기까지..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8. 8. 움찔 꽃 움찔 꽃 - 처용가온형근 이곳 꽃은 피어벌 나비 날아드는데 어찌 낯가릴 수 있으며꽃 나누어 앉을까 보여질 때 숨을 수 없고나는 듯 부지런할 때 감춰지지 않으니 바람 휘청 꺾이지 않을 것이고햇살 간질여도 흐트러지지 않을 것 어느새 꽃이었다가지는 사이 역시 꽃이었으니 이 세상 꽃이었다가저 세상 꽃이기도 하다 |처용가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노닐다가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어라.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본디 내 것이지마는 앗아간 것을 어찌하리오. -삼국유사| Flinch Flower - CheoyonggaOhn Hyung-Geun The flowers here bloom Bees and butterflies fly in How could one be shy Shall we sit sh..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8. 5. 꽃집의 안부 꽃집의 안부 - 동동_8월령 온형근 작은 바람 슬쩍 스칠까 싶은 한낮가고 오는 길에 매인바르르 떨며 소리 이루는 비울 수 없는 풍경들 더운 날의 아침이 싱그러운 것은 잠든 사이 세상이 차분하게 숙연해져 별과 달빛과 그림자로 머금어 이슬을 낳고미명을 깊은 가슴울음으로 수없이 썼다 지우며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파하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하는 몇 개의세상을 열어두기 때문 아름다움이란 기어이내 상처를 모두의 기쁨으로 거듭나게 하거나모두의 상처를 내 안의 따스함으로 버무려 터지려는 것 |동동_8월령 팔월 보름은아 한가위날이건마는임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늘이 한가위여라.아으 동동다리 -악학궤범 권5|Greetings from the Flower Shop - Dongdong_8 Months OldOhn Hyung..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8. 3. 온순한 박자 온순한 박자온형근 직립의 숲 성근 나무 사이에는 새벽 달빛만 채워 있지않다 얼굴 휘감는 거미줄맑고 어둔 대지의 섬유로 발목 거는 나무뿌리마음 주저앉게 하는 관목 덩어리달빛 머금은 그림자 거미줄에 얼굴 감긴다그리 곱지 않게 나를 보고 있구나박자 고르게 맞춘온순한 인사에 산길이 훤하다 Gentle rhythmOhn Hyung-geun The upright forest, only filled with dawn moonlight between sparse trees Not Spiderweb wrapping around the face Tree roots tripping the ankles with the fibers of clear and dark earth Shrub clusters that make ..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8. 2. 공진화共進化-구기자나무 공진화共進化 - 구기자나무온형근 나뭇가지에 가시를 가졌는데가시의 결을 따라사람의 손이 가는 쪽으로몸을 낮추는 게 분명하여 흥분했는데 길들여진다는 건 얼마나 긴 세월일까바람 부는 방향으로 늘어져 흔들리다땅 냄새 맡으면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잎 쓰다듬듯 퍼 가면 다시 새잎 틔우고 길들여진다는 게 살아가는 것이라고엄지와 검지 사이에잔뜩 푸른 엽록소의 즙액이유전자 지문 사이를 메운다온몸이 바람 부는 대로 휘청거린다 송송 뚫린 세포에서 비릿한 풀내가 진동한다Coevolution - Chinese wolfberry treeOhn Hyung-geun Having thorns on its branches Along the grain of the thorns Towards where human hands reach I..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7. 31. 설렘도 아프다 설렘도 아프다 - 동짓달 기나긴 밤을 온형근 설렘도 이럴 수는 없다 한번 저리기 시작하면 끝을 낼 수 없는 사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조차 찾아내지 못한다차라리 쪼개거나 찔러 쏟아냈으면 싶다두 다리 쭉 뻗어 부르르 떨다 시원찮으면 주먹으로 두들긴다바늘로 찌를까 내내 아픈 것도 아닌 것이 저리기 시작하면 눈물을 짜낸다 저리다고 집착한 순간부터 모든 것은풋사랑처럼 짐짓 딴청을 부리려 애쓰지만몸의 차별을 아는 사람만 알 거라고흠집에 더듬는 것만으로도 환장할 정도라고 강하게 끌어 당기는 절절한 호소로 설렘은 저 혼자 미쳐있거나 구멍 숭숭 뚫린 채 불멸을 꿈꾼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동지ㅅ 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춘풍 니불 아래서리서리 너혔다가,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황진이| ..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7. 27. 쏟아지는 안절부절 쏟아지는 안절부절 - 동동 7월령 온형근 산만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접고아득하니 하나의 색조로 흐린 안개그 위로 함초롬히 떠 있는 태양 붉은 빛살을 따라숲을 향한 들창으로주렁주렁 저절로 슬픔 서린다 무심한 나무껍질도잎 다 빠져나간 악의를 딛고걸쭉한 숲으로 살아간다 |동동_7월령 칠월보름에아 갖가지 제물 벌여 두고임과 함께 지내고자 원을 비옵니다.아으 동동다리 -악학궤범 권5| Pouring restlessness - Dongdong July Spirit Ohn Hyung-geun Folding the wandering gaze A hazy mist in a single tone The sun floating gracefully above it Following the crimson rays Th..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7. 25. 숲의 기원 숲의 기원온형근 그녀와 헤어진 숲은 고요하여가슴 허전한 산길의 모퉁이를 삼킨다어깨로 흐르는 들뜸이나발끝으로 전해지는 아득한 울렁거림까지도 짐짓 모른 채 이미 그녀는 고요에 길들어져 울면서 소리 지른다그래 속으로 풀어지는 것이라고나무 한 그루씩 다가서서는 속내를 가다듬고 껴안는다 그녀의 속삭임에 숲의 모공 일어나곳곳 막혀 범벅이던 수액의 바람길큰 바람 작은 바람 시원하게 풀린다큰 길 오솔길에 풀잎처럼 흔들린다 Origin of the Forest Ohn Hyung-geun The forest she left behind is silent Swallowing the corner of the desolate mountain path The excitement flowing over the should..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7. 24. 안압지 안압지온형근 따스함 아직 넘기지 못하여 어둑한 어깃장 그늘진 햇살로 반쯤 열린 반가움 걸쳤는데 낙엽의 흩날림으로 무릎덮는 온기 저 산 정념 하나 그예 떠다밀고는 시치미를 떼니 흐려진깊이로 들쑥날쑥 길모퉁이로 자취 감추고 이른 새벽 월지굳게 닫힌 문살 틈 기러기와 오리는 다시 올 기약만으로가을 맛 적신다 마른 연못 반짝이는 화강암 다 좋으라고 그저 좋아하라고 웃다가 보면 늘 헛헛한 바람 빠지는 고무풍선 애써 아니라고 가슴 통째로 비우거나 채웠을 때 둥근 달 한 귀퉁이 퍼런 반점 번지는 새벽 귀가 얼굴 표면 차갑게 스치는 솔바람 사이로 떨면서 다가오는 겨우내 품고 살아야 할 햇살 갑자기 눈부시게 속속 들이찬다 Anapji Pond Ohn Hyung-geun Warmth not yet overcome..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7. 23.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온형근 넘쳐 난 계곡물 가라앉을 때쯤물푸레나무 잎새에서 푸른 색소가 자랄 테지처음에는 뿜어낼 줄 몰라퍼질러 곳곳으로 흩어졌다가검은등뻐꾸기 찾아와 한참을 앉아 있을 때쯤아랫녘에서 치밀어 오른 바람이 뜨거워질 때쯤숨 벅찬 상처주변 나무들에게 나누질 못해바짝 잎새를 조일 텐데젖은 기운 잎맥으로 몰려 마른 잎새 물드는데통통한 잎자루로 착한 시선 잔뜩 모아눈매 시원해지는데맑아진 계곡물 흙탕물 걸러낸 곳으로아픈 상처 자주 떨구는 고개손끝만 닿아도 툭 터져 쏟아낼 뭉침저러다터진 수액으로 당신의 무른 살점 비집고푸른 상처로 몇 날 밤을 아파 잠 못 이루고맑은 계곡 모두 새파래져씻어내려면 또 몇 차례 비 쏟아져야 할지저 빗속에서 목청 터지라 함께 소리 질러야 할지 Ash tree Ohn Hyung-geun ..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7. 22. 곰배령 곰배령 - 청산별곡온형근 몸 뒤집어 네 발 하늘 향해 자신의 내부를 유폐시킨다 곰배령 언덕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생명의 외침 자연으로 순응하는 부드러움을 바람이 거칠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기댈 미련이 있기 때문 사람의 틈에서 사람의 틈을 해체하고 스스로 마감하는 장엄 벼랑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았을 감금 곰배령에서 곰삭아 또 어찌하거나 | 청산별곡, 이렁공 더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호리라 -청산별곡, 4연 악장가사 |Gombaeryeong - CheongsanbyeolgokOhn Hyung-geun Turn your body over, four legs facing the sky Imprisoning oneself internally To ..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5. 7. 22. 책 소개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1228.22013205351 ::시집::/천년의숲에서있었네 2014. 10. 24. 직시直視 직시온형근 넘치지 않는다흐르지 않아 움직이지도 않는다지나쳤구나 싶은 때를 안다기세를 꺾어바라볼 수 있는 참된 마음을 끄집어낸다호방하다는 생각잘 이해한다는 생각세상의 쓴맛 단맛 다 맛본 유연함이라는 생각에서소통되지 않는 부분을바르게 뚫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마저똑바로 바라본다그런 연후에 이르는 자유 또한 알지 못한다넘치지 않는 것일 테다넘치려는 기운에 묻혀 있을 뿐똑바로 바라본다넘치고 나면 망가져 있을까망가지고 나면 비워져 있을까 Direct gazeOHN Hyung-geun Does not overflow Does not flow and does not move Knows the time when it seems to have passed Breaks the momentum D..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자서_흔적을 더듬어 가다 궤적 하나 떨꾼다. 自序............ 흔적을 더듬어 가다 궤적 하나 떨꾼다.이조차 비워야 할 땡글땡글한 마음임을 알면서도.아직도 청주에서 목천 사이 경부고속도로의 고라니,내 눈과 마주친 까만 눈동자가 깊고 그윽하기만 하다. 다시 풀을 뽑기로 한다.깊이 오래도록 머물러야 할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너무 사랑해 달아오른 입김으로 외려 숨이 콱콱 막혀야 한다.다시 나무에게로 돌아간다.사람의 발길에 채이고공중으로 날리는 서툰 약속과가벼워 쥐어지지 않는 헛말의 홍수에서한적한 숲, 풀과 벌레를 육화시키는 나무의 거처로.일을 해 본 사람은 외로움도 절망도 기쁨의 희망도 인연에 따라 흐르게 두는 것을 배운다.소리와 침묵이 호흡과 정지가쓸쓸하고 고요하게 서로 사랑하는 줄 알게 된다.대금 높낮이의 파편이 달게 남아그리워하다가 절절해..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온몸에 절단기 소리 온몸에 절단기 소리 온형근 앞 창문을 닫았다 옆 창문도 닫아야 했다 화장실 쪽창이 열려 있다 온몸에 절단기 소리가 쥐어 짜진다 책을 읽거나 아득한 생각에 절어 있는데 어김없이 꼭 고만한 간격으로 길거리 마당에 펼쳐진 절단기의 고통스러운 고속회전은 세상의 열려있는 간극 바람이거나 햇살이거나 낮아진 그늘 근처이거나를 가리지 않아 냅다 휘둘려 있다 뿌리 깊숙이 땅속에 묻어 두었다 풀어내는 어둡고 습기 있는 소리를 끄집어내고는 징허게 울어댄다 몸을 뒤척이며 귀 막고 코 박아 보나 들리는 동안에는 찢어지듯 산산조각 된다 절단기에 물려 있는 철판만 자로 잰듯 잘라져 있었다 The sound of a cutter all over the body Ohn Hyung-Geun I closed the front wi..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시인의 가슴 시인의 가슴온형근 그에게 하단전下丹田은 둥글고 넓고 물렁하다 그는 배꼽 아래에 대하여 공부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배꼽 위쪽에 유난히 천착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슴이 발달하였다 뭔가가 제 혼자 자라며 지경에 이르는 것이 있다면 가슴일 것이다 파헤쳐져 도려낸 상처와 물려 터진 그의 가슴은 단단하다 하단에 대하여 진지할 때 난처하다 그의 하단은 배고프고 빈곤한 시인의 변덕스런 아랫배일 뿐이다 맑고 탁한 음식을 구반할 줄 모르는 길들지 않은 아랫배 그러나 굶거나 부실하여도 풍경 좋은 산천을 만나면 익힌 술로 거나해지는 정신을 섭생으로 모시고 있다 숱한 짓이김 가슴앓이로 성벽을 쌓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쯤에서 가슴 깃들여 접는다Poet's Heart Ohn Hyung-Geun F..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탱탱한 종아리 탱탱한 종아리 온형근 과천에서 계곡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관악산은 청명의 형태로 드물게 건강하다 연주암에서 공양이 있다는 앎에 빈손임에도 희망이라는 알맹이가 일렁인다 사당에서 올라가는 길과 달리 종아리에 힘이 든다 산행 이튿날 어김없이 탱탱해진 종아리를 손바닥으로 비비고 두딜긴다 짜리~한 진통이 종아리에서 온몸으로 옮겨지는데도 또 건드리고 싶다 길거리에서 종아리만 커져 보여 저 종아리도 탱탱하게 알이 배여 문지르면 짜리 할까 저들 아픈 종아리를 지녔어도 얼굴 환하게 화평하다 관악산에서 얻어 온 종아리로 껍질 벗긴 속깊은 미소 짓는데 지나며 보이는 세상의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종아리들이 모두 예쁘다 Firm CalvesOhn Hyeong-Geun Climbing Gwanaksan alo..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별도 달도 별도 달도 온형근 잘못된 것은 들뜸이 아닐까 늘 쳐다보며 다독거려야 할 참인데 무언가 보이려는 그런 것들 별도 달도 놀고 나면 남은 것은 울렁거림 허망한 광대 짓이라고 생각했을 때 억 광년의 우주로 실려 다녔다Separate stars and moon Ohn Hyung-geun Could it be that the mistake is excitement Always looking and soothing, as it should be Trying to show something Such things After the stars and moon have played What remains is a queasy feeling When I thought it was a futile clown act ..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테니스 앨보 테니스 앨보 온형근 붙잡을만한 튼실한 것들 곳곳 삐죽 뻗기만 하면 매달릴 수 있는 것들 손이 민망해 스치기만 해도 달라붙는 것들은 밀쳐내는 부력을 가졌다 낯설어져 더 깊고 퍼즐처럼 짜 맞추기 어려워 낭떠러지처럼 심하게 갈라졌다 팔꿈치에서 삐그덕거리는 경고 일상의 널려 있는 자리에서 막힌 채 생동하는 앨보 제 것인 양 바닥을 기고 좌중에서 푹 익어가고 있다 몹시 매 맞아 시퍼렇게 멍든 언어의 기운 욱신거려 끝도 없는 나락 한참을 지나쳐 온몸의 장독을 다독거릴 수 있는 천근 같은 몸의 부분들이 각기 따로 앉아 둔덕을 이룬다 Tennis Elbow Ohn Hyung-geun Sturdy things to hold onto Things that can be clung to if they just st..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아침 햇살 아침 햇살온형근 한동안 잊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지지리도 다급한 일상은 늘 고개를 한쪽으로 꺾어 둔다 만져보면 단단해져 매만지기 어려운 저잣거리를 닮았다 그러나 아침 햇살을 만난다 새삼스럽다는 생각으로 그의 따스한 어루만짐에 이끌린다 뜨겁지도 않고 설익지 않은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다 거칠 것 없이 세상으로 다가오는 것 피할 수 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음에도 선택이라 만남이 유예되어 있다는 것 가슴 아래에서 따스한 기운이 솟아오르면서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지는 것 그리하여 그와 만나는 날은 오랜만에 세상의 기운 생성, 생성, 생성으로 가득하여 그윽해지는것 Morning Sunshine Ohn Hyung-geun The desperately urgent daily life, which I h..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간肝 간肝 온형근 거울로 상기된 눈이 나를 쳐다본다 눈은 간을 읽게 해준다 삼각형을 닮아 있는 간을 매만지다 나무를 만난다 간은 나무의 성질을 가졌다 발갛게 익은 눈망울을 보면서 갈등의 모습을 떠올린다 갈등은 나무의 심재다 심재는 죽어 있는 부분이지만 색을 지녔다 생명이 오고 가는 통로는 아니지만 촉촉하여 살아 있어 보인다 심재처럼 간도 젖어 있을 게다 갈등이 심한 날은 간이 말라드나 보다 바짝 마르다 보니 논바닥 갈라지듯 눈을 벌겋게 상기시켜 호소한다 호소는 늘 눈망울로 젖어있다Liver Ohn Hyeong-geun The eyes reflected in the mirror look at me. The eyes allow me to read the liver. I touch the liver,..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화농化膿 화농化膿온형근 열이 많았던 날 슬쩍 귀 위로 포도상구균이 침입한다 분화구가 서너 개 생기더니 백혈구 유인 인지나 로이코시딘을 생성하여 감염 부위에 화농성 염炎을 일으킨다 농즙膿汁이 들락거리고 항생제 주사를 맞고 절룩거린다 생성과 소멸 사이가 보름이더니 길어지고 딱딱해진 피지로 포장된 길이 뒷목으로 이어져 찢어내겠다고 가라앚기를 기다리다가 견딜만하다고 그가 살아내는 방식 찢어내도 다시 찢어낼 게 예비 되었을 거라는 생각 그에게 화농균은 그렇게 들락거렸건만 들어낼 생각 그의 몸에 거추장스러운 대상들이 꽤 매달려 있다는 그래서 흐르는 물살을 위해 물길을 터 주자는 뒷목이 뻣뻣할 때쯤에야 겨우 도인체조를 한다 굴신屈伸이 어려울 때쯤에야 화농이 터진다 Suppuration Ohn Hyung-geun T..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조기 매운탕과 아버지 조기 매운탕과 아버지온형근 아버지를 남편과 부산역으로 모셨거든 아직 시아버지와 시댁 식구들이 그대로 남았는데 도망치듯 남편과 모시다 드린다고 나섰건만 오후 열한 시 열차 시간은 두어 시간 남았다는 거지 일흔의 아버지를 모시고 대구탕 대접을 하려는데 조기 매운탕을 드신다며 잠시 자리를 뜨셨어 남편은 장인께서 술 드시는 몰두에 열차표가 없을 것이니 편하게 술 드시고 근처에서 주무신 후 아침에 출발하게 소곤거리며 아버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일흔의 아버지가 철도 패밀리 카드를 만드셨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데 정성을 쏟으신 거지 그러니 잔뜩 조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시고 "나도 그렇게 살지 못해 이란 말할 자격은 없지만, 忍자 하나더라. '참을 인' 자." "내 얼마나 모을 줄 모르지만, 사돈어른과 국외든.. ::시집::/고라니고속도로 2013. 12. 27. 나뭇잎에게 나뭇잎에게-풍광風光.10 온형근 바람에 잎 뒤집혀 하늘로 흔들리는 갯버들 길가비 머금어 무거워진 가지는 바로 서질 못해한 쪽 가지는 벼가 흔들리는 들판으로한 쪽 가지는 견고하게 메말라 먼지까지 더 이상 날릴 게 없는 아스팔트길에 기댄 채졸음은 내 어느 곳에 잠복해뼈마디 쑤시는 허공으로 숨겨져바람의 거처를 빌려문 열어주는 빈 가슴 건넛방에서 한숨 깊어져 섬돌로 머문다가을을 가깝게 혹은 서럽도록 닮아 있는 햇살이나뭇잎을 반짝거리게 비추니어디선가 기어 나와 매 순간마다 잔잔한 물결 흐르듯 잎을 흔들고내 안에 잠겨져 있는 채워져 열어낼 수 없는선선한 풍광이 눈썹을 아스라이 긁어댔다길가에 늘어선 나뭇잎들은 흥에 겨워 풍광과 교접하고내가 눈부신 것은 나 없이도 만물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잽싸게 스쳐 지나가는 ..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환절기 환절기온형근(OHN Hyung-geun) 계절은 내려가다 기슭 하나를 끼고 돌 때쯤이면살아 있는 것들을 덧나게 하는 맹랑함을 지녔다비스듬히 다가오거나 펑퍼짐하게 달라붙을 수 있어촘촘하게 둘러싸며 가령 겨울을 위협하던 긴박함에험난한 길을 나서는 채비로 지독한 생채기를 주는 봄처럼상처를 입히거나 꺾어내는 것으로 가파른 화답을 겨우 숨 돌리며 생명이라 짐작한다환절기는계절 사이에 낀 계절한가하고 트여 있는 계절의 정취 자연을 흠씬 맛보게 하는 여행길 계절이 의지할 수 있는 목록이다예민하여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몸은 비비꼬여매끄럽던 손바닥이 벗겨져 한 꺼풀 새 살이 돋을 즈음세상은 환절기의 극상으로 새로운 장면을 지닌다환절기는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라고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듯이매순간 잊혀질 수 없는 인..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자서_풍경의 분별 풍경의 분별온형근 발걸음 멈추는 곳에 눈길 닿는 곳이 있다 풍경은 유희다. 잘못 그려진 곳에 덧칠로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내갈겨진 성난 붓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무줄기와 우듬지 끝자락, 여리고 가느다란 가지 사이로 바라보는 것은 모양과 질량과 부피를 가졌다. 풍경이란 무엇인가. 내 안에 없는 낯선 모습들, 그래서 나를 심하게 요동시키는 것들이다. 어쩌면 풍경이란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불쑥 튀어나오는 낯선 친구와 같다. 돌발적인 것들에서 풍경은 일상적인 삶에 팽팽한 긴장을 준다. 풍경이 풍경이 될 때 이미 낯설어져 있다. 비로소 분별이 된다. 낯선 것은 새롭다. 그래서 풍경이 된다. Discerning the Landscape OHN Hyung-geun ..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박윤우_산책자의 길, 풍경과 하나 되기 산책자의 길, 풍경과 하나 되기박윤우 (서경대 교수, 문학평론가) 1. 풍경의 안과 밖 온형근 시인은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손을 가졌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인 연작시 「화전火田」의 거친 호흡과 자연에 밀착된 야성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 그가 아프다. 아니 아팠단다. 하지만 그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나이는 못 속인다며 나와 같이 침도 맞고 한약을 지어먹었다. 그러나 그는 또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의 치유를 믿는다. 아니 믿을 것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소박하기만 하다. 그는 그저 꽃이 좋고 풀이 좋아서, 나무가 좋고 숲이 좋아서 산을 찾고 들을 다니며, 정원을 가꾸고 땅을 일구었던 것뿐이다. 그러기에 그는 오히려 한 사람의 풍류가이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하지만 그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