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순한 박자

온순한 박자

온형근

 

 

 

직립의 숲 성근 나무 사이에는 새벽 달빛만 채워 있지

않다

 

얼굴 휘감는 거미줄

맑고 어둔 대지의 섬유로 발목 거는 나무뿌리

마음 주저앉게 하는 관목 덩어리

달빛 머금은 그림자

 

거미줄에 얼굴 감긴다

그리 곱지 않게 나를 보고 있구나

박자 고르게 맞춘

온순한 인사에 산길이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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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tle rhythm

Ohn Hyung-geun

 

 

 

The upright forest, only filled with dawn moonlight between sparse trees
Not

 

Spiderweb wrapping around the face
Tree roots tripping the ankles with the fibers of clear and dark earth
Shrub clusters that make the heart sink
Shadows imbued with moonlight

 

Face wrapped in spiderwebs
Looking at me not so kindly
Rhythm evenly matched
The mountain path brightens with a gentle gr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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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메모

어스름한 새벽, 성긴 나무들 사이로 달빛이 스며든다. 직립의 숲이 만드는 고요한 공간에 서서 깊은 호흡을 들이마신다. 달빛은 나무 사이를 은은하게 채운다. 내 시선이 부드럽다. 섬세한 질서가 스며든다.

예기치 않은 거미줄이 얼굴을 스친다. 순간적인 놀람이 시적 감흥으로 전환된다. 대지의 섬유질 같은 나무뿌리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은밀한 대화의 시작이다. 관목 덩어리를 보는마음이 무겁다.

달빛에 젖은 그림자가 나를 비춘다. 거미줄에 감긴 얼굴이다. 경계가 흐려진다. 곱지 않은 모습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 온순한 박자로 걸어가면서 원림을 맞이한다. 겸손하게 대화한다. 그렇게 산길은 시심으로 밝아온다.

At the dim dawn, moonlight seeps through sparse trees. Standing in the tranquil space created by the upright forest, I take a deep breath. The moonlight softly fills the gaps between the trees. My gaze is gentle. A delicate order permeates.

An unexpected spider web brushes against my face. The momentary surprise transforms into poetic inspiration. Tree roots, like the fibers of the earth, hold my steps. It is the beginning of a secret conversation. My heart feels heavy as I look at the clump of shrubs.

A shadow soaked in moonlight reflects me. It is a face wrapped in spider webs. Boundaries blur. Though not a pleasant sight, I accept myself as I am. Walking in a gentle rhythm, I greet the garden. I converse humbly. Thus, the mountain path brightens with poetic sentiment.

 

"직립의 숲 성근 나무 사이에는 새벽 달빛만 채워 있지 않다. 그리 곱지 않게 나를 보고 있구나 In the upright forest, between the dense trees, it is not only the dawn moonlight that fills the space. You are looking at me not so kindly."

 

 

 

 

천년의 숲에 서 있었네

온형근 시집 『천년의 숲에 서 있었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맑은 물에 발 담그고’, ‘색즉단풍’, ‘산꼭대기 찰나’, ‘나무 캐기’, ‘겨울 대청’, ‘물푸레나무’, ‘청계산 삼거리’, ‘그 겨울 전별’, ‘도시락’ 등의 시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온형근

출판

문학의전당

출판일

201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