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86 노란색과 붉은색 사이 노란색과 붉은색 사이온형근 그 길에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물든느티나무 가로수 길이 버티고 있었다낮밤이서로 터지도록 부딪혀속마음 열어보지도 못하고제 생각만으로 골몰해지는 사이저만치서 노란색 혹은 붉은색으로 콕콕 찌르며 물들여 놓은 상처처연한 듯향기마저 선명한 빛을 뿜어고운 가을이 익어 가는데숱하게 지나가는 관객의 무심어쩌다 시들해진 삶을 뚫고 빛나는 시선을 받게 된다노란색과 붉은색에 가볍게 낀 가을이 시린 가슴으로 되돌아온다 Between yellow and red Ohn Hyung-Geun On that road, dyed in yellow and red Stood a row of zelkova trees Day and night Colliding fiercely Without even reveali..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낮아진 햇살 낮아진 햇살온형근큰길로 나와 연구원을 끼고 언덕을 내려올 때낮게 드리워져 두둑한 살집을 파고드는 햇살이플라타너스 성록 위로 한참 올려져 있는데걸음걸음 짙어지는 건물 뒤로 펼쳐지는 그늘은어느새 플라타너스 근처에 새삼스레 못미처멀리 감잎은 햇살로 반짝였는데이른 서리는 혁질의 잎을 쪼그려지게 하고몇 번의 서리를 더 만나면 모두 너부러져 있을곳곳에 한 발짝 사이로 생을 마감한 잎들탐스러운 감만 제 빛을 다닥뜨려 볼 양으로낮아진 햇살로 무작정 내 몸을 이끌어낸다The lowered sunlight Ohn Hyung-Geun Coming out to the main road, passing the research center, and descending the hill The sunlight, hanging ..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낙엽이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은 낙엽이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은 온형근 낙엽이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은바람이 퍼질러 주저앉고자끝이 없는 먼 길을 타고 흐르고자 하는 욕망가을이 반짝거리며 속셈 없이 털어내던 잎 몇 개 매달린 가로수들의 수런거림찬바람 사람이 걷지 않는 길에는낙엽만 길을 따라 흐르며 두런댄다걷고 있는 이 길을 따라 사라지고 말면텅 비어 바람을 맞이할 수 없는 것을바람이 부는지 낙엽이 흐르는지볼이 찬지 두터운지 못내 아쉬워 자꾸걷다가 되돌아보는 길 위로길을 따라 쓸리듯 흐르는 바람 앞에사람의 흔적 비어 썰렁한 낙엽긴 밤길 걷다 맞이하는 새벽Leaves flowing along the road Ohn Hyung-geun Leaves flowing along the road The wind sprawling, wanting..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풍경의 분별 풍경의 분별온형근 거친 풍경에 따사로운 입김을 들이지르나들어간 것 같으면서도 금방 차가워진다바위만 한 얼음덩어리라 근접도 못하고어깨뼈 빈틈을 쏘며 천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풍경은 못된 습관을 태생으로 지녔다먹지도 잠자지도 쉬지도 않는 우주율지치면 되돌아가는 일의 중간에 치여쓰러지는 풍경은 의지가 아니라 율려다풍경의 안온은 세파에 찌들어애처로울 정도로 힘차고 씩씩하게 분별이 된다떠밀려 물살을 만나고 암초에 숨고 하는상처를 망각하기 위한 몸의 추스름풍경은 어수선한 세상을 봉안하는 일인 것을돌아올 수 없는 길을 향하여 당차지고 있는풍경이 나와 상관되어 길러지는 것이다그 긴 길은 시름이고 쓸쓸하여몸을 근질이며 자주 발길질을 종종거리고계절마다 돌 틈 사이에 핀 햇살 같아그악스레 다시 정겨운 순간을 살아가는 당..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묘목苗木 묘목苗木온형근 새 살처럼 연한 나무씨앗에서 일어나 눈 뜬 채비와 햇살과 바람과 달빛으로겨우 제 살을 만들어 놓고는살포시 들어간 겨울잠살을 포개 놓은 땅은 얼고지상으로 돋친 살가지와 겨울눈 위로 쏟아지는 굵은 눈발서툰 바람에 나뒹구는데얼음덩어리와 찬바람처음이어 낯선 세상의 간극間隙에 묘목 그 편안한 자리Nursery stockOhn Hyung-geun A tree as tender as new flesh Rising from the seed with eyes open With rain, sunlight, wind, and moonlight Barely forming its own flesh Gently entering winter sleep The layered earth freezes Bra..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봄 산책 봄 산책온형근 생강나무가 한 쪽 구석에서 톡톡한 꽃을 피워내고 매화 꽃망울이 터질 듯 잔잔한 햇볕으로 봄을 그려내던 날도 속으로만 벅차 매운맛 돌도록 연실 뭐라고 구김살 많은 기분으로 바람에게 안부를 묻고는 둘러댔는데 바람은 가벼워져 성긴 깁처럼 산을 훌훌 타며 내쯤에서 쏟아진다 따로 산에 오르자는 권고 없이 절로 이끌리는 어떤 날들은 정강이에서 허리춤에 이르기까지 정리되지 않은 세간으로 인해 뒷심이 허전해서일까 봄꽃 사진이라도 당돌하게 찍고 싶은 웅얼거림이 바람의 속삭임으로 바짝 나를 조이며 다가오고 아비와 아들은 이미 사방으로 퍼져 너름새가 한껏 웅장해져 있어 걸음걸음 마음속까지 휘젓는 들판 나선 강아지 모양 산책은 젖어 있어 봄기운마저 화려한 맛으로 들먹들먹하도록 터져 울리고 내친김에 신나는 하..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와편瓦片이 있는 풍경 와편瓦片이 있는 풍경온형근 산등성이로 그윽하게 키를 넘겨 환하게 흐르는햇살이 끈으로 끄집어내어져 있는 폐사지두 층의 밭은 주거니 받거니 햇살과 교직하여작은골과 이랑을 죄다 들추어내듯 표면마다 밭이라는 질료에 잘 어울려 봄풀들이 수줍다야트막한 정상의 시선을 받아 마시는멀리서 바라보는 흙색은 풀색을 닮아 산줄기 두 개가 엮어 놓은 골 사이로 펼쳐진끝없이 뻗어나가는 풍경은 골 깊고 넓게 벌려져밭으로 흩어진 햇살 속의 와편마치 흡착되듯 아찔한 풍경에 이끌린다밋밋하고 등 굽은 기와의 한 부분을 집어 들고바람과 햇빛과 폐사지의 숨결을 잇고 있는집채만한 바위가 숨겨 놓은 번잡스러운 세월을잔잔한 개울물 흐르는 얕은 소리에서 더듬는다대체 이 곳가슴 아리게 묻고 살아야 했을 소멸로의 여정은몽환적이었을까 되살아 날 때마..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시간의 풍경 시간의 풍경 온형근 구름 하나 떠다니는 가슴을 헤치고 거리낌 없이 들며 날 저무는 때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목련은 지고살집 두둑해진 신록이 점잖게 시침 뗀다무릇 기울어져 큰 나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절개면 고속도로 개나리의 현란한 율동은쉽게 발 돌리지 못하는 낯선 시간 속에가려놓은 시간의 풍경이 두터워져선한 눈길이 닿는다풍경의 잔맵시는 읽고 나면 달라져 있는 대상을 비집고흐트러진 낯설음은 시간이라는 속성 속에 꽃 피어숲의 풍경은 울창하고 이지러져시간에서 함부로 튕겨나들판의 눈부심에 동공이 좁게 모아진다 The Scenery of TimeOhn Hyung-geun Pushing Through a Heart with a Floating Cloud Without Hesitation, When the ..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생각이었던 무념들이 생각이었던 무념들이온형근 술을 마시면생각이었던 무념들이속히 발가벗겨져서가려졌던 세상뒷골목까지 환히 보이고입안 가득 머금어하지 못한 말들도차곡차곡 정리되고진실이기 바랬던 사실의거짓까지 발라진다조건반사처럼 고이던 침이순식간에 휘발되어 바싹 말라 있어회칼이 따로 없다마른 회칼이 내 안에 있었음을술/이몸/을부르르 떨게 하며환/하/게발/라/낸/다 The thoughts that were once emptyOHN Hyung-geun When I drink alcohol The thoughts that were once empty Are quickly stripped bare The hidden world Becomes clearly visible even to the back alleys Filling m..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소멸을 위한 여름산 소멸을 위한 여름산온형근 혼자여야 할 여름산 짙은 녹음 위로아침해가 희뿌옇게 공기층을 달군다소멸 역시 먼 곳에서 달려와 피어 오른다숨 죽여 있던 새들의 분주한 몸짓낯익은 폼으로 몸을 맡기며 비행한다거친 호흡에 여름산 가득 넘치는 생명의 비릿함한참 후 제 자리에 남아 하나가 되었던 아침해를흐트러진 숲을 정돈한 채 저만치 떠나 보낸다쓸쓸하게 남은 새들이 기어들 듯 숨죽이는 동안소멸은 거친 숨을 멈추는 정적에 귀기울인다아주 오랫동안 들뜬 숲의 열기는 잊혀져서둘러 옷을 벗고 서둘러 잠든숲 사이로 음습한 이끼가 번져 들고 있다이끼는 굴곡 심한 바위를 찾아 긴 산행을 떠나고이르게 지친 노을이 깔릴 때까지 그렇게 황홀한우주의 율동인양 바람을 만나 교접한다더 이상 지저귀지 않을 새들이 눈감고 꿈을 꾼다기운 놓친 여..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수원성 성벽 앞에서 수원성 성벽 앞에서온형근 성벽을 바라본다 돌과 돌이 만들어 낸 세월의 골을따라 나선다 그리고는 항변한다 사랑은 허튼층 쌓기로 메워지는 것 아니냐고 어쩌다 만나는 바른층 쌓기는 안개에 가려지고 만다 견고하게 축조된 성벽의 허튼층 만큼이나 사랑도 줄맞추거나 다독이기가 일정하지 않다 담쟁이덩굴로 파랗게 덮어 사랑을 감추고있던 계절이 끝났다 허옇게 혹은 벌거벗은 성벽의 담쟁이 줄기 너머로 사랑의 허튼층 쌓기도 나출되어 부끄럽다 세월의 골로 깊이 숨으려는데 한꺼번에 햇살이 따사로워 숨어도 자꾸 나오게 되는 건 계절 때문일까 부석사의 돌 틈 사이에서의 속삭임도 이러할까안개로 가려지기를 애써 바라는데 자꾸 햇살의 손짓이 돌 틈보다 아늑하기만 하다 성벽 앞에 서 있다 보면 아득해지고 만다 까마득한 시원의 손짓이 성..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두께가 없는 풍경 두께가 없는 풍경온형근새벽 숲 풍경은굵은 붓이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일정한 춤사위로 내갈겨진 흔적팽팽한 긴장이 일상적이지 않은 수묵화익숙한 것들이 작은 티끌 같아져낯설어 우주처럼 커진 풍경이 된다멀리서 기차 소리 같은 바람이 스친다우주의 일부가 빠져나가거나 부딪치는 소리낯선 것이 당돌하게 튀어 오르는두께가 없는 돌발적인 것들에게모양과 크기와 부피와 질량이 있다 A landscape without thickness Ohn Hyung-Geun The dawn forest landscape A thick brush vertically reaching toward the sky Traces left with consistent dance-like strokes A taut tension, an unconve..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억새는 억새밭에서 억새는 억새밭에서온형근가을 냄새가 가득 묻혀 있는 억새는 억새밭에서여름을 떨치며 몸서리나게 몸 뒤척이며 흔든다골을 타고 정상에 긴 사선으로 올라탄 채 바람은억새에 실려 있는 떨림과 가을 바람의 살랑임과번잡하여 수선되지 않는 여름의 기억을 떨군다 억새는 억새밭에서치밀어 오르는 바람 앞에그윽하여 끝 모를 속내맞서서 단단해지지 않고바람의 소리만 들어도바람의 자장磁場만 느껴도훅 하고 꺼질 춧불인양고개를 흔들며 풍랑을 타고제치고 꺾여서 억세진다 서걱거리며 억새는 억새밭에서 모여 웅성대고바람의 소리일지 억새의 긴 한숨이 깊어졌을지뜻모를 한숨이 더해져 치오르는 바람과 함께능선에서 고개 너머로 아홉 시 방향으로 꺾이는직각의 걸음 제 기운 바람과 나누는 어우러짐 Silver grass is in the silver gr..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미소 미소온형근 긴 강물을 따라 흐르다 보면아니 더 정확하게 더듬어삶의 생동과 가라앉음을 번갈아 지니고호숫가나 산등성이에서 넋놓고 멍해질 때뜻없이 한숨 같은 것이 저 혼자 쏟아지고떠도는 구름 한 조각, 발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나는 새 한 마리, 고개 삐죽 내민 풀 한 포기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라고 우겨질 때 그럴 때쯤이면 참으로 긴 강을 건너온 것이다눈 빛나며 반기던너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던 순수까지도나 아닌 나 이외의 모든 살아 있음이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던 처절함까지도이때쯤이면 어디에서부터 미소가 된다뜻없이 흐르던 강물은 따뜻해 보이고물살은 탄력 있게 살아 꿈틀대며우아한 흐름으로 멋을 내고 강턱을 만나 내는 무딘 소리까지 곱다그저 세월이 미소가 된다강물을 모두 퍼낸다 하여도 미소가 되고살고 지고의 가려..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자서_슬픔이라는 이름의 성역 슬픔이라는 이름의 성역자서 시인이 시인을 만나면 세상은 꿈을 꾼다. 시인이 만나는 시인은일상이고 범상함 가득하건만어느새 무르익은 그것은시인의 몸짓이고 시이다 시인이 만나는 사람들은 시인이다시인을 만난시인이 된 사람들은 아름답다 시인은슬픔이라는 성역을 지녔다가끔은 세상이슬픔을 지녀 질량이 있는시인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내 안에 채워진 시인의 수는 또한 몇이냐?The Sanctuary Named Sorrow Autobiography When a Poet Meets a Poet, the World Dreams. The Poet a Poet Meets Is Full of Everydayness and Ordinariness, Yet What Ripens Before You Know It Is the ..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하상일_자연의 상상력과 생명의식을 통한 성찰 자연의 상상력과 생명의식을 통한 성찰 하상일 1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우리 시단은 그 어느 때보다 서정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지난 세기말 해체적 사유와 대중문화의 범람을 거쳐온 우리 시가 다시 서정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변화를 보이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첨단기술과 인터넷으로 재편된 오늘날의 문학지형을 생각할 때 우리 시의 변화가 더욱 해체적이고 대중문화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 동안 우리는 세기말의 시적 변화를 점검할 때마다 항상 시의 위기, 나아가 문학의 위기를 거론하는 일을 결코 빠뜨리지 않았다. 심지어 시의 위기라는 말 자체가 심각한 위기를 불러온다고 말할 만큼 우리 시단은 위기담론의 홍수 속에..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가을이 익어가는데 가을이 익어가는데온형근 어제는 까치가 쪼아먹다 떨어뜨린 감을그 식탐에 터져 찌그러진 우주를 본다오늘은 괜히 사방을 두리번대며 돌아다니다지난 겨울 얼고 녹으며 익혀진 고욤이 생각나그 고욤나무를 멀찌감치 바라보다우산을 받쳐들고 고욤나무 밑으로 다가갔다우산으로 하늘을 반쯤 가리고 못 볼 것을 보듯노랗게 익은 작고 앙증맞은 열매를 눈 여겨비오는 가을 하늘을 얼굴에 받아 내며그래 딱 하나만 따보자고 한참을 주저했다내 손에 쥐어진 고욤의 탱탱함에는 벌레도 없이거참, 작은 것에도 이렇게 큰 우주가 있다니다시 담쟁이덩굴 밭으로 가서쭈그려 앉아 풀을 뽑다가손을 씻고괜히 돌아친 내 자신에게차를 우려 토닥이며 달래려 한다그래 고욤의 마음이었나 보다잎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우주를 만들어 내는오늘 나를 이끈 것은 고욤이었어A..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딱딱한 의자 딱딱한 의자온형근1. 휑하니 나앉아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을오래도록 보았다매서운 칼바람에 처진 어깨를 펴라고 말하려는데 입안에서만 맴돈다2.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사변적인 그의생각이 누워 있다그에게 궁리라는 것은 동그랗게 몸을 휘어 뱀처럼똬리를 틀고 있는 것3.다시 늘어진 생각을 붙잡기 위해 딱딱한 의자를 끌어다 놓고 편안해 한다느낌을 위하여 얼마나 더 오랫동안 딱딱한 의자에앉아 있어야 할지를4. 자고 일어나 소리 없이 쌓인 눈을 보듯 상서롭게쌓이는 것들이 있다이러한 낯선 즐거움이 있는 동안에 어떤 것도 지각으로 씹히지 않는다 Hard chair Ohn Hyung-geun 1. Sitting idly, watching people busily walking by For a long ..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자화상 자화상온형근 먼지 풀풀 날리는 길혼자 등을 보이며 걷는다그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그의 등뒤로 먼지가 포물선을 긋는다한참 지나면 길보다 뒷모습이 더 커져 있다어디를 가는 중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꽤 오랜 시간 동안 길과 뒷모습은정지화면으로 움직이고꽤 오랜 시간 동안 길과 뒷모습은낯익은 동작으로 바뀌어 있다어디를 바쁘게무엇 때문에 휘젓고어찌하여 걷는가허튼 먼지를 풀풀 날리며Self-portrait Ohn Hyung-geun A dusty road Walking alone with his back turned Never thought about who he might be Dust arcs behind his back After a while, his back becomes larger tha..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안개의 숲길 안개의 숲길온형근 먼 가로등이 숲길을 지키고 있다가로등 불빛에 실려 안개가몸을 휘감아 돌고는 발길을 적신다깎아지른 듯한 벼랑 아래깊은 파도에서 퉁겨 나오는 물보라가 그랬듯이오늘 안개는 아찔하도록 젖어 있다밤새 건조했던 몸은안개 자욱한 새벽길에서 생동한다몸 여기저기서 찌그럭거리며새벽 안개를 가로지른다힘겨움 하나 스멀거리며 빠져나가는 것을시린 손을 둘러싸고 젖은 안개와 달마 있음을저 쓸쓸하고 우울한 잿빛 안개의 숲길에서 The Foggy Forest Path Ohn Hyung-geun A Distant Streetlight Guards the Forest Path Carried by the Streetlight's Glow, the Fog Swirls Around, Soaking the Steps ..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빗소리 왁자하여 빗소리 왁자하여 온형근 빗소리 왁자하여 바깥으로 눈길을 주니흔들리는 것들 또한 단속 없이 냅다 튕겨진다창은 뿌옇게 젖어 덧칠한 물감으로 층져 흐르고왁자한 슬픔 덩이들순식간에 하나로 뭉그러져 있다슬픔은 소리 없이 가슴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건만빗물 얹힌 나뭇잎들 청량함까지도처음에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잎 뒤집나 했고바람이 세차 마주 서기 힘들어 물러나는가 했으나빗소리, 바람 소리에 기공이 막혀 고통스러운 것을오래된 집들은 무너지는 것임을한참을 소요하니 억장 무너지듯 비명인 것을 The sound of rain is boisterousOhn Hyung-geun The sound of rain is boisterous, glancing outside Things that sway are also flun..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욕망의 구별-화전.55 욕망의 구별 -화전.55 온형근 매우 작은 글씨들이 방 가득 돌아다닌다 어디에도선뜻 손 잡히는 것 없이 쳐다보는 일 만으로 한나절이다 빗소리는 벽 사이의 조그만 구멍을 통하여 들려오는데 꼼짝하기 싫어 비를 맞고 있다 어디에 있는지를 가려내지 못한다 깜깜한 하늘이다 천장의 쥐가 나도는 소리에 정신이 든다 찢어진 문틈으로 유혹은 강하지만 바깥에 나설 의욕은 없다 해결하지 못하는 살아있음에 대한 우울 지독한 삶의 욕망 곳곳에 제 멋이다 처지고 밟히고 돌아서게 하는 잘 산다는 것 정답은 이것이라는 것 좋은 게 좋다는 것에 대한 번지름한 포장 말이다 무엇일까 내 속에 분노를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욕망이 있다 이조차 느끼지 않아야 길나섬과 방들어섬의 구별이 없을 텐데 Distinction of Desire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풍경 하나-화전.45 풍경 하나 -화전.45온형근 아름다운 풍경에 이끌려 내려가니 냇가에 여전히얼음 속 물 흐르는 지극한 소리가 이어진다 사람들은그렇게 늘 한쪽으로 흐르다 다다르지 못하는 많은사연과 함께 저물어간다 내를 타고 이르지 못하는 곳까지 다가갈 때면 돌아설 일이 아득하여 절로 걸음멈추어진다 뜬금 없이 눈물이 맺힐 때면 한숨은 절로꿈결로 이어지고 텅 비어 놓은 가슴이 풍경들로 큰방이 되어 맴돈다오두막 언덕으로 새떼가 비행조차 없이 정물로 앉아 있다 내 쉴 곳이려니 오래도록 바라본다 먼 산이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는 풍경 또한 그럴싸하다landscape one -Hwajeon.45OHN Hyung-geun Drawn to the beautiful scenery, the sound of water flowing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자서_나를 태워 몸을 작게 하는 소박한 운행 화전자서 - 나를 태워 몸을 작게 하는 소박한 운행 잠자는 시간만 사유하고자 한다.깨어 있는 시공간은 움직이고 부딪히고 만들어 내고바라보고 느끼고 땀 흘리며 흙과 범벅되어 있는짐승같은 원초적 생동에 젖고자 한다.내 몸에 필요한 것만큼만 취하기 위해끊임없이 간섭하는 학습되어진 관습을 태워정성껏 보시하는 땀을 쥐어 짜 내어야 한다.내 몸은 나 아닌 우주의 모든 생명에서 비롯되었고우주의 모든 생명 안에서야 비로소 읽혀진다.한 톨의 밥알을 취하고한 사발의 막걸리를 마셨으면한 사발의 씨앗을 뿌리고한 뙈기의 밭을 갈아야 한다.땀 흘리지 않는 하루가 쌓여육신의 업보가 탑을 이루지 않도록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름이 주어져 측은한 것을산자락에 오르고, 산골짝을 찾아 머무는 것만이화전을 이루는 능사가 아님을이름이 주어진..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박윤우_일굼의 미학, 혹은 나무처럼 뿌리내리기 일굼의 미학, 혹은 나무처럼 뿌리내리기 / 박윤우 서경대 교수․문학평론가 1. 위안의 시, 시의 위안 ‘현대인에게 과연 시는 더 이상 위안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스스로 끝없이 고문과도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또 시를 쓰고, 시를 읽는다. 그만큼 우리는 일상의 두꺼운 갑옷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거나, 혹은 일상의 번잡함 위에 부유하는 타인의 모습들을 관찰하는 데 지친 나머지 시름시름 말의 속병을 앓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어쩌면 현대시는 지금 우리에게 따뜻한 이부자리 역을 맡아줄 것을 강요받고 있다. 고유한 창조물로서 시의 위의가 공고히 유지되던 시대에 서정시의 작자는 독자 위에 군림하는 계몽가의 모습으로, 혹은 고독한 방랑자의 모습으로 자신만의 목소..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화장 火葬 - 화전.70 화장 火葬 - 화전.70온형근 골이 백개라 백골산인 동산말 귀퉁이 움막에서 다시는 찾아 들지 못할 길이 풀섶에 덮여 있다 화전은나무로 가득한 숲이되어 흔적조차 없다 기억의 통로에는 습한 물기를 재우는 이끼로 가득하다 계절을 건너 골짝마다 생명 있는 것들에 앞서 생생했던 화전이신음한다 쇠약하여 움직일 때는 흙내음으로 기고 앉아 있을 때는 산천의 기운으로 지탱한다 숨을 헐떡이며 온 몸에 절은 화전의 생기를 뽑아 낸다 잘 마른 장작처럼 뿜어내는 불기운 내 안에 든 화전을 비운다 산천이 윙윙대며 깊고 짙은 산이 되어있다 Cremation 火葬 - Hwa-jeon.70OHN Hyung-geun A hundred valleys, Baekgolsan, in a corner of the Dongsanmal...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산을 내려와 - 화전.69 산을 내려와 -화전.69 온형근 그러니까 산을 내려와 꿈을 잃어버린 오랜 정적은도시의 소나무 등걸에 기대어 껍질로 굳어 있다 진달래 소박한 산길은 장중한 빗줄기 차창을 녹이듯 퍼붓는 날을 울렸다 빈 공원의 단풍을 모으며 네모난 얼음 덩어리가 된 연못에서 비수같이 날카로운 세찬 바람의 결정에 섬뜩해 한다 손마디마다 거친 힘줄 불거진다 그러나 추웠던 날 나를 섧게 하였던 화전은 없다 깊이 새겨지던 꽃길은 달덩이만 남겨두고 더웁지도 서늘하지도 뜨겁고 차지고 둔하고 날카롭고 얼거나 녹거나 그치거나 퍼붓지 않은 채 저리 훤하다 Coming down the mountain - Hwajeon.69 Ohn Hyung-Geun So, coming down the mountain, the long silence of..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육신─화전.68 육신 - 화전.68 온형근산에서 지친 육신 쉬게 하는 동안에도 술은 가슴을뜨겁게 해 준다 달구어진 가슴으로 문지방을 나서면깊은 산길이 열린다 그 길을 수시로 걷는다 산중에나는 작고 힘없이 시시해 나설 때마다 묵은 잎이 밟힌다더 나설 수 없는 길까지 지친 육신이 바람에 결을이루고 허튼 기침 소리를 곁에 둔 채 실려있다The body - Hwajeon.68 Ohn Hyung-Geun While the weary body rests in the mountains, the drink warms the heart When stepping over the threshold with a heated heart A deep mountain path opens, and I walk it frequently in th..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먼 산 ─화전.67 먼 산 - 화전.67 온형근 계절은 바깥의 훤한 창으로 먼 산이 되어 있다 돌이켜 내다보고 싶은데 되돌아오지 않는 시절만 남는다 한때의 명랑함은 지쳐 있다 가슴에 가득 바람만달라붙는다바람은 고요 속 고막을 찢고 들릴 것 없는 고막이된 아픔은 삭아 오래된 눈매로 먼 산만큼 깊어져 있다 A distant mountain - Hwajeon.67 Ohn Hyung-Geun The season has become a distant mountain through the bright window outside. I want to look out, but only the times that won't return remain. All the cheerfulness of a moment is exhausted,..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밤 숲길 ─화전.66 밤 숲길 - 화전.66온형근 밤 숲길로 휘영청 달빛이 잠들지 못해 떠도는 중생혼이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산에서 산을 닮으려하나 밤길을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다만 달빛을 닮아있는 젖은 가슴만이 있을 뿐 산마을 초상집의 사람내음새가 산자락에 퍼져있다 다시 쌓이는 생활의 편린들이 다 좋다 밤 숲길의 온갖 생각이 무섭다 금방이라도 뛰어 내려가 저자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밤 숲길은 나설 것이 못된다 아침이면 다 허황하여 큰 숨으로 산자락 가득한 중생혼과 속마음을 나눈다 또 다른 하루가 화전에 가득하다 화전의 영혼 가득하여 침묵할 수밖에달빛 비치는 밤길을 만나지 않는다면 밭일에 지쳐코 골고 누울 수 있다 삶을 광주리에 담는 넋만으로지닌 것 없다고 손을 펼 수 있겠다Night Forest Path -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