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산책의 미학

나무에게 2024. 11. 25.

산책의 미학

온형근

 

 

 

   당신의 그림자가 스친 그 거리에서

   나는 기억 못 한다.

   지난밤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달빛 아래

   나는 알 수가 없다.

   침묵 속에 녹아드는 발자국 소리

   새벽마다 떠도는 영혼이 머문 곳

 

   깊어가는 밤처럼

   그리고 더욱

   언제 상처의 더께를 들쳐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떡갈나무 아래

   혹시 취한 적 없었던 건 아닐까에

   쓸쓸한 바람이 휘파람 불며

   크게 원을 긋고 한 방 풍경친다.

 

   흐릿한 기억 속을 더듬으며

   맨날 처절하니 기억나는 게 있겠냐고

   별들은 무심하게 깜빡이고

   그래서 그런가 달빛만이 내 그림자를 동반하는

   친구도 길동무도 상기되지 않는 혼자 산책

 


The Aesthetics of Walking

OHN Hyung-geun

 

 

 

   On that street where your shadow brushed past
   I cannot remember
   Where you were last night

   Under the moonlight
   I cannot know
   Footsteps dissolving into silence
   Where wandering souls rest at dawn

   Like the deepening night
   And even more
   When the scab of wounds was lifted
   I cannot remember

   Under the swaying oak tree in darkness
   Wondering if I might have been drunk
   The lonely wind whistles
   Drawing a large circle and striking a scene

   Groping through hazy memories
   Asking if I could remember anything when every day was so miserable
   Stars blink indifferently
   Perhaps that's why only moonlight accompanies my shadow
   A solitary walk with no friend or companion to recall

 

시작 메모

나는 걷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발걸음은 느리고 마음은 무겁다. 길 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달빛이 그것을 따라온다. 달빛은 차갑다. 그 차가움이 좋다. 동시에 외로움도 얹는다.
기억이 희미하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누군가를 떠올린다.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흔적만 흐른다.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고요 속에서 내 발소리만이 따른다. 새벽 공기가 차갑다. 숨을 크게 내쉰다. 숨결이 희미하게 흩어진다. 
떡갈나무 아래 멈춘다.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그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본다. 별들이 쳐다본다. 별들은 무심하다. 깜빡이는 빛이 나를 향한다.
혼자이고 혼란스러운 상처가 떠오른다. 상처는 이미 내 안에 있다. 들춰보니 아프다. 그 아픔을 잊고 싶지 않다.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면서 계속 걷는다. 달빛은 나를 따른다. 그림자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친구도, 길동무도 없다. 달빛은 나와 함께 너울댄다. 산책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계속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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