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미학
온형근
당신의 그림자가 스친 그 거리에서
나는 기억 못 한다.
지난밤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달빛 아래
나는 알 수가 없다.
침묵 속에 녹아드는 발자국 소리
새벽마다 떠도는 영혼이 머문 곳
깊어가는 밤처럼
그리고 더욱
언제 상처의 더께를 들쳐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떡갈나무 아래
혹시 취한 적 없었던 건 아닐까에
쓸쓸한 바람이 휘파람 불며
크게 원을 긋고 한 방 풍경친다.
흐릿한 기억 속을 더듬으며
맨날 처절하니 기억나는 게 있겠냐고
별들은 무심하게 깜빡이고
그래서 그런가 달빛만이 내 그림자를 동반하는
친구도 길동무도 상기되지 않는 혼자 산책
The Aesthetics of Walking
OHN Hyung-geun
On that street where your shadow brushed past
I cannot remember
Where you were last night
Under the moonlight
I cannot know
Footsteps dissolving into silence
Where wandering souls rest at dawn
Like the deepening night
And even more
When the scab of wounds was lifted
I cannot remember
Under the swaying oak tree in darkness
Wondering if I might have been drunk
The lonely wind whistles
Drawing a large circle and striking a scene
Groping through hazy memories
Asking if I could remember anything when every day was so miserable
Stars blink indifferently
Perhaps that's why only moonlight accompanies my shadow
A solitary walk with no friend or companion to recall
시작 메모
나는 걷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발걸음은 느리고 마음은 무겁다. 길 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달빛이 그것을 따라온다. 달빛은 차갑다. 그 차가움이 좋다. 동시에 외로움도 얹는다.
기억이 희미하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누군가를 떠올린다.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흔적만 흐른다.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고요 속에서 내 발소리만이 따른다. 새벽 공기가 차갑다. 숨을 크게 내쉰다. 숨결이 희미하게 흩어진다.
떡갈나무 아래 멈춘다.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그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본다. 별들이 쳐다본다. 별들은 무심하다. 깜빡이는 빛이 나를 향한다.
혼자이고 혼란스러운 상처가 떠오른다. 상처는 이미 내 안에 있다. 들춰보니 아프다. 그 아픔을 잊고 싶지 않다.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면서 계속 걷는다. 달빛은 나를 따른다. 그림자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친구도, 길동무도 없다. 달빛은 나와 함께 너울댄다. 산책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계속 걷는다.
2024.11.24 - [::신작시::/창작|생산] - 익숙한 것들의 반발
익숙한 것들의 반발
익숙한 것들의 반발온형근 가끔 새로운 놀이를 즐긴다. 즐거움은 여행의 속성을 닮았다. 수시로 새로움을 개괄하는 연습과 훈련 시공간을 달리하며 닿을 수 있는 의지로 만드...
ohnsan.tistory.com
2024.11.23 - [::신작시::/조원동 원림 미학] - 호안정湖安亭에서 물끄러미
호안정湖安亭에서 물끄러미
호안정湖安亭에서 물끄러미온형근 낙엽 지독하게 몰아 털던 날은 호안정에 앉는다. 호수에 폐부를 시원하게 씻는다. 심호흡하는 잠휴정도 전망이 사정없이 훤하게 열렸다. 숲이...
ohnsan.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