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175 근육처럼, 문신처럼 한 계절 넘기는 동안 덤덤하더니 무궁화, 능소화까지 눈 호사 부리는 사이 우람하게 늠름하여 꽃도 아닌 것이라 잔비처럼 꽃가루 날리어 바닥을 덮어도 동네 벌 왱왱대며 소리로 날개짓으로 다릅나무 꽃 지즐대며 화답할 즈음, 가슴 근육 터질 듯 갈라진 채 툭툭 치고 나와 그물망 문신으로 젊음을 그려놓고는 쩍 갈라지는 피부쯤이야 노화의 증좌 폭염으로 가지 펼친 다릅나무 잎 만큼이나 꽃잎 꽃가루 꽃 지는 바람결 흐르는 소리 여울처럼 번져 줄기에 새긴 문양, 곧 터질 듯. (온형근, ‘근육처럼, 문신처럼’, 전문) ::신작시::/창작|생산 2018. 7. 16. 인기척의 깊이 비 오는 날 우산으로 나를 가린 채 광교산 요모조모 살피며 고요를 즐기다 사방 빗소리 오만가지 잡것들이 오직 하나로 올곧게 정렬되어 직진하는 순간에 덜컹 소스라치듯 인기척에 놀라는데 혼쭐 빠지고 심장 두어 쪽 자빠진다. 펄펄 내리는 그해 정월 이 밭 저 밭 쌓인 눈 풍요로워 들창문 여닫고 냅다 건넌방 문지방 넘어 주섬주섬 산릉선까지 거침없이 환하게 거닐다 밤새 산바람과 눈결이 교접하여 이뤄낸 울퉁불퉁 내고 들어간 돌무덤 흙 구멍 찬란하여 평탄한 들판이라 내디디며 아득하게 모르는 깊이에 빠져 누웠다. -온형근, ‘인기척의 깊이’ 전문. ::신작시::/창작|생산 2018. 1. 27. 혼자 산책 나는 기억 못한다. 지난밤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새벽마다 떠도는 영혼 머문 곳 그리고 더욱 언제 상처의 더께를 들쳐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혹시 취한 적 없었던 건 아닐까에 크게 원을 긋고 한 방 들락댔다. 맨날 쳐 마시니 기억나는 게 있겠냐고 그래서 그런가 친구도 길동무도 상기되지 않는 혼자 산책 -온형근, ‘혼자 산책’ 전문 ::신작시::/창작|생산 2018. 1. 6. 타액 타액 / 온형근 입안을 씻어도 타액은 타액의 성분으로 되돌아 간다 이 정도 산출에 쩍 마른 갈증의 저 쪽 호시탐탐 한정 짓지 않아 절대적이지 않다 생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데 입 마르면 너도 나도 안녕이다 ::신작시::/창작|생산 2017. 2. 18. 호수 위에 떠서 호수 위 마루에는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쩌릿한 저림발목 조명도 자동 꺼지는 때가 되었는지 반짝반짝호안 가까이 수중에 불기둥을 박아둔 채 흔들흔들내어 준 적 없이 불빛은 모아져 실체로 떠있네호수 잔 물결 일어 청둥오리 이르게 마실 나와그 뒤 따르며 꽥꽥꽥 넓어진 가슴 뽐내듯 내밀고흐트러지듯 물밀듯이 고요하다마루를 뒤뚱대며 삐걱삐걱 소리내는 나에게곤곤한 습윤은 마르지 않는다걸을 수 있는 호수 하나 퍼 담을 방도를 궁리하고접히고 펼 수 있는 유연한 발걸음 또한 궁리한다 ::신작시::/창작|생산 2017. 1. 5. 서릿발 눈물 [ ] 서릿발 눈물 젖다가 떨어트리기도 한다. 뜨겁기도 따뜻하기도 서릿발처럼 차기도 하다. 손바닥 몇 개의 손가락 인지 하나로 가리거나 비벼 멀쩡해질 수 있다. 기뻐서 슬픔이 복받쳐서 감동이어 분노여서 쏟아내거나 흘리거나 뚝뚝 떨어진다. 눈물이란 내 가슴에서 만들어져 어느 순간 퍼올려지는 특수한 공급 기관을 가졌다. 2016. 12. 8.,08:29 ::신작시::/창작|생산 2016. 12. 8. 경비 아저씨, 청소 아줌마 경비 아저씨, 청소 아줌마 / 온형근 몇 번 언덕 위를 야릿한 걸음걸이로 오르고 있었다. 중간에 차를 세울 수 없는 고갯마루라 찔끔대며 짐짓 스쳐 지났다. 어떨 때는 어찌하여 어찌 되었을 것일진대, 시간과 장소라는 게 대중없어서 드물게 역시 그러하였을 것이다. 구태여 잘 걸어가는 사람을 불러 세울 일도 아니었고, 일부러 살갑게 손짓하여 꼬드길 일은 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미상불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거침없이 넘나 든 셈이다. 모처럼 본마음은 있었나 보다. 드문드문 출근길을 마다치 않고 뭐 그게 의도된 바는 아니지만 근무할 곳을 향하는 것은 본의임이 틀림없었으니, 달려가는 그니를 부득불 보게 된 일이다. 건널목 앞두고 세울 수 없어 건넌 다음 교회 한쪽에 세우고 기다렸다. 뛰시기에 타라고 했더니 늦은 건.. ::신작시::/창작|생산 2016. 6. 29. 지류 소양천 어느 지류 다리 위에 슬쩍 걸쳐 앉았어 빠진 살점에 잡히는 모래 기운 콘크리트 겉만 두른 일상을 툭 찌르네 이내 편안해지거나 아무 것도 아닐 묵직한 별에 쏘인다 그대 닮은 우울 화살 깊다 쓰리고 결리고 다시 환청처럼 살아 운다 물 속 용궁까지 모두 다 ::신작시::/창작|생산 2016. 5. 17. 꽃은 피겠노라고 꽃은 피겠노라고 / 온형근 기어이 그러하겠노라 우기는 일 곁에 두지 않아야 꽃도 점잖을 터 조용히 피어 소담스러우면 그 마음도 기꺼이 가득한 한 시절 꽃이었을 터 가만두라 그 또한 시절 인연이라고 해서 만들어지고 없어지니 바람에 마음 올라타 듯 스쳐가면 그만인 하 수상한 이기.. ::신작시::/창작|생산 2014. 3. 23. 012. 소나무.01 소나무.01온형근 중첩된 채색, 빛의 고함이 번지는 도중 소나무 숲은 환청으로 황급하다 일관된 내숭과 시치미가 스며들어 솔잎이 만든 담벼락으로 산골짜기 마음의 평화를 아끼는 물소리는 짙은 안개, 숲의 영령을 매긴다 공기를 가르며 지나가는 것들 보배롭게 허락하여 떨어뜨리지 않는다 목관의 음률로 여명의 광채를 일으키고 숲을 이룬 신령스러운 낌새를 위해 현악의 선율로 상냥하게 두들긴다 기지개를 펴고 숲은 쏘곤거린다 소나무 너울너울 굵은 몸짓으로 잠들려 할 때쯤 넘실넘실 침묵의 소리 어수선한 묵언들이 반겨주는 맛 금관으로 이어질 때까지 곰삭는다 어둑해진 숲의 여백으로 노래는 새 몇 마리 쪼르르 달려 나와 뛰는 생동 부엉이 소리 닮은..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11. 신갈나무 신갈나무 / 온형근 이 근처였어 그가 걸터앉아 겨울을 풀어놓았던 바위가 없어지고 다시 몇 번의 겨울이 눈발로 지워지려 할 때 키만큼 커져 그를 가려주었던 신갈나무가 신갈나무 낙엽 밟는 소리에 놓친 세월이 훤하게 살아나 그러게 이 소리라도 지니고 싶었어 오래도록 느리게 자꾸 ..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10. 옥잠화 옥잠화 / 온형근 옥비녀꽃, 옥잠화 달밤에 이 흰 꽃 더욱 처연해 처연함도 목매도록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 준 셈 규방의 부인들은 옥잠화를 심고 가꾸며 달빛 밝은 날 담장 아래 선녀가 되는 환상을 지녔을까 뭉툭 하얗게 피어 비녀처럼 고개를 내밀다 달빛에 부서져 어느새 선녀의 날개..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09. 오동나무 오동나무 / 온형근 지상으로 오동나무꽃이 한창일 때 바닥으로 보랏빛 꽃망울도 떨어져 꽃물은 미친 듯 몸 밖으로 뿜어 나오고 맑은 양떼구름을 가린 큼직한 오동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아침마다 그 길에서 거리를 쳐다보며 머뭇거린다 그뿐이었다 하늘로 그윽하게 그치지 않고 오..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08. 감나무 감나무 / 온형근 비긋고 바람 차다 문 앞 감나무 잎새 흔들릴 때 물냄새로 가슴에 묻어두었던 고막 울리더니 커지고 커지면서 잠깐 우레처럼 쿵 내 안의 잡귀들 어질 어지럽게 물러선다 들판으로 나선 감나무 잎새의 빛살에 개울물 반짝이며 눈부시다 지상에 밟히는 푸른 감꼭지 한꺼번..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07. 능수버들 능수버들 / 온형근 비 그친 고운 구름들이 조각되어 산과 들판을 그려내고 마을이 되어 개울로 늘어진 능수버들 앞세우고 어지럽다 걸쭉하게 불타는 노을 숨 고른다 그 앞으로 방화수류정 비껴 보름달이 적막하게 잿빛 여름밤을 눅눅하게 축인다 봄날의 아름다운 날은 여전히 남아 휘발..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06. 무궁화 무궁화 / 온형근 뭉툭 툭, 툭툭, 툭툭툭 무엇으로 피었다 지는지 아침이면 환하게 혹은 쓸쓸하게 산책의 동선마다 눈길 머물고 무엇으로 살았다 말하는지 희망의 빛살로 푸른 햇살 머금은 무궁화 어깨를 스치며 함께 떨고 배달, 단심, 아사달 꽃마다에 기품이 외줄기 혼자 자란 어린 가지..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05. 떠도는 자의 시선-마로니에 005. 떠도는 자의 시선-마로니에 / 온형근 떠도는 자에게 마로니에의 시선은 언뜻 깃들일 수 있는 안식처 솔직하게 사방 뻗은 일곱 개의 잎 허공으로 무방비가 떠다녀도 한쪽으로 아프고 한편만 자라지 않는 어쩌면 볼일 긋고 실팍하여 합당하다 도시의 가로등 명멸하여 노곤할지라도 흔..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04. 자작나무 자작나무 / 온형근 거침없이 콸콸대며 쏟아내는 빗줄기에 바람이 놀라 곁에 임박하여도 가누지 못하는 휘청거림 외마디 바람의 소리는 또 어떠했을지 사내의 허연 뼈마디를 헤베며 겨냥하는 자작나무는 아무 것도 지우지 않았다 세파에 거꾸로 매달린 생김새라고 자작나무 앞에 서성대..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03. 잣나무 잣나무 / 온형근 새하얀 구름 보면서 짐작하였다 지친 나를 맥없이 잡아끄는데 어쩌라고 먹구름 낀 날은 사랑스럽다 자꾸 나를 하얀 구름으로 만드는 것을 허한 가슴과 눈길을 붙잡고는 거침없이 소나기 쏟아지는 날처럼 잣나무 숲 짙은 우울의 상승 기류 버틸 재간이라도 있었겠냐고 바..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02. 미루나무 미루나무 / 온형근 햇살 쏟아지니 미루나무 먼 그리움 지상에 그림자로 내딛는 발걸음 어질어질 스며 반짝이는 잎새 햇살에 동동 하바나길라의 끈적이는 선율 잎 뒤집어 정성스레 바람 맞이하는 원초의 산림에서 우짖는 노래 달빛에 섧어 몸 휘두르는 사설 그리움은 뒷맛이 기름진 산조 ..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001. 모감주나무 모감주나무 / 온형근 꽃이 피어 아 꽃이 피었구나 했다 그 사이에 있고 없음 묻고 답함이 스쳐갔다 그 꽃이 살짝 입힌 노란색 꽈리로 새 옷 입은 것을 보고서야 꽃은 지는게 아닌 것을 꽃이 하나인 것을 내 눈길이 젖어 있었다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14. 1. 30. 다산, 멀고 가까움 다산, 멀고 가까움 / 온형근 일곱 살에 멀고 가까움의 다른 풍경을 읽고 유배지에서 그 이치를 통렬하게 써냈지요 다시는 말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지요 나를 지나가는 세월을 읽어내지 않았고 책 속에 글이 쏟아지는 광채를 줍고 있었지요 화성을 설계하고 거중기를 만들었던 공덕까지도.. ::신작시::/창작|생산 2013. 12. 27. 정조, 머뭇대다 정조, 머뭇대다 / 온형근 얼마나 많은 세월을 머뭇대었나요. 알고 있어서 행하려 했으나 행하려 하니 성급하지 않을까 주저 그러다 지나는 것들은 떠나고 떠나보낸 것들은 다시 찾아 들고 기다리고 기다리며 다시 머뭇대었지요. 담장을 기웃대며 나를 해하려 했고 조석으로 끼니마다 은.. ::신작시::/창작|생산 2013. 12. 27. 선한 가슴 선한 가슴 / 온형근 혼자 내는 찻자리에 가슴을 쓸어내며 목구멍 넘기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는데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허공에 떠도는 방언을 주워 담고 있었다 누구인지 목소리를 빌려 누구인지 그의 소리를 담아낸다 가슴이 있었다 가슴을 도려냈다 잊혀진 가슴에 봉우리가 생.. ::신작시::/창작|생산 2013. 12. 27. 얼음의 길, 새의 길 얼음의 길, 새의 길 / 온형근 호수 꽝꽝 얼었더니 눈 쌓여 순백이다 바람이 조금씩 긁어낸 맨살처럼 언뜻 반짝이는 상처들 그렇다고 저들의 관계를 내연이라 맡길 건가 얼음의 길이라고 해두자 다 녹아 없어질 것을 그 위로 벚꽃 지천으로 날려 뒤덮일 것을 고욤나무 열매에 앉아 먹이를 .. ::신작시::/창작|생산 2013. 12. 27. 이전 1 ···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