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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채근담, 前集_013. 물러나고 덜어내라

by 나무에게 2013. 12. 30.

前集_013. 물러나고 덜어내라 

 

 

외길같은 좁은 곳에서는

한 걸음쯤 멈추어 남을 먼저 가게 하라.

맛있는 음식은

조금 덜어내어

다른 사람이 맛보게 나누어 즐겨라.

이것이 세상을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徑路窄處, 留一步與人行.

경로착처, 유일보여인행.

滋味濃的, 減三分讓人嗜.

자미농적, 감삼분양인기.

此是涉世一極安樂法. 

차시섭세일극안락법. 

 

 

留一步, 減三分

유일보, 감삼분

 

留一減三

유일감삼(외길에서는 한 걸음 멈추고, 맛있는 음식은 조금씩 덜어내라.)

 

 

[차인 생각]

 

서로 먹을 것을 찾으러 나선 두 마리의 염소가 깊은 계곡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서로 길을 먼저 가려고 싸우다가 마침내 모두 거센 물살 속으로 떨어졌다. '이솝 이야기'에 나온다. 한 발자욱 머뭇대고, 가득 채우지 않는다는 것은 겸손과 양보를 말한다. 겸손이란 머뭇댐이다. 양보는 덜어내는 것이다. 차 한 잔은 보통 50cc다. 어른 세 모금의 양이다. 차 한잔을 찻잔에 따를 때도 2~3부를 비우고 7~8부 정도 채운다. 가득 채운다는 것을 경계한다. 뜨겁기도 하고 세 모금을 마시는 데 여유롭기도 하다. 찻잔에 차를 따르면서, 채워진 차를 마시면서 머뭇대고 덜어내는 미학을 익힌다. 아무 생각 없이 고요하게 차생활에 빠져 있다가도 더러 멈추고 덜어내는 의미를 떠올린다. 뭐 늘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차 한 잔의 의미를 이리 저리 살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늘 나만을 위하려는 고집 센 마음을 위하여도 물러나고 덜어내는 차원에 오를 일이다. 밭가는 자는 밭두둑을 양보하고, 길가는 자는 길을 사양한다고 했다. 있는 사람에게 밭두둑 정도는 양보하여 내 놓을 수 있고, 자신의 길을 걷는데에도 모든 길을 내가 가야할 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놓을 것을 찾고 달리 걸을 길을 미루어 정한다. 물러날 때 물러 날 수 있어야 하고, 덜어낼 때 덜어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것처럼 우둔한 일은 없다. 너무 많이 쥐고 있는지 살펴본다. 지금 여기서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들의 실체와 만난다. 언제부터 나와 함께 했으며, 언제까지 함께 갈 것인지. 내려 놓고 털어낼 것들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