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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채근담, 前集_014. 벗어내고 덜어내면 숲이 보인다.

by 나무에게 2013. 12. 30.

前集_014. 벗어내고 덜어내면 숲이 보인다.

 

 

 

사람됨이

차원 높고 미래를 위한 일을 한 것이 없더라도

세상의 속된 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명망있는 이름의 흐름에 함께 하게 된다.

배움됨이

나날이 늘고 성취감 더해지는 공부에 있지 않더라도

물욕에 얽매임을 덜어 없애는 경지를 얻게 되면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作人, 無甚高遠事業,

작인, 무심고원사업,

擺脫得俗情,

파탈득속정,

便入名流.

변입명류.

爲學, 無甚增益工夫,

위학, 무심증익공부,

減除得物累,

감제득물루,

便超聖境.

 변초성경.

 

 

擺脫俗情, 減除物累,

파탈속정, 감제물루

 

擺脫減除

파탈감제(속된 정을 벗어내고 물욕을 덜어낸다.)

 

[차인 생각]

 

성과 위주의 사회다. 모든 것이 수치화된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계획과 실행과 관리와 평가가 피드백되어 사람됨을 옭매고 있다. 그야말로 평가 기준이라는 것의 천국이다. 평가 기준 앞에 사람됨은 힘을 쓰지 못한다. 아무리 양보하여도 은근하고, 담백하며, 근사한 '사람됨'은 평가 기준과 궤를 같이 하지 않는다. 사람됨이란 평가 기준 앞에 설설기며 그에 맞춰 일거수일투족을 춤추게 하는 게 아니다. 사람됨은 어쩌면 세상의 일에 밝지 못한 채, 세상의 일을 밝게 하는 데 기여하는 어떤 고원한 작용일 것이다. 너무 높고 원대하여 세속에서 그 뜻을 알아차리기 힘든 상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작용이며 실체다. 차를 공부하는 일이 곧 생활의 공부이듯, 세상의 모든 배움됨의 마지막 출구는, 지니고 싶은 것에 대한 회의다. 왜 지니고 싶지? 하면서 반문하는 물욕에 대한 마음이 식어가는 과정 자체가 배움일 것이다. 공부를 한다고 하여 나날이 늘고, 나날이 더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하는 공부야말로 성과품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배움에 든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내적 충만을 은은하게 달래줄 것이다. 세상의 성과에서 벗어나고, 가지고 싶은 마음의 물량을 덜어 낸다면 가벼워진다. 가벼운 시선이 숲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