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좌우 장법이 맞추어졌다. 한자 彬이 가늘고 영문자 vin 역시 따로 논다. 그러나 앞의 조경설계사무소라는 글자가 자기들끼리 치고 받는 맛이 있다. 전체적으로 개성 만점이다. 아무나 쓸 수 있는 졸렬함을 지녔다. 그래서 아무나 쓸 수 없는 작품이 되고 만다. '조'에서 초성을 자신있게 굴렸으나 모음에서 움추려 들고, '경'에서 초성이 땅을 찌르듯 기세등등 하였으나 역시 모음인 중성과 종성에서 오무라든다. 그 기세가 '설'의 초성과 중성으로 이어지다 종성인 'ㄹ'에서 회복하려 했으나 'ㄹ'이 잘 나오지 않았다. 결국 '계'에서 이 글자의 전체를 아우르는 편안함과 포근함이 나타나게 된다. 중심에서 '사'와 함께 전체를 잡아주고 있다. '계'에서의 모음 'ㅖ'의 떨어뜨림이 여백을 주고 '사'의 초성 'ㅅ'이 넓적하게 퍼지면서 'ㅏ'가 굵직하게 기세를 밀고 그 기세에 '무'가 살짝 기울면서 술 한 잔 걸치게 된다. '소'에서 작은 마침표를 찍듯 시작과 끝을 간결한 장법으로 처리한다. '조경설계사무소'가 자리한 비중을 슬쩍 옆의 회사 이름 '빈'이 멀찌감치 자리하여 독립한다. 받은 사람이 너무 좋아하는 것으로 첫 작품의 의의를 매긴다.
덧글 : 캘리그라피를 배운다고, 12주짜리 동교동 '필묵'을 나섰다. 첫날 붓을 잡고는 선긋기를 하였다. 몇 자 쓰기도 했다. 기분이 떴다. 기어코 붓을 잡고 만 것이다. 서툴기는 해도 글자를 쓰는 마음이 후련했다. 다랑쉬 총무를 하고 있는 정명렬씨가 울산에서 개업을 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4시간씩 배우는 캘리그라피 기초과정에 있는 내가 생각해내면 곤란한 일에 생각이 미치고 만다. 이합지를 깔고 먹을 붓에 흠뻑 묻혔고, '조경설계사무소 彬vin'을 쓰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몇 장을 썼는지 모를 정도다. 한국서각협회 수원지부를 맡고 계시는 '소주 박영환' 선생에게 서각을 맡긴다. 개업 선물로 쓸 것이라며 봉투를 전했다. 그리고 며칠 후 받아 든 작품이다. 동교동 '필묵' 두번째 강의를 오전으로 고쳐 듣고 김포공항에서 울산까지 달려가 전해 준 작품이다. 오른쪽에 阮山과 소주라고 각해져 있다. 완산이 쓰고 소주가 각한 합작품이고, 내게 캘리그라피 작품으로서 첫번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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