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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前集_012. 너그러움을 풀어 놓아라

by 나무에게 2013. 12. 24.

前集_012. 너그러움을 풀어 놓아라


생전의 마음밭을
너그럽게 활짝 열어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과 탄식이 없도록 하라.
생후의 은혜는
오래도록 흐르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움으로 만족하게 하라.

面前的田地, 要放得寬,
면전적전지, 요방득관,
使人無不平之歎.
사인무불평지탄.
身後的惠澤, 要流得久,
신후적혜택, 요류득구,
使人有不匱之思.
사인유불궤지사.

要放得寬, 要流得久
요방득관, 요류득구

放寬流久
방관류구

[차인 생각]

평소 마음을 활짝 열어 산다.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닌다. 너그럽게, 관대한 마음밭을 가꾼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의 경지까지. 아니 모든 것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렇게 깊이감이 묻어 있는 일상이다.  너그러움은 어쩌면 풀어 놓는 일이다. 그리하여 방관은 혹 달관이다. 방관하지 말라고 숱하게 듣고 살았으나, 이제는 방관의 깊이도 알아야 한다. 흐르는 물처럼 오래도록 너그럽게 풀어 놓는 것을 배운다. 살아간다는 일은 유구하다. 그런데 방관이 유구하다는 말을 만들어 사용하다 보니 묘한 거부감이 흐른다. 어려서부터 뭔가 잘못 배운 듯 하다. 방관이 유구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삶과 대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관이라는, 관대한 너그러움을 풀어 놓으라는 말이 매력 있게 꽂힌다. 풀어 놓아라. 내려 놓아라. 방관과 하심의 세계다. 질척거리는 세파에 찌든 일상을 대입시키며 목에 힘줄을 세우는 일보다는 차를 마시면서 방관자처럼 일상을 관찰한다.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그만큼의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에 처하면 쓰러져라. 내가 나서서 핏대 올릴 일이 있다고 주문을 외우지 마라. 알지 않는가. 아픈 일과 핏대 올리는 일이 유구하지 않은 것을. 유구한 것은 결국 방관의 세계가 아닐까. 다들 너그러운 관대함의 세계에 들고자 한다. 내가 그리고 그들이. 그런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하다고 이구동성으로 합의점을 찾으면서. 그럴 것이다. 사람의 세계는 좋은 일만 가득해야 한다. 좋은 일은 방관의 가치, 너그러움으로 풀어 놓는 세상의 가치에 익숙해져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