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와함께

나무를 위한 에스키스

by 나무에게 2013. 12. 24.

나무를 위한 에스키스 / 허만하



나무의 씨앗은 인류의 역사보다도 긴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끊임없이 나무는 몸의 경계를 지우면서 새로운 경계를 다시 만든다. 시시각각 나무의 내부가 새로운 바깥이 되는 셈이다. 나무의 성장은 언제나 지기 몸 안에 묻히고 만다. 잔가지 끝은 원래 거리 같은 원근을 거절한다. 고개를 젖히고 쳐다볼 때 그 둘레에 별빛처럼 아득한 거리의 추억 같은 것이 눈부신 안개처럼 희박하게 태어날 뿐이다. 나무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해 진례 대암산 계곡 깊이 숨어 있는 팽나무를 오랜만에 찾아보았다. 헝클어진 가지 끝 그물에 금빛 햇살이 묻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산사태로 노출된 곁뿌리가 코끼리 코만한 굵기로 곡마단의 끝 장면같이 나란히 붙어 서서 기우는 밑둥치를 떠받치고 있었다. 아름다운 역학으로 나타난 목숨의 캄캄한 의지를 불구의 내 걸음을 부축해온 가족들 말없는 사랑을 확인하는 반가움 같은 촉감으로 쓰다듬었다. 바닥에는 고동색 낙엽과 검정 콩알만한 열매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죽어가는 이 씨앗 가운데서 한 알쯤이라도 유백색 가녀린 뿌리로 어둠을 붙잡고 일어서서 파란 하늘을 흔드는 가지를 펼칠 수 있을는지.

나무는 모천의 물내를 찾아 아득한 길을 되돌아가는 연어떼처럼 무덤 자리를 찾아 이동하지 않는다. 씨앗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초록빛 사상처럼 일렁이며 수직으로 선 자세로 의연하게 낯선 어둠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큰 나무 둘레에서는 중세의 가을 같은 바람이 인다. 그때 길손의 물빛 향수는 낙엽처럼 땅 위에 눕는다. 바람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할 때 그는 천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다시 끝없는 길 위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