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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육십령재에서 눈을 만나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육십령재에서 눈을 만나다 / 허만하

 

겨울나무의 혼은 오히려 건조하다. 오리나무 흑갈색 둥치에 시린 귀를 붙이면 물관 속을 흐르는 은빛 물소리가 엷게 깔리는 눈송이 같은 순도로 희박하게 들린다. 얼음장 밑을 흐르는 여울물보다 세찬 그 흐름은 맑은 삼투압으로 내 몸 안으로 더운 피처럼 서서히 번진다.

겨울나무 가지는 바람과 빛살의 미묘한 변화를 먼저 느낀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눈부심이 되는 가지 끝은 봄의 입김을 기다리는 흰 눈에 촉촉이 젖은 예민한 성감대 같다.
억센 바위를 깨고 자라는 여린 근모에서 썰렁한 하늘에 갈색의 안개 같이 서리어 있는 잔가지 끝까지 중력과 싸우는 싱싱한 힘처럼 거꾸로 흐르는 물소리의 설렘.

물은 낮은 쪽으로 흐르는 비굴이 아니다. 물은 언제나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거꾸로 서서 흐르는 물은 가혹한 의지(意志)만으로 한 그루 오리나무처럼 비탈에 서 있다.

먼발치 아래 인적 없는 들길이 눈바람에 묻히고 있다. 아득히 저무는 들녘 끝에 눈부신 외로움처럼 서 있는 한 그루 미루나무 밑 캄캄한 토사층을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는 목마름의 청렬한 뒤척임을 본다.
낙타빛 혼의 몸살을 안으로 달래고 있는 겨울숲 삭막한 목소리는 자욱한 눈발에 가리어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