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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나이

by 나무에게 2013. 12. 24.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나이 / 온형근



산에 가는 일이 점차 줄고 있다. 꾸준히 한가지 일에 매달리지 못하는 성정(性情) 탓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산에 갔다. 즐거운 일이다. 그러다 산에 가는 일이 즐거움이 아니라 산에 가야만 한다는 강박이 되면 슬그머니 빠지게 된다. 다른 형태의 삶의 진술이 나를 이끌고 있다. 가끔 산에 들게 된다. 경기도의 산에 들면 리기다소나무가 많다. 산림녹화를 위하여 병충해에 강한 나무라고 들여온 나무이다. 내가 이천에서 생활할 때, 학교 주변 야산에도 리기다소나무가 많았다. 빽빽하게 심어져 있고 줄기가 가늘었다. 이천이 고향이신 나이 든 선생님들이 서울대학교에 근무하던 류달영 교수님이 역할을 하셨다고 하였다. 물론 확인할 수 없었던 이야기이다. 학교 뒤 야산을 자주 찾았던 것은 당신 기숙사에 생활하던 정신지체 학생이 가끔 사라져 학생을 찾으러 다녔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랬다. 휑하니 학생은 보이지 않았고, 턱없이 리기다소나무가 너무 가늘게 많이 심겨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리기다소나무는 죽어있는 가지를 많이 달고 있다. 지금은 지형이 변했지만, 이천농고 뒤쪽으로 해서 이천중학교 야산 쪽은 햇빛이 잘 들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리기다소나무가 주된 수종이었다. 이렇게 빽빽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은 훨씬 많은 가지들이 말라있다. 빽빽하게 자라 있는 나무를 솎아주는 것은 간벌(間伐)이라고 한다. 간벌은 숲의 밀도를 조절해 주고, 산림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부수입을 안겨준다. 국내산 간벌목들로 통나무집도 개발되어 있고, 조경용 목재로도 적극 이용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간벌은 남아 있는 나무들을 더 건강하고 좋은 품질의 목재 생산이 되게끔 이끌어준다. 이와 함께 말라죽어 불필요하게 된 가지를 제거하는 일을 가지치기라고 한다.

가지치기 역시 간벌과 함께 목재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 나이를 들면서 몸집이 커지고 생각도 번잡해진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몸집을 조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몸집은 사람마다 지닌 원기(元氣)에 맞게끔 운용되어야 한다. 원기의 볼륨보다 몸집의 볼륨이 커지면 탈이 난다. 몸집이 커도 원기가 그만큼을 유지할 수 있는 질량이라면 탈 날 게 없다.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이 지나친 것을 욕심이라 한다. 욕심은 몸집보다 더 험한 공격성을 지녔다. 생태계라는 말은 생명과 생명을 둘러싼 환경, 그리고 그 둘의 관계라고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이 나이를 쌓아간다는 것도 그렇다. 어떤 형태든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나무가 나이테를 만들어 가듯 사람도 나이를 만들어간다. 나무에게 나이테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나이테가 있다.

나이테에게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무늬가 있다. 사람에게도 생태계의 질서 그대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 그리고 그 둘의 관계로 살아가면서 아름다움과 추함의 무늬를 지니게 된다. 나무는 적절한 간벌을 하면서 몸집을 조절한다. 간벌은 나무를 본성답게 크게 한다. 가지치기는 나무의 본성을 부드럽게 한다. 가지치기를 하면 나무 줄기의 위아래 굵기 차이가 크지 않게 된다. 줄기 단면의 모양도 타원형이 아닌 동그란 원형으로 된다. 나이테의 간격도 균일하게 된다. 목재가 지니는 아름다운 무늬를 갖게 하여 부가가치를 높여준다. 무엇보다도 가지치기는 옹이를 막아준다. 목재에 구멍을 없애준다. 구멍 없는 무늬 아름다운 나무가 된다. 가지치기는 심은 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아랫가지가 마르기 시작할 무렵에 한다. 사람에게도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나이가 있다. 풍성하고 관계가 무르익었을 때가 쳐내야 할 때다.

가지치기를 해야 할 나이를 깨닫지 못하면 작은 상처에도 연연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 살아온 역정(歷程)에 기대게 된다. 지금까지의 관계에 성의껏 관여하였던 모든 것을 되돌아본다. 쳐야 할 것을 쳐내지 못하는 것은 욕심이 커져 있어서다. 치열하게 살아온 것을 내세운다. 사실은 냉혹하게 자신을 쳐내야 한다. 모든 관계는 상호의존성이다. 연기(緣起)이다. 연기란 '세상의 모든 것은 무수한 조건들이 서로 화합하여 발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생태계는 생산, 소비, 분해로 유지된다. 생성-변화-소멸이다. 사람이 살면서 맺게 되는 많은 관계들도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며 소멸되는 관계다. 가장 가까운 혈육이라 할지라도 관계 자체는 끊임없이 상호작용 한다. 생성과 변화, 소멸을 통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자기 자신을 조절한다.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