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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지니고 다녔으면 좋겠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지니고 다녔으면 좋겠다. / 온형근


학교를 옮겨 다니는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새롭고 낯선 환경이라는 점에서 나를 다시 긴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런데 4번 정도 옮기다 보니 뭔가 불편하고 달라지는 게 있다. 전보다 자극에 덜 민감하다는 것이 총체적인 느낌이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내가 가르쳐야 하는 교육적 환경이다. 나는 이번에 용인으로 옮기면서 원예를 가르칠 것이라는 생각으로 조경 잡지를 모두 제자에게 선물하였고, 웬만한 책도 다시 서재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런데 조경을 가르치게 된다. 그것도 9시간씩이나...물론 서로 다른 학년과 학급이라 실제로 진도상으로 3시간 짜리 수업이다. 그러니 설계제도 기구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게된다. 조금씩 학교에 익숙해지면서 진도와 함께 부족한 많은 것들이 속상하다. 나름대로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서 조경수목의 부족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장고 끝에 조경수목원을 이 학교에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마침 수목원을 할만한 땅이 확보된 상태이지만, 그 또한 도로 확장에 포함되는 요인이 남아 있다. 하지만 수목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종묘상을 돌았다. 가격이 많이 올랐다. 하지만 종묘상의 나무들은 상태가 좋지 않다. 아마 저런 나무들을 사다 심으면 반 이상은 죽을 것이다. 가격을 알아보았으니 제자에게 팩스를 보내려고 한다. 제자가 직접 시간을 가지고 건강한 나무로 골라서, 실제 유통가격으로 재계산하여 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예전에 학교를 옮기던 첫번째가 이천농고다. 그때 수없이 다니면서 종자채취를 하고 나무를 증식시켰다. 그러다 여주로 전근을 가게 되었는데...그 나무들이 내 것이라 생각하였는데...내 것이 아니라는 졸지에 이상한 공황상태에서 고생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여주에 가서는 이천농고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주농고에 부임하니 전근간 내 전임자들이 일요일 마다 들려서 전공생 학생들과 교류하고 자기 나무가 뭐고, 분재가 뭐라면서 언제 가져가겠다고 아이들을 통하여 내게 전달되도록 한다. 그때 속으로 화가 났다. 나는 그때 공공재산에 대한 개념을 잡았다.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남을 보고 나를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번식시키고 고생한 것들은 전근다닐 때 가져 갈 수 있으면 가져갈 수 있게 하였으면 좋겠다. 능력껏 자기가 자신의 교육 환경에 필요하다면 자기 힘으로 운반할 수 있는 만큼 지니고 다녔으면 좋겠다. 그러면 너무 복잡해질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원농고에서만도 은행나무, 황매화, 구기자, 담쟁이덩굴 등등 실생과 삽목을 무지 하였는데..그게 분재포에서 옮겨 나오면서도 그 포장에 그대로 둔 상태인데....와중에 없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최소한 같은 학교내의 포장에서는 옮겨 다닐 수 있어야 하였을까? 그렇지도 못하다. 그때 나는 실과부장으로 포장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그곳에 주고 나왔기 때문이다. 아깝다.



이제 용인에서 나무를 구하려고 하니, 이천농고, 여주농고, 수원농고에 있는 내 흔적들을 조금이라도 얻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살면서 사귄 조경관련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의 공공재산을 이동하고 하는 서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아쉽다. 눈앞에 그 나무가 어디에 어떻게 처해 있는지 뻔히 아는데...지금 아무도 그 나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는 방치라는 것도 아는데...달라 소리를 하지 못한다. 조금만 달라고도 못한다. 결국 공공적인 개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새벽에 구입하려는 나무를 정리하였다. 이런 나무들이다. 아깝지만 교육과정상 필요한 나무들이니까 공공재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항변한다.

200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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