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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꽃피는 동안에 무엇을 보았는가

by 나무에게 2013. 12. 24.

꽃피는 동안에 무엇을 보았는가 / 온형근

 

꽃은 피었다 진다. 나타남과 사라짐 사이에 머문다. 짧거나 길거나 혹은 드러나거나 감쳐지는 사이에서 서성댄다. 잠깐 꽃 피는 동안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매우 짧게 꽃피는 성격을 지닌 나무의 종류가 많다. 왕벚나무는 꽃 피었구나 하는 순간 흩날린다. 그 뒤를 백목련의 낙화가 흐드러지며 고개를 떨어뜨리게 한다. 많은 이들이 목련처럼 화려한 꽃만 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꽃피는 나무를 서너 개만 예로 들라면 너나없이 더듬대며 목련, 매화, 산수유, 앵두, 복사(복숭아), 배나무 들을 말한다. 이런 나무는 사과나무, 왕벚나무, 쪽동백나무, 때죽나무, 감나무, 싸리나무보다 두 배 가까이 꽃이 지속한다. 그러니까 그 서너 개는 비교적 꽃피는 기간이 길고 눈에 잘 띄는 나무이다.

꽃이 눈에 잘 띄는 나무들은 늘 우쭐댄다. 그 우쭐댐 속에 지독한 고독과 열등이 감춰 있다. 내 놓고 밝힐 수 없는 사정이다. 자신감이 없을 때, 더욱 자신을 내세우려 애쓰는 진화의 결과다. 나무의 꽃 피는 사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느냐, 잎과 함께 피느냐, 잎이 먼저 피고 나중에 꽃이 피느냐가 그것이다. 우쭐대는 나무들은 예외 없이 서둘러 꽃부터 피운다. 숲에서 키 작은 관목이거나 음지 식물 따위가 생존 전략으로 내세우는 방식이다. 눈에 띌 확률을 어서 높이고자 함이다. 누구에게? 사람에게? 아니다. 벌과 나비를 만나야 한다. 명리를 추구하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만들어 낸 유전적 자기 수양의 결과다.

사람의 기억이란 늘 그렇다. 누가 사시나무의 꽃을 보았고 갯버들의 꽃을 기억해내며 단풍나무의 짧은 개화기와 잎에 가린 수줍은 꽃모습을 만났을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보다는 스치고 아예 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편안할지 모른다.  꽃 피는 기간이 짧은 나무들을 찾아보자. 잎에 가려 여간해서 만날 수 없는 수줍은 꽃을 찾아내고 즐겁게 기억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짧은 기간 피는 꽃은 못 보는 수가 많다. 크고 화려한 꽃들의 위용 뒷마당에서 묵상 중이다. 메이저가 있으면 마이너리티가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어야 우주이듯, 꽃이 작고 색깔도 분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높은 가지에 매달려 피는 꽃도 있으니, 어찌하리. 나무들에 오감을 열어야 한다.    

 

중요한 건 꽃이 생식기관이라는 것이다.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유전적 진화 속에 다양한 시도와 관점으로 꽃을 피운다는 명제다. 잎보다 먼저 피는 꽃도 꽃이 진 후 잎을 피우는 점잖은 나무와, 꽃이 먼저 핀 상태에서 잎도 함께 틔우는 부산스런 나무로 나뉜다. 매화나무, 산수유, 살구나무 들이 점잖고, 개나리, 진달래, 백목련, 왕벚나무, 앵두나무, 복숭아나무, 박태기 들은 부산스럽다. 그리고 봄기운을 한껏 쏘인 우주는 잎이 먼저 열리고 꽃이 나중에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이들은 잎보다 작아 보이지 않거나, 잎보다 커서 눈길을 끈다. 녹색의 잎과 함께 흰색,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계통으로 꽃의 존재 의미를 살핀다.

꽃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서두를 일이 아니다. 천천히 오랫동안 관찰의 즐거움으로 가져가는 것이 알맞다. 그 꽃을 발견할 때마다 신비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가끔 삶에 지칠 때, 조용히 만날 수 있는 꽃의 숨어 있는 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환희를 맛볼 수 있다. 아무에게 말하고 싶지 않으면서 오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즐거움이 문학이라면, 문학은 소수자의 것일 수 있다. 소수자야말로 보이지 않는 꽃을 관찰할 수 있는 절대적 고독을 지녔을 것이다. 나무를 관찰하는 참다운 의미는 누구나 쉽게 만나는 화려한 꽃보다, 존재의 의미망에조차 걸려 있지 않은 나무의 꽃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것이 우연이거나 의도적이거나, 참으로 벅차고 쾌활한 작품이 되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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