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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여명이 있기까지

by 나무에게 2013. 12. 24.

여명이 있기까지 / 온형근

새벽 산행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들쑥날쑥 산에 오르는 내게 산행 시간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한다. 아예 어둠이 가득한 산길은 보이는 것이 없기에 놀라는 것도 없다. 그저 깊은 어둠 만큼 사유가 깊어지면 된다. 오늘처럼 어설픈 시간의 산행은 다르다. 여기 저기서 섬칫대며 물체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놀람이 앞선다. 좋은 상상력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그러나 인기척 혹은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물체들은 모두 머리를 쭈뼛하게 한다. 혼자 오르는 산행에서 급하게 형상화되는 사람의 모습은 이렇듯 두렵다.

몇 번을 되돌아 가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니던 코스를 포기하지 않는다. 코스를 마치고 돌아서니 여명이다. 여명이라는 것이 밤과 낮의 경계에 있는 복합적인 분위기다. 마찬가지로 황혼은 낮과 밤의 경계이다. 낮과 밤만 있는 게 아니라 여명과 황혼이 있다. 경계에 있으면서 경계를 허무는 것들이다. 여명의 짧은 시간과 황혼의 짧은 시간에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혼란기라든가 전환기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사유가 있고,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을 느끼는 동안은 사유가 모아진다.

하루를 살면서 스스로를 허물고 있다. 괜한 걱정과 해보지 않고 상상하는 동안 현실은 환상과 가까워진다.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어긋나게 하려는 시도는 자칫 억압을 낳는다. 현실도 환상도 하나여야 한다. 현실과 환상은 서로를 돕는 또 하나의 나여야 한다. 알테르 에고라고 한다. 서로 다른 완벽한 남이 아닌 관계를 산에서 배운다. 어둠과 빛의 중간에 여명이 있어 어둠과 빛이 서로 다른 남이 아님을 배운다. 여백으로 물감이 스미듯 삶의 여백에는 늘 다양한 색들이 칠해져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또 하나의 나가 되는 생활은 일상이다. 그 일상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