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속도를 지닌다

풍경은 속도를 지닌다 / 온형근


오늘 산행은 힘이 든다. 그러나 속도를 낮출 수가 없다. 몸이 날아갈 듯 조금씩 풀린다. 조금 속도를 낮추어 본다. 내가 속도를 낮추고 있다. 그랬더니 엊그제 정호와 함께 산행을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요 근래에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던 이유가 드러난다. 아니, 정호가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업어달라 조르고 벤치에 앉았다 간다며 딴청을 피우던 것이 떠오른다.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는데 정호는 엄청나게 힘들었던 것이다. 내가 정호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내 속도에 정호를 맞추었기 때문에 정호가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순전히 내 속도도 아니었던 얼추 중간 단계의 속도였던 그것이 정호에게는 벅찬 것이었다. 속도를 낮추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속도는 내가 산행시간당 움직인 거리를 밝혀준다. 살면서 삶의 속도를 맞춘다는 것은 특정한 의미가 될 수 있다. 사는 동안 무엇을 향하여 줄기차게 움직일 것이다. 오늘만 해도 산행의 속도를 다르게 하니 풍경이 다르다. 정호와 함께 할 때의 풍경과 내가 내 속도로 갈 때의 풍경이 서로 다르다. 속도와 풍경은 분명히 관계가 있다. 어쩌면 지금보다 느린 속도의 산행에서 보인 것보다 지금 내 속도로 산행을 하는 동안에 보이는 풍경이 더 많다.

삶을 자기 속도로 살 수 있을 때, 풍경이 직관이 되어 내 안에 스며드는 것이다. 살면서 움직인다는 것은 모두 속도를 지닌다. 내 속도는 어떤 움직임으로 운동량을 지닐 것일지. 결국 삶은 속도를 지녔고, 속도에 따라 풍경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살아 움직이는 속도를 지닌 것들은 무심하다. 아무리 생동하는 힘을 지녔어도 무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내가 지닌 특수한 인식체계일 수 있지만, 내게는 살아 있는 것들을 나무처럼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것들을 무심하게 대하는 방법을 익힌다. 살아가는 데 무심한 속도를 지닌, 살아 있는 것들을 바라본다. 특별한 긴장으로 마음을 떨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큰일이나 하려는 듯, 깊이 숨겨져 있는 용맹 같은 것이 끄집어지지 않도록 다잡는다. 보통으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체득한다. 내 손과 무릎, 엉덩이, 배, 등 온몸이 나를 붙들고 기대고 달리고 디디고 오르고 한다. 특별한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한 층이 있으면 위아래 한 층이 있다. 한 층은 한 층보다 더 가깝다. 전부를 계산할 수 없을 만큼의 생각들이 속도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