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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풍경이 풍경이 될 때 비로소 분별이 된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풍경이 풍경이 될 때 비로소 분별이 된다. / 온형근

오늘은 낯선 하루를 시작한다.
낯선 것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고 싶다.
가깝던 사람도 낯설어 보인다.
주변의 모든 것이 한결같이 낯설어 보인다.
이 낯선 하루를 시작하면서
낯설지 않은 것과 낯선 것과의 차이를 두들겨 본다.

바람이 몹시 차다.
내 귀에 온통 멀리서 들리는 기차 소리 같은 바람이 스친다.
옷 사이로 찬 기운이 살갗을 얼게 한다.
기차 바퀴로 바람의 일부가 빠져나가고 세차게 부딪혀 되돌아오곤 한다.

양손을 모아 뒷짐을 지고는 잔뜩 움추린다.
어설픈 새벽 산책이다.
매우 춥다.
껴입은 옷 틈새로 찬바람이 스멀거리며 넘나든다.
이렇게 추운 날의 산책도 풍경이 있어 떳떳하다.

당돌한 아침이다.
당돌한 아침을 뚫고 새벽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새벽 별빛에
겨울 무궁화나무의 은은한 반짝임이 돋보인다.

숲에서
갈라진 나무들은 낙엽 활엽수들이다.
소나무 숲 틈으로 참나무류가 많다.
소나무는 외줄기, 낙엽 활엽수류는 두, 세 줄기
어려서부터 삶의 선택에 망설임이 많았는지 낙엽 활엽수류의 새벽이 오늘 따라 인간적이다.
단정하고 곧게 자란 리기다소나무 보다 파란만장해 보여 눈길이 닿는다.

숲의 새벽의 풍경은
수묵의 굵은 붓이 지나간 흔적이다.
수묵의 굵은 붓이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내갈겨진 성난 붓의 모습이기도 하다.
굵은 붓이 하늘을 향해 리듬을 타며 주기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 새벽 숲의 풍경이다.

겨울 나무 숲 사이에서
별은 너무나 초롱하게 비춘다.
때로는 나무 줄기 사이에 때로는 낙엽수 우듬지 끝자락에
여리고 가느다란 가지 사이로
또는 소나무 짙은 먹빛 화선지를 뚫고 그렇게 별이 빛나고 맑다.
산자락 아래서 잠시 되돌아 갈 요량으로 몸을 푼다.
그동안에도 별은 사방에서 나를 향해 있다.
내가 별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그게 아니다.
별들에게 나는 작은 티끌 같은 외연일 것이다.
별빛은 새벽 숲을 먼저 비추고
새벽 숲 가지와 잎을 지나
내게로 와 머문다. 존재가 된다.

별은,
별이 비추는 것은
모양과 질량과 부피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모양과 크기와 부피와 질량이 있을 것이다.

은은하게 새벽빛이 퍼지고 있다.
새벽빛은 잔잔한 낙엽활엽수의 잔가지들을 돋보이게 한다.
나무 둥치나 굵은 줄기와 가지를 더 진하게 하고
가느다랗고 여린 작은 가지들을 신비스럽고 부드럽게 감싸준다.
작은 가지들은 선이 아니라, 작은 가지들이 총총히 모여서 면이 된다.
그 면의 배경으로 새벽빛이 있다.
엷은 청동색 빛의 새벽빛이 그 면을 배경으로 있다.
나무 둥치와 굵은 줄기와 가지가 진하게 앞에 있고
그 뒤로 가느다란 가지들이 꿈결같이 만들어내는 면이 있고
그 면 사이 빈 공간을 가로질러 엷은 청동빛 새벽이 있다.
그리고 그 먼 끝자락에 별이 있다.

다시 산을 되돌아 오른다.
이 오르막길에는 상수리나무 잎이 질펀하게 밟힌다. 푹신하다.
이 산의 시작 길은 소나무들이었지만
되돌아오는 길은 낙엽활엽수류의 언덕길이다.
이쪽 사람이 적다.
언덕을 오르는 길은 늘 벗겨져 있다.
산 능선의 산책길은 한 사람 지날 좁은 길인데
양쪽 언덕을 오르는 초입의 언덕길은 네댓사람이 지날 정도로 넓게 벗겨져 있다.
숲 가운데 길은 사색에 젖어 있고
숲 양쪽 초입의 길은 물색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언덕길을 올라 평탄한 능선 숲길로 접어든다.
아 참으로 편안하다.

몸이 그렇다.
한번은 술에 며칠을 빼앗기고
다시 망가진 몸을 추스르는 데 며칠을 가져가고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면
해야 할 일이 임박해 있다.
좀 더 몸을 다스릴 수 있도록 마음이 다스려져야 한다.
도를 깨침에 있어
깨달음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몸 곳곳에 유효 적절히 스밀 수 있도록
세포에 각인되어야 한다.

풍경이란 무엇인가?
내 안에 없는 낯선 모습들
그래서 나를 심하게 요동시키는 것들

풍경이란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불쑥 튀어나오는 낯선 친구 같은 것
돌발적인 것들

풍경은
일상적인 삶에 팽팽한 긴장을 주도록 하는 것
팽팽한 긴장을 줄 수 있는 촉매제
풍경이 풍경이 될 때 이미 낯설어져 있음이다.
풍경이 풍경이 아닐 때는 익숙해져 있음이다.
풍경이 풍경이 될 때 비로소 분별이 된다.
낯설어진다.
낯선 것은 새롭다.
그래서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