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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100-천양희, 옷깃을 여미다

by 나무에게 2013. 12. 23.

옷깃을 여미다 /천양희

 

 

비굴하게 굴다
정신 차릴 때
옷깃을 여민다

 

인파에 휩쓸려
하늘을 잊을 때
옷깃을 여민다

 

마음이 헐한 몸에
헛것이 덤빌 때
옷깃을 여민다

 

옷깃을 여미고도
우리는
별에 갈 수 없다

 

시집 <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  '11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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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차를 마시면서 옷깃을 여민다. 옷깃을 여민다는 것이 그렇게 자리를 마련해야 이루어지는 일인가 싶다. 옷깃을 여미는 일이 벅차면 차를 마시지 않으려 한다. 살면서 옷깃을 여미는 일은 잦아야 한다. 옷깃을 여미는 일이 줄어들다 아예 없어질까봐 경계한다. 수시로 옷깃을 여미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일찌감치 옷깃을 여밀 수 있는 상황에 처하기를 희망하면서 기웃대어야 할 것이다. 기웃대는 일과 옷깃을 여미는 일이 같은 축에 있어 함께 돌아간다. 시인은 비굴할 때, 인파에 섞일 때, 헛것이 덤빌 때 옷깃을 여민다고 한다. 별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옷깃을 여며 별을 기웃대고 있다. 내가 기웃대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여기서의 생활이 곧 기웃거림의 몸체임을 안다. 두 번째 시집 ‘화전’에서 이미 시공간의 의미를 건너왔건만 아직도 정신의 ‘화전’이 아닌 현장의 ‘화전’을 기웃댄다. 그도 세상살이고 이도 세상살이인 것을 너무 한 쪽으로 나를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지금의 기웃댐을 정면으로 보기 위해 옷깃을 여밀어야 할 때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삶의 여정인 것을 어찌 지금과 나중을, 미래와 과거를 구분할까. 매사에 옷깃을 여미지 않고 알 수 없는 미래에 옷깃을 여민다는 것은 별의 존재를 과소평가하는 게 아닐까 싶다. 별은 ‘화전’처럼 내 안에 있다. 늘 내 안을 위하여 옷깃을 여민다. 다시 차를 따라 마신다. 더 다정하고 부드러우면서 완고하게 옷깃을 여민다. 빈틈으로 바람도 벌레도 꽃도 나비도 들락거릴 수 있도록 헐겁게 여민다. 그래서 내 옷깃은 늘 헐겁다. 오늘도 헐거운 옷깃을 여민다. (온형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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