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와함께

098-함민복, 감촉여행

by 나무에게 2013. 12. 23.

감촉여행 (시. 함민복)


도시는 딱딱하다
점점 더 딱딱해진다
뜨거워진다

땅 아래서
딱딱한 것을 깨오고
뜨거운 것을 깨와
도시는 살아간다

딱딱한 것들을 부수고
더운 곳에 물을 대며
살아가던 농촌에도
딱딱한 건물들이 들어선다

뭐 좀 말랑말랑한 게 없을까

길이 길을 넘어가는 육교 바닥도
척척 접히는 계단 길 에스컬레이터도
아파트 난간도, 버스 손잡이도, 컴퓨터 자판도
빵을 찍는 포크처럼 딱딱하다

메주 띄울 못 하나 박을 수 없는
쇠기둥 콘크리트 벽안에서
딱딱하고 뜨거워지는 공기를
사람들이 가쁜 호흡으로 주무르고 있다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2005-2006(6쇄)>
-----------
요즘 짓는 집은 짓는 게 아니라, 설치하는 거다. 짓는 것은 각종 재료를 풀어 놓고 막걸리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면서 궁리하고 요량하는 일이다. 사람이 살아 있고, 性情이 오고 간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론에 의하면 진정성을 나누는 일이다. 말 그대로 너와 내가 우리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설치하는 것은 다르다. 모르는 어느 곳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단단하고 딱딱하고 강하게 만든다는 것은 알게 된다. 그들은 운반 수단에 의해 세상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짓는 집은 자궁에서 출산되듯 생산 되는 것이지만, 설치되는 집들은 운반 수단에 의해서 세상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다. '메주 띄울 못 하나 박을 수 없는/ 쇠기둥 콘크리트 벽안에서' 괜히 부끄러워지는 남자. 괜히 공기가 뜨거워져 있다고 투박하는 남자의 풍경이 훤하게 보인다. 망치는 또한 어떤 감촉을 가지고 있을까. 내 손은 투박하지만 섬세한 감촉을 느낀다. 감촉을 느끼는 여행은 제 안에 있는 기운을 느끼는 게 아닐까. 자, 두 손을 모아 조용히 내면을 바라보자. 손바닥의 노궁에서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점점 더..... 온몸의 피돌기가 고요하다. (2006. 8. 11. 온형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