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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97-황희순, 한여름 밤의 꿈

by 나무에게 2013. 12. 23.

한여름 밤의 꿈 / 황희순


고추 몇 포기 심은 8층 베란다 화분에 엄지손톱만한 청개구리 한 마리 앉아 있다 창문도 꽁꽁 닫아 놓았는데 이 한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인연이 닿으면 생명도 전깃불 켜지듯 홀연히 켜지는 것일까

언젠가 만져본 듯한 보드라운 살 두 손 오므려 받쳐 들고 풀밭 찾아서 가는 길, 꼬무락꼬무락 손가락 사이를 헤집는다 깜깜한 나도 불이 켜지려나, 정수리가 따뜻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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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는 머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뇌천이라고도 한다. 뇌의 하늘이라는 직역인데, 이는 곧 하늘과 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말과 같다. 백회를 말한다고 하면 틀릴까? 그렇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 들이는 곳을 도교에서는 백회라고 지칭한다. 물론 하늘의 기운을 굳이 한 곳을 통하여만 받을 필요는 없다. 온몸의 세포 모두에게 가능한 열려 있어야 하고 그러하다. 하늘의 기운은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청개구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풀밭에 내려 주고 돌아오면서 정수리로 다가 오는 따뜻한 기운, 이는 깨달음이 이미 인지적 사고에서 몸의 사고로 전환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영혼의 깨달음은 지척에 있다. 시인은 이런 깨달음을 [켜진다]라는 말로 대신한다. 인연도 생명도, 깜깜한 삶도 켜진다는 것이다. 켜지는 세상은 아름다운 시선이 머무는 곳에 키커져있다. (2006.12.19.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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