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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96-이규배 , 오늘, 석류나무가 밤새 울었다

by 나무에게 2013. 12. 23.

오늘, 석류나무가 밤새 울었다 / 이규배



아, 사랑아 마른 입술에 빨리던 담배 꽃불처럼
확확 달아올라, 꽃 피어 오디 빛 피 맺히던
스무 살 적 네 젖무덤에 고개 묻고 울던 젊음이
먹먹한, 먹먹한 뉘우침의 빗방울로
석류나무 붉은 상처 위에 매달리고 매달리다가

아아, 온 밤을, 온 밤을 울고 있는 것이냐?

ㅡ <작가연대> 2010년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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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하다는 말에 끝없이 먹먹해진다. 비가 오나 보다. 뉘우침이 비를 타고 내려오다 뭉치면 빗방울로 영롱해진다. 그 영롱해진 인식의 틀에서 석류나무 터진 망울이 맺혔다. 스무 살 적 울던 젊음이 이 나이에도 먹먹하게 살아난다. 석류나무 열매 터지는 풍경만으로도 스무 살이 되돌아 오는 시인의 먹먹한 정서는 대체 제대로 현실에서 소용되지 않아 늘 상처일 것이다. 빗방울이 뉘우침이라면 특정 계절에 얼마나 많은 집단적 회한이 난무하겠는가. 그래도 뉘우침이면 거부하지 말 일이다. 받아들이고 뉘우치는거다. 온 밤을 울고 있더라도 뉘우침의 새벽이 다시 올지라도, 그게 사랑이었노라고 붉게 물들 때까지 그러하다. 스무살 적 기대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시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집 담장과 마당, 그리고 유리 창문, 붉은 꽃, 꽃망울, 붉은 불빛, 붉은 얼굴, 붉은 울음 등이 가득 펼쳐졌던 젊음. 다시 만나면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못할 게 뻔한. 그 오디 빛 피 맺히던 스무살 적. (2011년 7월18일,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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