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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95-박남희, 구름 비빔밥

by 나무에게 2013. 12. 23.

구름 비빔밥 / 박남희


나는 비빔밥을 즐겨 먹는다
여러 가지 나물을 큰 그릇에 담아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는 재미와 맛이 그만이다
나물들은 그릇 속에서 고추장에 비벼지면서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며 일어서서
자신들의 싱싱함을 자랑한다

무엇에 한 통속으로 비벼진다는 것
비벼져서 하나가 된다는 것과
자신을 꼿꼿이 일으켜 세운다는 것이
때로는 이렇듯 한 사발 안에 있다
풀밭에서도 바람은 모든 것들을 하나로
비비고 싶어하고
햇살은 풀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환하게 일으켜 세우고 싶어한다

나는 비빔밥을 먹을 때
바람과 햇살을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는다
내 몸이 일으켜 세우고 싶어 하는 것과
내 몸이 비비고 싶어 하는 것들의 상반된 느낌을
사발 가득히 비벼서 한 숟갈 떠먹으면
내 몸은 한 순간 바람과 햇살이 한 몸을 이룬
구름 비빔밥이 된다

구름 비빔밥은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는 것과
비벼지려는 것들 사이에서
천둥을 울려대고 번개를 친다
비를 뿌린다

흙은 구름 비빔밥을 즐겨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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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제로 비빔밥을 즐겨먹는다. 아직까지 비빔밥처럼 먹고나서 근사하게 든든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대학생었을 때, 그 나이에는 낯선 곳에 혼자 여행을 다녔다. 버스 타는 것을 힘들어 하였을 때라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를 내렸다, 탔다 하면서 다녔다. 그때 밥 먹을 때가 도래하면 고민이 되었고 그 고민을 줄이기 위해 결정한 것이 비빔밥과 된장찌개였다. 이 두 가지 메뉴는 후회를 안겨주지 않는 메뉴였다. 전국 어디나 비슷한 맛을 냈다. 그래서 차멀미에 흔들리는 속을 다스려 주었다. 지금도 나는 이 두 가지 메뉴를 그렇게 이용한다. 더구나 요즘은 산나물 비빔밥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고기를 먹기 싫어하기에 산나물 비빔밥을 먹은 날은 남들 고기 먹고 우쭐하듯 한다. 이 산나물 비빔밥 먹기가 도처에 쉽지 않다. 나는 비빔밥의 오래 씹히는 행위 자체에 큰 점수를 매긴다. 매력적인 저작 행위이다. 시인의 말대로 '비벼지면서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며 일어서서' 어필하는 그 싱싱함을 좋아한다. 그 싱싱함과 대적하는 시간 동안 입안에 군침은 또 얼마나 예비되어 있는가. 그런 연후에 입안에서 비벼지는 짜릿함과 산나물의 향기는, 표현이 마비되고 만다. 아, 정말 대책없이 입맛이 버무려진다. 요근래 곤드레 비빔밥 한 번 비벼 본 적 있었던가? (2007.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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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관리신문 2011년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