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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93-김종미, 눈물 화석

by 나무에게 2013. 12. 23.

눈물 화석 / 김종미



울음이 타고 흘러내리는 벽에 대한 기억이 있다
사십 세, 나와 동갑이던 윗집 여자가 남편을 잃고 흐느끼는 소리였다
침대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노라면
환한 대낮에도 섬뜩한 울음소리가 흘러내렸다

한 일 년, 내 등을 적시며 벽이 그렇게 울었다 그렇게
울음을 받아 적었더니 내 등이 벽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내 등은 파도가 일어서다 멈추어 버린 바다의 유적

그 무렵 바다는 농담에도 슬픔이 흰곰팡이처럼 묻어있었다

한동안은 시장에 가서도, 없는 사람이 좋아하는 새조개랑
쇠비름미역을 들었다가 다시 놓고, 같이 없는 듯
백사이즈 런닝구도 샀다가 물리던 윗집여자

십년 만에 서울역 대합실에 우연히 만났다
길게 치렁거리던 슬픔을 짧게 자르고 개나리처럼 웃었다
먼저 손을 잡고 그 다음 얼싸안자
내 등에 박힌 눈물 화석이 반짝 그녀에게로 빛났다

 

1997년 《현대시학 》으로 등단
『시와사상』 편집장 역임
시집으로 『새로운 취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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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 지났는데도 눈물은 남았다. '슬픔을 짧게 자르고' 환하게 웃는 모습에도 그 십년 전의 울음이 엿보인다. 해마다 개나리가 만개하면 슬픔이 밀려 왔다. 남도 답사에 돌아오는 고속도로 길 양쪽에서 늘어져 노랗게 핀 개나리였다.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왜 울고 있는지를. 그게 십년은 지났으나 여전히 잘 모른다. 그날 이후 개나리 만개 앞에 나는 한번도 고요할 수 없었다. 면역력을 상실한 채 가슴이 두근거리며 "아, 고놈 참 실하게 피었다."로 심장의 박동을 가라앉히려 애쓴다. 그런 날은 '없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호사 취미에, 그 길모퉁이, 머언 바닷가 포구, 산길의 고적함까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느 곳에 각인되었는지, 그게 '눈물 화석'이었는지. 그 무렵과 이 무렵 사이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인지. 십년이 아니라 백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화석된 개나리 만개일지. 모든 게 이 봄을 시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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