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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91-이면우, 작은 완성을 위한 고백

by 나무에게 2013. 12. 23.

작은 완성을 위한 고백 / 이면우

 


술, 담배를 끊고 세상이 확 넓어졌다
그만큼 내가 작아진 게다

 

다른 세상과 통하는 쪽문을 닫고
눈에 띄게 하루가 길어졌다
이게 바로 고독의 힘일 게다

 

함께 껄껄대던 날들도 좋았다
그 때는 섞이지 못하면 뒤꼭지가 가려웠다
그러니 애초에 나는
훌륭한 사람으로 글러먹은 거다

 

생활이 단순해지니 슬픔이 찾아왔다
내 어깨를 툭 치고 빙긋이 웃는다
그렇다 슬픔의 힘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제는 내가 꼭 해야 할 일만을 하기로 했다

 

노동과 목욕, 가끔 설겆이, 우는 애 얼르기,
좋은 책 쓰기, 쓰레기 적게 만들기, 사는 속도 줄이기, 작은 적선,
지금 나는 유산상속을 받은 듯 장래가 넉넉하다

 

그래서 나는 점점 작아져도 괜찮다
여름 황혼 하루살이보다 더 작아져도 괜찮다
그리되면 그 작은 에너지로도
언젠가 우주의 중심에 가 닿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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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의를 표명하는 일은 곤혹스럽다. 제대로 결의를 지켜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결의는 필요하다. 자꾸 늘어나는 것 또한 결의다. 그래서 비웃음을 산다. 손가락질도 받는다. 돌멩이에 맞기도 한다. 어떨 때는 엠블런스로 실려 병원으로 직방 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생활 습관에 대한 지독한 반성에 개안을 한다. 다시 '작아진 게다', '하루가 길어졌다'. 한편으로는 '뒤꼭지가' 뒤틀렸다. 고독이 곧 슬픔을 이끌고 나타나기도 한다. 뭐를 해야 이 서글픈 현실을 받아 들일 수 있을까를 견고하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면우 시인은 일상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건져낸다. 내가 그렇게 시를 쓴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양반은 나보다 한 수 위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언젠가 우주의 중심에 가 닿을 수' 있지 않겠냐는 조심스런 선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촌놈이라 결의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리고 그 결의도 수시로 바뀐다. 잘 지켜내지 못한다. 그런데 딱 하나는 지킨다. 또 결의를 다지고 있다는 것 말이다. (2008. 2. 25.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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