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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생동을 꿈꾸는 겨울 나무

by 나무에게 2013. 12. 24.

생동을 꿈꾸는 겨울 나무 / 온형근

겨울나무에게로 다가선다. 어쨌든 겨울나무가 있기에 겨울이 겨울답다. 겨울나무에서 황량하다는 겨울의 모습이 보이고 계절의 변화와 세월의 무상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겨울나무는 생동의 꿈을 지니고 명상을 하고 있다. 그것이 겨울나무에게 느낄 수 있는 황량함을 넘어선다. 때로는 하얀 세상 목련의 꽃눈으로, 때로는 노란 청초함 생강나무의 꽃눈으로, 산수유의 꽃눈으로 봄을 맞이하기에 충분한 여유를 지닌 채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잠을 잔다.

적당히 피곤한 상태로 잠을 청할 경우 아무 저항없이 누울 수 있다. 그러나 아주 피곤할 때는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은 잠이 들기 위해 안달이지만, 막상 누우면 쉽게 잠들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겨울나무의 잠은 아름답다. 생동을 지니고 누웠기에 숙면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겨울나무의 자연이고 자율이다. 세상의 삼라만상이 자연과 자율의 잣대로 움직인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지속되게 하는 힘이 바로 자율이라는 잣대인 것이다.

자율이 있을 때, 생동의 힘은 폭발한다. 동학의 내부적 결속이 자율이었다. 물론 역사와 철학이 게재된 자율이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건의 속성이 외면적으로 자율이었다고 하여, 그 자율이 모두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율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해본다. 자율에 대하여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율을 믿고 자율의 엄청난 힘을 인지하는 유형과 자율은 없으며 타성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라고 인지하는 유형이 그것이다.

겨울나무가 겨울나무의 자율이라는 잣대로 엄청난 봄의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듯이, 자율에 의한 사회는 내적 정연한 질서와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겨울나무의 겨울나무다움을 알고 있듯 자율에 의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사람의 아름다운 영혼을 믿는다. 그러나 사람을 믿지 못할 경우 타인의 자율은 풍지박살이 되고 만다. 시키는 일만 하게끔 되어 있거나 일사불란만이 삶의 목표가 되는 문화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일을 맡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일에 대하여 남다른 애착을 가진다. 누가 어떤 평가를 내려도 자신이 추구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계획과 타당한 방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이 발휘되고 그러한 자율이 모여 사회의 역동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마치 겨울나무가 겨울나무의 자율로 잠자고 있듯 자율이라는 것은 쉽게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봄이 되면 응축되었던 힘으로 세상을 꽃길에 들게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을 믿지 못하면 사회에서의 가장 큰 역동적 힘인 자율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숱하게 많은 제도가 만들어진다. 역사가 그랬고, 현재가 그렇다. 자율을 믿지 못할 때 지속적인 제도와 규정이 수정되고 만들어진다. 제도와 규정은 워드프로세서에서 가장 시간이 걸리는 '표'라고 말할 수있다. '표'로 대표되어지는 제도와 규정 앞에 자율은 숨을 멈춘다. 산문처럼 숨도 쉬지 않고 타이핑을 하다가도 표를 만나면 숨이 멈추듯 자율이 없는 사회는 사람의 숨을 고르게 하지 못한다.

자율이 없다는 타성에 젖어 있기보다 겨울나무가 겨울나무의 자율로 살듯 모든 사람들에게는 고귀한 영혼과 함께 존재자처럼 자율이 몸에 배어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제도와 규정은 단시간의 질서는 만들 수 있지만 자율이 없는 사회는 미래를 꿈꿀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고, 빠른 성과가 보이지 않겠지만 조급한 생각으로 접근하게 될 경우 늘 자율은 상처를 입는다. 자율은 존재이고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삶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없듯이 자율의 사회를 위해 기다림과 아름다움의 미덕을 지녀야 한다.

설령 자율의 사회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희생하더라도 이런 고귀한 가치를 찾아내야 하는 관점을 지녀야 한다. 조급과 성급과 그리고 내보이기 위한 모든 제도와 규정과 실천은 사람의 자유로운 영혼을 억압하는 것이다. 이 억압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겨울나무가 생동을 꿈꾸며 내적인 자율의 세계에 들어가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겨울의 풍경에는 엄격한 우주의 내재율로 가득한 숙연함이 있는 것이다. 계절이 있는 한 풍경은 늘 생명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