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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아홉 그루의 나무와 결별

by 나무에게 2013. 12. 24.

아홉 그루의 나무와 결별 / 온형근

그 땅에 그리 곧게 꽂혀 있을 줄이야. 어쩌면 그리 딱딱한 땅이 있는지. 내 삽은 오늘 따라 헛탕질을 치고, 오른손바닥은 얼얼하게 부었다. 처음 시범을 보인다고 재킷을 벗어 반을 접어 땅에 내던졌을 때, 어쩌면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래되어 신지 않는 가죽 등산화를 졸라매고 호기롭게 나섰다. 그렇게 시범을 보이는 동안 아이들은 진지하였다. 중간에 손님이 와서 <5분 내로 오라>는 전갈에 기분이 흐렸지만,

내내 땀이 뚝뚝 떨어지면서 딱딱한 땅과 내 딱딱한 삽질이 팽팽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손님들과의 일은 얄팍하기만 했다. 그나마 다 오지 않아 11시로 연기되었기에, 다시 온다고 언약하고, 그 밭에 나섰다. 그렇게 11시까지 멋진 시연과 조편성으로 2명 1조로 단풍나무를 캐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더 큰 나무인 참느릅나무를 캤다. 중간에 다시 회의가 되고 만 그 자리를 찾았다. 점심까지 매달리고는 나와 궁합이 잘 맞는 4명의 아이들과 오후를 함께 하기로 한다.

오후는 거칠 게 없다. 완전히 퍼질러 앉아 나무와 함께 했다. 힘이 빠져 허리가 휘청거린다. 그 휘청거리는 허리를 위해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주저앉아 삽질을 하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삽질을 하기도 한다. 딱딱한 땅을 파내는 데에는 호박엿을 깨는 정의 기법을 써야 한다. 한쪽을 삽으로 세게 내리쳐 흠집을 낸다. 흠집을 내면 딱딱한 땅에도 빈틈이 생기는 것이다. 그 허한 부분을 향해 딱딱한 땅을 삽질한다. 땅은 허한 부분으로 밀려나면서 살점이 떨어진다.

삽질이 힘차게 되었을 때는 두부살 자르듯 덩어리진 채 갈라진다. 그렇지 않고 빗나가면 삽 혼자 저만치 튕겨 나간다. 땅은 흙 파편으로 튄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한 그루의 나무가 어느새 허리감기로 들어간다. 처음에 새끼 한 타래를 열 팔로 감으면서 미리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미리 만들어 놓고는 새끼를 허리감기 한다. 돌로 새끼가 분 속으로 들어가도록 두들긴다. 그리고 나면 팽이처럼 삽날을 숙여서 쐐기를 박듯이 쐐기 형상이 나오도록 삽으로 허공을 만들며 들어간다.

어느 정도 두 군데 면에 쐐기가 깊게 박히면 그때쯤 나무를 숙여 본다. 전후 좌우 어느 쪽도 괜찮다. 직근이 몇 개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다. 이 부분을 세게 삽날을 세워 기를 모아 쳐주어야 나무는 땅에서 결별된다. 아주 조그마한 자기 땅의 일부분을 남기고 땅과 결별하는 것이다. 하나를 마치면 쉬고 싶다. 그런데 성과가 좋지 않다. 나보다 아이들이 더 허리가 아프다. 힘들다. 난리다. 도리가 없다. 오늘은 그렇게 가기로 한다. 대신 내 몸을 더 부린다.

여자아이가 물을 가져왔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나보다. 아이들은 그 정도에서 마감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는 더 진도를 나간다. 내일 저 아이들이 달라질 것을 기대한다. 내일은 내가 온 몸에 굴신하기 힘든 상태가 될 것임을 안다. 아홉 그루의 나무를 캐고 나서 정리를 한다. 재킷을 찾아 팔에 걸고 돌아선다. 허리가 휘청거리고 목구멍이 아프다. 상태가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내쳐 과학관으로 빠진다. 의관을 정제하고 딴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막걸리를 먹을거나 말거나를 잰다. 일단 힘을 세우기 위하여 차를 마신다. 차 역시 오랜만이다. 내게 차란 이러 지도 저러치도 못할 때 일단 친해진다. 열심히 마시다 보면, 마시는 것도 결국 일이 된다. 그 일을 통하여 또 다른 모색이 떠오를 것이다. 연결이 된다는 것은 아직은 살만한 것이다. 고요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간이 올까봐 내쳐 뛰는 것이 분명하다. 고요함이 번잡함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요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번잡함이 아직 승한 것이다.

허리도 손바닥도 등산화로 가렸던 발바닥도 서툴고 거친 주인 만나 굴신하기 힘들 정도로 아프다.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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