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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길 가에 고개 숙인 채

by 나무에게 2013. 12. 24.

길 가에 고개 숙인 채 / 온형근


여름이 한 풀 꺾이고 있다. 맥문동은 그 자리에서 소리도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여름을 맞이하고 여름을 보낸다. 곧이어 바람이 그 자리를 채운다. 비에 흔들리던 잎은 바람에 의연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그가 피워 낸 꽃이다. 보라빛 고운 꽃이 흔들리고 있다. 여름과의 긴 이별이라 사뭇 건강하게 의연하다.

그늘 속에서도 환하다. 보랏빛이어 더욱 선명하다. 녹색의 잎은 배경일 뿐, 오늘은 잠시 잊고 만다. 꽃을 위하여 가끔은 존재를 놓쳐도 무방하다. 꽃도 무리지어 마주 볼 때, 놀고 떠들며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