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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김육, 잠곡유고 제4권-소차_오현을 종사하기를 청하는 소

by 나무에게 2013. 12. 24.

잠곡유고 제4권    
- 소차(疏箚) 
 
오현(五賢)을 종사(從祀)하기를 청하는 소(疏) 기유년(1609)에 태학생(太學生)으로 있을 적에 올린 것이다.

삼가 신들이 오현(五賢)을 종사하는 일로 피를 토하는 정성을 가지고 개진한 다음 엎드린 채 명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으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성명(成命)이 내려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윤음(綸音)이 한번 내려지자 많은 선비들이 경악하고 있는바, 실로 전하께서 이런 전교를 내리실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성상의 비답에 이르기를, “너희들의 상소를 보니 어진 이를 존숭하는 정성이 참으로 가상하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하께서 이미 다섯 신하의 어짊을 아신 것이며, 신들이 그들을 높이 떠받드는 것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존숭하는 것도 오히려 가상하게 여기시었는데, 하물며 존숭을 받는 자에 대해서겠습니까. 이것으로 미루어본다면 전하께서는 다섯 신하를 존숭하고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무릇 신들이 존숭하는 자에 대해서는 비단 육관(六館)의 선비들만이 존숭하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의 선비들이 존숭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육관의 선비들이 존숭하고 온 나라의 선비들이 존숭하며, 전하께서도 역시 존숭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그 공덕이 문묘(文廟)에 종향(從享)되기에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 어찌 빛나고 빛나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일이 중대하다고 해명하시었습니다. 무릇 종사(從祀)하는 일은 참으로 중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중대하다고 여겨서 끝내 거행하지 않는다면, 천하의 중대한 일이 모두 거행할 만한 때가 없을 것입니다. 다섯 신하의 큰 공과 성대한 덕은 중대한 일이 되기에 충분한데, 전하께서는 오히려 의심을 가지시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시니, 이는 전하께서 한갓 종사하는 것이 중대한 일이라는 것만 알고, 다섯 신하를 종사하지 않는 것이 흠전(欠典)이 된다는 것은 모르시는 것입니다.

선왕께서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자질을 가지시고 도덕을 중하게 여기고 어진 이를 높이 떠받드는 뜻을 가지시어, 어진 이를 높이고 덕을 숭상하는 일이라면 극도로 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신하를 대우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융숭하게 대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높은 관작을 추증하고 아름다운 시호(諡號)를 내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단지 이 종사하는 한 조항에 대해서만은 가벼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거기에 어찌 다른 이유가 있어서겠습니까. 

예를 높여서 그 일을 중하게 하고, 날짜를 오래 끌어서 의논을 격발시킴으로써 다섯 현인의 덕을 더욱더 드러내어 한 세상의 추향(趨向)을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금년에 허락할까 내년에 허락할까 하다가 신하와 백성들이 복이 없어서 선왕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계신 선왕의 혼령이 전하께서 뜻을 이어주기를 바라고 계시지 않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이러한데도 “선왕조에서 미처 거행하지 못한 것을 내가 어찌 감히 가벼이 거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시니, 신들은 실로 성상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무릇 이른바 가벼이 거행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말하였는데 즉시 시행하고, 한 사람이 말하였는데 문득 따르는 것이 그것입니다. 지금 이 다섯 신하에 대한 일은 그 시간을 상고해 보면 수십 년도 넘었고, 사람들의 숫자로 말하면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온 나라 사람들이 수십 년에 걸쳐서 말한 것을 비로소 시행하는 것을 두고 가벼이 시행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전날에 신들이 진소하였을 때 전하께서는 매번 “우선은 뒷날을 기다리라.”고 하교하시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하의 안색이 검고 순모(舜慕)가 바야흐로 간절하여 온갖 기무를 처리함에 있어 미처 겨를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정녕하게 내린 성상의 분부를 받고 공손히 물러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말씀하신 뒷날이라는 것이 바로 오늘이라고 여겼습니다. 지금 이미 그 날이 되었는데 다시 뒷날을 기다리라는 하교가 있으니, 이는 뒷날이 무궁하여서 다섯 신하를 종사할 날이 다시는 없는 것입니다. 말이 이에 미치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전에 이미 대신에게 수의(收議)하였으니, 이는 대신에게 허락한 것이고, 신들에게 조처하겠다는 전교를 내렸으니, 이는 신들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다를 시행하지 않고 갑자기 성명을 도로 거두시었으니, 성상의 이 분부는 한번 내린 명령은 되돌리지 않는다는 데에 누가 될까 염려됩니다.

무릇 다섯 신하의 공덕(功德)의 성대함은 만대토록 우러르고 백대토록 스승으로 삼을 만한 것입니다. 그런즉 비록 성묘(聖廟)에 종사되지 않더라도 참으로 조금도 덜해지거나 깎이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신라(新羅)와 고려(高麗) 때에도 종사한 사람이 있는데, 성조(聖朝)의 성대한 문명으로 훌륭한 선비가 이 나라에 태어난 아름다움이 있는데도 최치원(崔致遠)과 설총(薛聰)의 반열에 올라가 참여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조종들께서 인재를 배양하신 아름다운 덕으로 하여금 마침내 징험할 수 없는 데로 돌아가 버리게 하고 만 것입니다. 아, 이는 사문(斯文)이 망한 것이고 국가의 불행입니다. 어찌 어진 신하가 다섯이나 있는데도 도리어 신라나 고려보다 아래에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날에 사람들의 마음이 어둡고 성인의 길이 황폐해져서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록(利祿)에 대한 마음을 품고, 밝은 이치의 학문을 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명리(名利)의 마당으로 달려나가고 있는 탓에 윤리를 더럽히는 무리와 강상(綱常)을 어지럽히는 역적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뒤를 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이 다섯 신하를 종사하는 예를 속히 거행하지 않은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들은 모두 형편없는 자질을 가진 몸으로 외람되이 성균관 학생의 반열에 끼여 있는 탓에 학문을 함에 있어서 방향을 모르고 말을 함에 있어서 요체를 들 줄 몰라서 한갓 성상의 귀만 시끄럽게 하고, 전하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온 종이에 가득 늘어놓은 말이 한갓 형식적인 데로 돌아가게 되고 말았으며, 전하께서도 역시 이러한 내용으로 답하시었는바, 부끄럽고 황공하여 스스로 용납할 곳이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들의 말을 죄라고 여기지 마시고 오직 어진 이를 존숭하는 의리를 높이 사서 속히 성명을 내려 성대한 의식을 거행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위로는 조종조에서 인재를 배양한 아름다움을 밝혀서 선왕께서 미처 행하지 못하신 뜻을 이루고, 아래로는 온 나라의 공론을 펴서 풍속이 무너진 것을 변하게 하소서. 그럴 경우 어찌 한갓 사문(斯文)만의 다행이겠습니까. 실로 국가의 다행일 것입니다. 신들은 격절하고 두려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주C-001]오현(五賢) : 문경공(文敬公)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문정공(文正公)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문원공(文元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문순공(文純公)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가리킨다. 이 다섯 사람을 문묘에 종사하자는 논의는, 선조 원년(1568)에 태학생 홍인헌(洪仁憲)이 상소를 올려 조광조를 문묘에 종사하기를 청하고 대사간 백인걸(白仁傑)이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등 사현(四賢)을 종사하기를 청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이황이 죽은 뒤에는 이황까지 아울러 오현을 종사하자는 의논이 발론되었는데, 광해군 2년(1610)에 삼사(三司)와 경외의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자 대신에게 수의(收議)한 다음 종사하였다. 《燃藜室記述 別集 卷三 祀典典故》

[주D-001]육관(六館) : 국자감(國子監)의 별칭으로, 성균관을 가리킨다. 당(唐)나라의 제도에 국자감이 국자학(國子學), 태학(太學), 사문학(四門學), 율학(律學), 서학(書學), 산학(算學)을 거느렸으므로, 이를 통칭하여 육관이라 하였다.

[주D-002]순모(舜慕) : 부모를 그리는 마음을 말한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대효(大孝)는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나니, 50세까지 부모를 사모하는 것을 나는 대순(大舜)에게서 보았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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