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와함께

다시 그 숲으로 들고 싶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다시 그 숲으로 들고 싶다 / 온형근

아침숲을 나설 때마다 반가운 얼굴이 있다. 무언가 촐랑거리며 반갑게 달려드는 레트리버이다. 이 놈은 시카고에서 비행기로 왔기에 이름도 살던 곳 시카고라 지었다. 시카고란 놈은 새벽에 내가 인기척만 내도 벌써 함께 나설 채비를 하고 기다리는가 보다. 형표보다 먼저 한 식구가 되어 있으니 꽤 오래된 식구이다. 그러니까 덕평리라는 전원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지내는 3년동안 함께 있던 여럿 중 유일하게 다시 데리고 온 농장의 흔적이다. 시카고가 이제는 형표와도 함께 어울리고 논다. 신통하게도 시카고는 주인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하다.

진도개는 자기 주인만 아는 억척스러움이 있어 개를 좋아하는 내 경우에도 진도개(사실은 그 잡종들)가 있는 집에서는 함부로 발을 떼지 않는다. 물론 묶여 있다면 괜찮지만 말이다. 시카고는 그런 면에서는 절대 무용지물한 개이기도 하다. 인간과 친밀하게 지내도록 한 육종의 결과라 할 수 있을까. 시카고와 함께 있으면 아무 뜻 없이 복종의 눈빛을 보내 온다. 나는 내가 어찌 너를 복종시키겠는가. 그저 네가 나를 따르면 나 또한 아무 의미 없이 너를 받아들이고, 그러면 곧 복종의 섭리에 가깝지 않겠는가 하고 지긋이 눈짓을 준다.

겨울 새벽 숲에는 항상 코를 짓누르는 한기와 함께 가슴을 씻어내 주는 바람이 짙다. 이러한 바람으로 인해 자꾸 새벽을 찾는다. 안해가 천식으로 찬바람을 절대 쐬면 안되게 되었다. 어쩐지 집안의 모든 구석이 먼지가 가득한 것 같고, 나까지 기침이 심해져 이젠 천식이라는 병에 대한 상식과 응급처치 방법까지 강구하게 될 정도로 식구들의 천식에 대한 지식이 한결 나아졌다. 처음에는 기침하는게 무슨 병일까 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 지나고 보니 주변에 그렇게 천식에 걸린 사람이 많고, 천식에 좋다는 약도 많은 것을 보니 말이다.

이제는 가을이 되면 은행알을 꼭 모아 두었다가 안해가 복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하겠다. 지난 가을에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는데, 내가 안해의 기침을 제법 조신하게 가지지 않았나 보다. 시카고는 늘 그렇게 앞서지도 않고 아주 뒤서지도 않으면서 나와 함께 숲으로 든다. 숲으로 가는 길에 더러 골프를 치는 차들이 지나면 그 차를 피해 내 뒤에 마치 어린 아이들이 엄마와 걷다가 개를 보면 엄마 치마 뒤에 숨듯, 이 시카고란 개는 차만 보면 내 뒤에 그렇게 숨는다. 우스운 놈이다. 그리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동족의 개이다. 사람이나 차가 나타나면 내 뒤에 숨지만 동족의 개가 나타나면 내 달려뛰어 집으로 숨는다. 물론 돌아올 길일 경우에만....

시카고도 아침 산책을 하고 싶은가 보다. 늘 새벽이면 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 내가 나오기를 마냥 기다린다. 산의 부름에 달려나가다가도 이젠 이 놈을 산책시키려 내가 불려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혼자는 산책도 나가지 않는 이런 개를 멍청하다고 말해야 할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인을 따라 나서면 활발하고 생동하는 것을 어찌 내가 외면할 수 있을까? 생명있는 모든 것들이 활발하고 거리낌 없이 살 수 있는 활력으로 넘칠 때 세상은 좀 더 점잖고 아름다운 조화로 가득차지 않을까.

숲으로 나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것 또한 하나의 풍미이다. 바람결에 숲의 유혹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이런 사색이 있기에 새벽의 산행은 하루에 한 번씩 풋풋한 그리움을 씻어주기에 유익하기만 하다. 유익과 불유익을 따져 뭘하겠냐마는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호젓하게 가질 수 있어서 마냥 즐겁다. 오늘 아침에는 가득 흰눈이 내려 길도 미끄럽겠지만 나의 숲은 따뜻한 솜옷을 입은 듯 마냥 차분하게 가라 앉아 어서 오라고 한끗 더 소리 죽여 나를 부르겠지. 아주 적적한 날일수록 그 숲으로 가는 것은 살아있음의 숙연한 이치이리.

'::나무와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의 하소연  (0) 2013.12.24
리기다소나무 숲으로  (0) 2013.12.24
숲에서의 반성적 사유  (0) 2013.12.24
봄을 영접하다  (0) 2013.12.24
양동마을에서 만난 복자기 나무  (0) 201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