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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나무의 하소연

by 나무에게 2013. 12. 24.

나무의 하소연 / 온형근



나무는 말하고 싶을 때가 많다. 자기가 사는 곳과 나무로서의 삶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자신을 비출 거울을 찾고 있다. 숲 속에서 나무는 자기가 품고 있는 무량의 잎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숱한 생명들과의 의사소통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무는 묵묵히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

어느 곳에 사느냐는 물론 기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니, 반대로 나무 역시 그 기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서로가 서로에게 삼투압처럼 영향을 주고받는다. 최근에 무차별한 개발과 공업화로 끝없이 사막화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중국의 경우처럼 나무의 존재 여부는 개체에서 집단과 우주에까지 그 역할과 형태가 일직선으로 확산되는 실존이다. 황사가 실재이듯 나무는 실존이다.

나무는 뿌리로 물을 빨아들이고 잎으로 수증기를 방출한다. 따라서 숲과 그 주변지역은 보통 풀밭보다 습도가 높다. 사람들은 농경지와 거주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또는 목재를 얻기 위해서 산림을 개간해 왔다. 따라서 기상을 건조시켰다. 나무는 모여 숲을 이루고, 숲은 바람의 속도를 줄여 모래의 이동을 줄인다. 결국 나무는 모래로 뒤덮인 사막의 토질을 변화시켜 황무지를 경작지로 바꾸게 한다. 마술이 아니라 이 역시 나무가 지닌 실존이다.

나무의 구조는 햇빛을 최대한 받아들이게끔 되어있다. 나무들은 빛을 찾아 서로 다툴 뿐 아니라 한 개의 나뭇잎까지도 각각 햇빛을 찾아 경쟁을 벌인다. 경쟁이라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이들 나무의 구조는 결국 떡갈나무나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와 소나무 같은 침엽수로 갈라져 위도에 따라 사는 곳을 달리하고 있다. 어떤 곳에 어떤 류의 나무들이 더 많이 분포하고 있느냐는 자연이 결정한다.

위도가 높은 지역의 지축의 경사는 결국 침엽수의 가는잎이 햇빛을 잘 받게끔 돕는다. 바늘같은 소나무나 전나무의 잎들은 햇빛이 비스듬히 비치는 지역에서 모든 각도의 빛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기 좋도록 기능을 하고, 또 바늘 모양의 잎은 평평한 잎보다도 수분의 방출량이 적다. 햇빛이 많은 지역에서는 잎이 넓고 큰 활엽수들이 유리하게 살듯, 사계절마다 기후가 크게 다른 우리의 나무들은 그만큼 다양한 나무들의 모습과 형태와 종류가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의 기후 조건에 좌우되는 이러한 나무들의 구조는 결국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그저 신비한 자연의 현상으로만 보인다. 경쟁을 줄이고 기후에 영향을 받으며 또 반대로 기후에 영향을 주며 분포되어 있는 나무들에게 숲 속의 엄청난 생명 있는 것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햇빛이 많은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여름의 비가 너무 많이 온 해이기도 하다. 이 계절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계절은 또 다른 옷을 입고 새로운 바람을 가져와 여름의 기후를 몰아간다. 멈출 수 없는 것이 살아있음이니 살아있는 동안은 반복되며 흘러갈 것이다. 벌써 바람의 냄새가 다르다. 나무들의 하소연 소리가 다르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가 더욱 바빠지게 들리는 것도 나무들이 성록의 잔치가 끝났음을 통보해주는 전령의 역할임을 알게 된다.

희뿌연 아침을 바라보며 나무들은 예고한다. 오늘 또 한참이나 더운 날이라고, 노고가 많은 날이라고 각오를 다진다. 그러면서 일면 아쉬워한다. 사람들이 내 그늘을 찾기보다는 에어콘과 선풍기의 콘크리트 빌딩 안에 더 머물고 있다. 내 그늘에 나불대며 노닥거리기를 바란다. 세월과 문명이 달라져 가고 있는 세태에 동급의 가치를 주고받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날벌레 기어다니고 가끔씩 가지에서 떨어져 놀라며 소리지르는 나무그늘에서의 추억을 잊고 산다. 추억 속에는 있지만 생활에는 없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그 기후에 맞추어 서로 영향을 주며 교류하고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한때 뜨겁게 달아올랐다가도 언제 식었는지 모르는 것 사람이라. 이제는 나무의 그늘이 필요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이조차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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