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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내가 살아 있는 부분은 나무처럼

by 나무에게 2013. 12. 24.

내가 살아 있는 부분은 나무처럼 / 온형근



내가 살아있는 부분은 나무가 몸뚱이의 껍질과 목재의 형성층에서 만나 생명을 지니고 있듯, 아주 미량의 규정되어지지 않은 어떤 흔적들이다. 나무는 다른 생물에 비해 생명이 길다. 몇 백년을 살아간다. 그 큰 나무의 전체 용량은 엄청나다. 그러나 실제 살아 있다고 생물학적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부분은 나무 용량의 극히 작은 미량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제 몸의 역사 기록소에 차분히 기록하면서 묵묵히 제 삶을 산다.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나무치고는 삶의 부분이 너무 작은 것이다.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살아있는 나무의 부분으로 성실하게 자신의 몸뚱이를 지탱하는 것은 어쩌면 훌륭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 우주가 있다고 한다. 우주의 수많은 생명 있는 것들 속에 또 우주가 있다. 어쩌면 세상에는 숱하게 많은 우주들이 있고 그 우주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가 되게끔 되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극미량의 살아있음을 위해, 제 임무를 마친 초대량의 죽어있음이 지탱하는 나무처럼, 사람도 어쩌면 살아있는 정신을 위해 정말 많은 부분을 죽이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살아있는 부분은 나무의 경우처럼 작은 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있어 나의 죽어있는 전체가 함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사람도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아주 작은 양의 혼을 보살피며 끝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나무의 활력처럼 사람도 자신의 새 살을 돋게 하는 부지런함과 맑은 정신이 있다면, 몸뚱이를 초개같이 버릴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삶을 지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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