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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숲은 천이를 갖는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숲은 천이를 갖는다 / 온형근



천이라는 게 있다. 숲이나 생태계에서 긴 시간 동안에 걸쳐 일어나는 자연적인 변화를 말한다. 산불이 난 곳을 인공적으로 조림하고 가꾸고 하는 것을 산림 경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적인 경영 개념을 대입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자연은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의 흐름에 편승한다. 숲의 천이과정이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망초, 개망초, 뚝새풀, 꽃다지, 바랭이와 같은 한해살이풀들이 빠르게 자리 잡는다. 그 다음해에는 쑥, 토끼풀, 억새처럼 여러해살이풀들이 한해살이풀들 틈으로 들어온다. 한마디로 쑥대밭이 되는 것이다. 곧 이어 싸리나무류나 찔레나무, 진달래와 같은 관목들이 차츰 자리를 잡는다. 이때쯤이면 소나무 씨가 솔방울에서 터져 나오는 큰 힘으로 날아 퍼져 소나무가 발아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숲은 여기 저기 소나무 숲이 된다. 한해살이풀은 여러해살이풀에게, 여러해살이풀은 관목들에게, 관목들은 소나무에게 지상의 태양을 맡긴다.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은 밀리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내 일이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해 내야 한다. 내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함께 이루지 못하는 일이라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천이의 과정이다. 할 수 없는 일, 내려와야 할 일, 밀려나야 할 일이다.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붙잡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다. 일정 부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나 역시 붙잡혀 있는 것이다. 가치가 무의미할 때는 내가 하는 일 또한 무의미하다. 일의 기준이 없다면 하는 일 모두는 남의 일이고 바깥 세상이다. 다만 처세만 득세한다. 얼굴빛 훤하고 세련된 말투면 두루 통한다? 그렇기만 하다면 가치나 기준이 없어도 된다. 일그러진 얼굴과 거친 말투로도 통하지 않기에 가치와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시급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양보하는 미덕이다. 자신의 생각을 집단과 주변의 흐름에 실어 내는 것이다. 여기서도 방향과 목표가 우선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면 곤란하다. 방향과 목표가 있으니까 가치와 기준이 있다. 코앞에서는 근사한 표정으로 긍정하고, 돌아서서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긍정한 것을 부정하는 세태다. 의도적인 산림 경영의 기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소나무 숲은 서서히 참나무류에게 자리를 빼앗기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영원하지 않다. 참나무류도 오래도록 패권을 누리지 못한다. 참나무류가 득세할 때 그 밑에서 참나무류잎의 거름진 토양에서 잉태되는 나무가 있다. 참나무류 숲 그늘 밑의 서어나무나 박달나무이다. 이들은 참나무류보다 더 높이 솟는다. 이제 숲은 또 다른 주인을 만난다. 100년에서 200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숲이 변하는 모습의 일부만 볼 수 있다.

자연의 방향과 목표는 너무 커서 만져지거나 볼 수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집단에서는 방향과 목표가 만져지고 보인다. 이 또한 거추장스러워 그냥 살아가는 것이 가장 깨우친 삶이라고들 한다. 숲에서의 천이는 긴 시간 서서히 이루어진다. 급작스럽거나 일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관찰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재미는 시시때때로 관찰되어지며 반성하는 데 있다. 반성이 없다면 사람살이가 아니다. 낯빛 좋은 얼굴로 좋은 말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만 중요할까? 하지만 여러 사람의 좋은 삶을 위하여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소나무 시대가 끝나고 참나무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아니면 참나무류 시대가 끝나고 서어나무나 박달나무 시대가 솟아오르고 있다. 내가 속한 곳이 어딘지 정확하지 않다. 혹시 싸리나무류나 찔레나무, 진달래의 터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도 지상을 딛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천이과정에 대한 믿음이 커져 받아들일 것에 대한 유연성이 커져 있다는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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