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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막걸리집 하나 얻기가

by 나무에게 2013. 12. 23.

막걸리집 하나 얻기가

막걸리집 하나 얻기가 참 힘들다. 삼삼하고 불편하지 않고 안면이 트이지 않는 곳을 하나 찾는다. 그런 막걸리집에서 만난 글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도연명의 동리채국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채국동리로 시작되는 글이다. 왜 나는 동리채국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도연명은 술을 마시고 이 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시에는 술 酒자가 한 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시 전면에 음주의 풍경이 진하다.

다음과 같은 시이다.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초막을 치고 인가 근방에 살아도,
而無去馬喧(이무거마훤) 거마의 시끄러움을 모르겠더라.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그대에게 묻노라, 어째서 그러함인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 속세에서 멀어지면, 사는 거기가 곧 외진 곳이거니.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밑에 핀 국화를 따노라니,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유연히 남산이 눈에 비쳐오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기는 아침 저녁으로 아름다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새는 물물이 날아든다.
此間有眞意(차간유진의) 이 사이 자연의 도리가 있으니,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말하고자 하여도 말을 잊었노라.

- 陶淵明

해석이 영 시원찮다. "초가를 지어 마을에 살고 있으니 수레의 시끄러움도 없네 묻노니 그대는 어찌해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머니 땅이 절로 외지구나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서 고요히 남산을 바라보네 산의 기운 저녁이라 아름다운데 나르는 새들도 서로 짝지어 돌아가네 이런 속에 참된 뜻 들어 있으니 말로 표현하고자 해도 이미 말을 잊었네"

도연명의 음주 25수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이라지만 음주라는 말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여기서 돋보이는 게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이다. 왜 하필 동쪽 울타리인가. 동쪽 울타리의 국화라. 국화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술 한 잔 걸치고 멀리 산을 바라본다. 저절로 산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 짙은 외로움이 술 한 잔의 기운에 산 그득히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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