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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시의 풍경을 거닐다

만휴정 외다리

by 나무에게 2024. 4. 2.

안동 만휴정 원림

만휴정 외다리

 

 

온형근

 

 

 

   만휴정 오르내리는 냇길 둑마다

   개나리 노란 꽃눈 울먹이며 터지려 안달이다.

   금방이라도 망울 터트려 가슴을 활짝 펼칠 기세

 

   내 집의 보물은 청렴과 결백

   바위글씨 새겨진 너럭바위에

   비스듬히 누워 손을 괸 채 풍류에 든다.

   너럭바위 다가선 거대한 흑갈색 암반을 한 송이 진달래꽃이 벋댄다.

 

   산자락 아래로 부는 바람이

   왼쪽 어깨를 툭 치길래 돌린 고개

   거기 그 자리에 작은 생강나무

   천지인의 세상에 나온 첫 꽃망울인 듯 다소곳이 물길을 내려다본다.

   오른쪽 어깨 저편 둑길에 핀 환한 생강나무

   제법 굵은 줄기에 생동이라는 문장을 반점으로 새겼다.

 

   천 년 억겁을 지닌 너럭바위의 품은

   산맥의 암반과 마주친 곳에 골 하나 내준다.

   물길이 빠른 몸놀림으로 소리 내며 흐른다.

   꼭 내주는 데로 흐르라고 댓잎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처럼 낮으면서 명료한 음조로 사뢴다.

   한쪽만 내주고 흘러도 금방 바다를 이룬다.

   급하게 휘몰던 가마솥 소 위에 외다리 가로지른다.

 

   만휴정 외다리가 은하수 건너는 바다처럼 칠흑을 버릴 때

   맑은 물은 ‘보백당 만휴정 천석’에 달이 뜨고 맴돌다 부딪히며 창창해진다.

   이쯤 되면 청백리는 세상을 잊고 선계에 머물 수밖에

   송암 폭포가 가마솥 물을 조용히 모았다 쏟아내는 것을

 

   만휴정 정자 마루 조금씩 삐그덕대며 울어도

   맨발에 전해지는 결 푸른 나무 질감으로

   마음 긁힌 서정일랑 잊으라고 물소리 찰랑하다.

   맞은편 와석을 대로 삼은 내려다보는 만휴정은

   산 아래 둑길로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저녁 어스름 한가득하다.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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