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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순해진 화홍문

by 나무에게 2013. 12. 23.

순해진 화홍문

하필 억수로 쏟아지는 빗 속에 놓여 있었다.
성을 따라 걷는데
흙을 튀어 오르게 하는 비는
우산이 미안할 정도였다.

바지끝이 젖어
무겁게 허리띠를 잡아 내리고 있었다.

튀어 오른 흙은
맨발의 구두 틈을 비집고
발바닥에서 돌을 굴리고 있다.

작지만
엄청난 바위로 인식되어지는 세계였다.

오랜만의 성벽에서
성안과 성밖을 생각한다.

화홍문 마루바닥에 맨발이 서 있다.
폭포처럼 물소리가 우렁차게 시원하다.

방화수류정에 일군의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다.
화홍문 쪽으로 또는 폭포의 포말쪽으로 셔터음이 터진다.

다시 걷는다.
내가 걸었던 곳들을 되찾고 있다.

비오는 날의 정취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정취에 이끌려 다녔다.
비가 왔었고 그 빗 속에 내가 놓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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