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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학교 과수원

by 나무에게 2015. 7. 6.

 

그래서 확보된 곳이 학교 과수원이었다.

핀오크 1-0묘를 94년 봄에 이식할 수 있었다. 새로운 줄을 띄워 상을 만들고 내가 맡은 5학급 학생 모두 봄철 내내 묘목 옮겨심기 실습을 하였다. 식재 완료하니 벌써 5월이었다. 그을린 얼굴 속에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뿌듯한 마음을 뒤로 하고 바쁘게 뛰었던 프로젝트를 접고 실습 이후의 이론 정리와 과제 수업에 매진한다. 그럴 즈음에 달려와서 큰일 났다고 알려준 사람은 다름아닌 초지 전담반의 분뇨 처리 당사자였다. 분뇨를 뿌리면서도 아니다 싶어서 내게 알려준 것이다. 고마웠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불협화음과 불통의 연속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핀오크 1-0묘를 식재한 곳에 트랙터 바퀴로 짓밟으면 분뇨를 뿌리게 한 것은 조직 문화가 아니다. 같은 직장에서 도저히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된 것이다. 아무도 그 이후의 일에 대하여 더 문제삼지 않았다. 어찌하다 보니 공공의 목적으로 자영농 육성의 목표로 학교 교육 과정이 운영되는 소위 '동양 최대의 학교'에서 그 일은 내 개인의 일로 외면되었다. 모두들 권력을 가진 사람의 눈치만 보고 외면했다.

 

수습하고 재식재하는 과정은 산만했다.

눈에 띄지도 않았다. 고운 자식같은 핀오크가 어디에 심겨졌고 누가 얻어 나갔는지 막힌 귀에는 들려오지 않는다. 기록하는 일을 멈췄다. 더 이상의 사진 촬영은 없었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의 몸통은 학교 과수원 소유권에 관련되어 있다. 땅 소유자가 학교가 아니라는 말이 돌았다. 그리하여 땅 소유자의 잇속에 따라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뇨를 뿌리고 초지로는 활용한다? 학교 소유 아닌 땅을 왜 학교 과수원이라 불렀으며, 거기에 초지를 조성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이미 내가 파헤칠 일의 범위를 넘어섰다.

어떤 경로와 방법으로 소유자가 학교에서 개인으로 둔갑하였는지 알 수 없다. 3년차 전입교사에게 사정에 밝은 선임교사들의 침묵은 충분히 폐쇄적 권력 조직을 지향했던 것이다. 당시를 호흡하던 서로의 울타리였을 것이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교사로서의 자긍심이 오버랩되면서 한 시절이 영위된 것일게다. 트랙터 바퀴에 짓밟혀 벗겨지고 부러진 핀오크를 제외한 얼마 남은 나무는 그렇게 학교의 여기 저기에 심겨졌다. 

출처 : :::사이SAI:::조경문화교육공동체
글쓴이 : 나무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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