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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양동마을에서 만난 복자기 나무

by 나무에게 2013. 12. 24.

양동마을에서 만난 복자기 나무 / 온형근

 

 

 

왼쪽 위와 아래 : 니콘 카메라,  오른쪽 아래 : 휴대폰

[양동마을에서 만난 복자기 나무]

첫 발령을 받은 곳은 이천농고다. 임업과가 있었다. 나는 산림측량, 임업경영, 조림, 측수, 사방 및 산림토목, 조경을 가르쳤다. 과목이 많은 셈이었다. 그러면서 묘포장을 운영했다. 학교의 느티나무를 86 아시안게임에 납품하기도 했다. 그때는 모든 게 공부였다. 늘 하던대로 공부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두 가지가 삶의 전부였다. 아마 술을 더 마셨을 것이다. 술로 인하여 맺은 인연은 대학 때부터 사회에까지 이어졌다. 그 끈끈한 연결의 순수함에서 늘 행복했다. 요즘은 술로 인한 인연이 모두 끊겨 가는 것을 느낀다. 떨어져 나간다고 표현한 고대 심우경 교수님의 말처럼. 그렇게 하나 둘 씩 떨어져 나간다. 그렇다고 술 마시지 않으며 시간을 함께 보낼 인연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세상살이에 이미 깊게 발을 들여 놓았다. 아직도 인연을 따라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가? 그럴 것이다. 다만 드러내지 않으니 다행이다.

자생식물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 당시는 아직 자생수목 생산이라는 화두가 생겨나지 않았을 때다. 그렇게 몇 사람을 규합하고 학생들과 함께 주로 오대산을 다녔다. 그리고 광릉수목원과 서울대 안양 수목원, 천리포 수목원 등등을 전전했다. 황벽나무, 층층나무, 복자기가 주된 수종이었다. 그외에도 음나무라든가 많은 수종들이 있지만, 특히 이 3 수종의 종자 채취량이 많았다. 복자기는 분명히 2년만에 싹을 틔웠다. 그 나무가 수원농고에 근무하던 어느날, 경기도 교육연구원 정원에 심겨졌음을 알게 되었다. 이천 농고의 나무들을 사가신 분이 당시 이천 설봉중학교 교감이었고, 그 분은 교육연구원의 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그 나무를 심게 된 것이다. 나중에 그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채취한 나무의 종자가 싹을 틔워 한 사람 건너 길러지다, 그곳으로 시집을 오게 된 것이다. 오며 가며 그 나무를 바라볼 수 있었다. 복자기 말고도 참느릅나무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그 분은 이천 교육청 교육장으로 정년을 하신다.

그 꿈과 같은 시절이 지났다. 막연히 뜨거운 열정 하나로 산천을 해매던 시절이 그립다. 떠오르는 햇살과 지는 햇살을 동시에 보면서 출퇴근을 하는데...요즘은 유난히 그 시절의 열정이 내가 만나는 햇살을 닮아 있음을 생각해낸다. 늘 그리워하고 있다. 무실역행이고, 행복한 삶이었다.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기도 했다. 몸을 움직여 돈을 벌어야 그 돈이 진짜 돈이라고 했다. 공덕을 쌓는 일은 제 몸을 움직이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한다. 공덕 중에 공덕이 나무 씨앗을 파종하여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엊그제 따 온 측백나무 종자를 보면서 그 생각을 흐믓해 한다. 책을 찾아봐야 할 테지만, 측백나무도 종류가 꽤 많다는 사실을 흘린다. 그 복자기나무를 만났다. 양동마을 안에서 슬쩍 만난다. 꿈처럼 툭 던져진 만남이라고 해야 하나. 카메라가 없어 휴대폰으로 찍는다. 나중에 니콘 카메라로 다시 찍었다.

한국주택관리신문, 2010년 1월호 원고 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