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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질량이 다른 대관령 옛길

by 나무에게 2013. 12. 24.

01. 다시 초단위 변화로 돌아와서

변덕이라고 하지요. 감성의 극심한 변화와 함께 찾아오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경험하곤 합니다. 심리학적으로는 조울이라고도 하던데, 나는 이 말을 무척이나 싫어하지요. 조울증이 뭔가 자세히 살펴보기로 합니다. 조울증은 외적 자극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의 내적인 요인에 의해서 상당기간 우울하거나 들뜨는 기분이 지속되는 정신장애라고 합니다. 기분이 저조하며 우울한 상태를 우울증(depression)이라고 하고, 들뜨고 몹시 좋은 상태를 조증(mania)이라고 하며 이런 증상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조증만 있는 경우나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경우를 모두 조울증이라고 부릅니다. 조증의 진단은 미국의 진단분류 4판(DSM-IV)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비정상적으로 의기양양하거나 과대하거나 과민한 기분이 적어도 1주간(만약 입원이 필요하다면 기간과 상관없이) 지속되는 분명한 기간이 있다.
2) 기분장해의 기간 도중 다음 중 세 가지 이상이 지속되며(기분이 과민한 상태라면 4가지) 심각한 정도로 나타난다.
  ① 팽창된 자존심 또는 심하게 과장된 자신감
  ② 수면에 대한 욕구 감소
  ③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계속 말을 하게 됨
  ④ 사고의 비약 또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는 주관적인 경험
  ⑤ 주의 산만(중요하지 않거나 관계없는 외적자극에 너무 쉽게 주의가 끌림)
  ⑥ 목표 지향적 활동의 증가(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사회적 또는 성적 활동) 또는 정신운동성 초조
  ⑦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쾌락적인 활동에 지나치게 몰두(예-흥청망청 물건 사기, 무분별한 성행위, 어리석은 사업투자)
3), 4), 5) 생략........어떤 것에 내가 마킹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떠 올리면 판정이 나올지도 모르지요. 분명한 것은 이럴 때 밭에서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신성하다는 것입니다. 나이 먹고도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 할 텐데, 그런 일로 목공을 추천받곤 합니다. 그런데 나는 목공일에 사용되는 기계에 또한 기가 꺾이는 것을 경험합니다. 왠지 모를 겁부터 부쩍 나는 것을 목격하고 맙니다.

이번 답사 직전의 내 정신 상태가 이러했습니다. 아니, 이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지 않았습지요. 허공에 매달려 있는 느슨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간신히 답사를 마치고 나서야 답사라는 행위 자체를 한동안 잊고 살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정신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나의 초단위로 변화는 감상 역시 조울에 비교되지 않는 독특하면서 독립된 개체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던 것이지요. 기분이라는 게 뭘까요? 氣를 나누는 것을 말하잖아요. 국어 사전에 보면 기분 [ 氣分 ] [명사]은,

1. 대상, 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기의1(氣意).
2.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
3. <한의학>원기의 방면을 혈분(血分)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로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 모두가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기가 나누어지는 것이 기분인데, 그 나뉘어진 것이 어느 정도 지속되는 것이라잖아요. 그러니 대관령 옛길을 걸으면서 계곡과 숲의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힘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초단위의 감정의 변화 따위는 언감생심 자리잡을 위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지요. 초단위 변화무쌍의 감상을 우려할 게 아니라, 이를 통한 세상을 바꾸는 힘을 찾아보는 것이 오히려 조울을 극복하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심심하구나! 함께 놀아주어야 하는데, 어쩌지 내가 답사로 대관령에 나와 있으니 말이야.”

심심하여 전화를 한 친구에게 답사 나온 친구가 답한 말입니다. 친절하고 고마운 마음씀씀이가 녹아 있지 않나요? 나도 심심할 때, 그 친구에게 전화하면 이런 대답을 해줄까요? 심심한 기운이 가득하고 지속될 때는 다시 초단위 변화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게 어떨까요. 그게 변덕이면 어떻고, 조울증이면 어때요? 분명한 것은 심심할 때, 놀아줄 사람이 필요한데, 누가 심심하게 기다렸다가 남의 심심함과 만나겠느냐는 것이지요.

02. 강릉 친구들

나와 함께 옛길을 오르던 친구들을 떠올려 봅니다. 괜히 말을 걸어보고, 뭣하러 길을 나섰냐고 묻곤 했지요.

강ㅎㅁ
왕얽이 짚신 신고 무과 급제보러 그 길을 나섰다네요. 근데, 이 친구 과거보다는 함께 길 나선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는 재미에 더 빠져 있더라고요. 신체는 작아 보이는 듯 하면서도 태산같고 믿음이 앞서는데, 아직 뼈가 굳어지지 않았는지 연해 보이더군요. 더 여물기만 하면 한 밑천 한양에서 크게 쥐고 다시 대굴령 길을 말타고 내려올 수 있겠는데, 무관보다는 한양에서 물장사를 하면 더 잘 할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이 친구 넉살은 나이를 넘어서더군요. 충효로운 기개가 있었어요. 아마 대굴령 옛길 숲길에서 그는 산을 닮아 있었지요.

박ㅅㅁ
시집을 가는 것이라고 했나요? 다신 강릉을 넘어 오지 못할 생각이 들긴 했나요. 한양만 가면 다신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나요. 마음 속에 대굴령 옛길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느라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숲길을 산책하듯 그렇게 오르셨나요. 계곡물에 조심스럽게 발을 담그면서 붓기를 빼느라고 조용했나요. 이 친구 아무래도 옛길을 오른 후, 함께 내려오는 게 아니라 그 길로 더 멀리 열심히 걸어 가라고 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돌아갈 곳이 많아서 정붙일 곳이 많아서 여즉 산책 중인지 모르지요. 그래도 다음 답사에는 또 만날 수 있겠지요.

정ㅁㄹ
부었다가 붓기가 가라 앉고 졸다가는 다시 멀쩡하더니 옛길에서 싱글벙글, 유구만 남아 있는 주막집 근처에서는 그저 째지라고 좋아하더니 기어코 그 숲길에서 살고지자고 하지 않았나요.

신ㅈㅅ
바다가 보이는 펜션을 짓기 위해 자재를 구하러 가는 길이었나요. 남해에서 동해로 돌아, 그예 한양을 들려 둘러보고 내려가기 위한 길이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숲길을 향해 나아갈 때, 숲에서 다시 바다로 돌아갈 때, 그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요.

전ㅇㅇ
보고이고, 보배인 지식으로 과거보러 떠난 선비들을 한 자리에서 후련하게 해 주느라 산길이 산길 같지 않았겠지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공부가 아닌데, 살아 있는 그 공부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국토를 걸었겠어요. 얼마나 많은 곳을 주말마다 다녔겠어요. 오며 가며 먹고 마신 공기와 나무와 숲이 그에게는 명상이었겠지요.

안ㅎㅈ
자기가 직접 ‘저는 처 자식 먹여 살리려고 길을 가는 보부상이었습니다.’라고 썼네요. 보부상 치고는 가방이 가벼워 보였어요. 아마 긴요하고 비싼 물건을 무역하는 사람인 듯 하였습니다. 아님,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처럼 여기는 사람을 만나려고 길을 떠났는지도 모르지요. 많이 팔았으면 또 바꾸어서 대굴령 옛길로 되돌아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가족이 무척 많다고 했나요. 큰 돈을 벌어서 뜻을 펼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발걸음마저 가볍게 보였으니까요.

염ㅊ
생각이 있는데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아마 함께 가는 사람들의 물건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는 듯한, 어쩌면 주막의 옹이아주머이의 사주를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어요.

문ㅎㅈ
‘글구, 설계쟁이 생각에. . 주막터가 너무 작아 으아 했습니다.
최소한, 웅이아주머니 거처, 부엌, 평상 2개, 나그네 방 2개쯤 . . . . . 될까?‘
아마 집짓는 사람과 친한 게 분명했습니다. 숲에서 집을 이야기하고, 계곡에서 길을 이야기하다, 그 집 마당에 놓여야 할 놋대야까지 세고 있을 게 분명했어요. 그렇다면 한양의 큰 장사치를 세상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지요.

이ㅇ
어떤 달의 마지막 날에는 꼭 생각나는 사람, 어쩌면 밝은 날보다는 어둑해진 저자거리에 서성대고 있을 재주 있는 소개꾼 같았어요. 궁금한 것을 못 참는 것인지, 말을 시켜 보고 싶은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인지 잘 모를 정도로 손쉽게 사람을 사귀네요. 옛길을 오르면서도 다정하고, 옛길로 되돌아 와서도 만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 아마 한양길에 결혼할 색시라도 구할 참이었지 않았나 싶어요. 

원ㅇㅎ
숨차게 물어보면 싫어할지 모른다고 하네요. 그래서 물어보는 것과 대답하는 것 사이에는 서로의 향이 묻어나는 법이라고 했지요. 원주사람이라는데, 왜 강릉에서 옛길을 오르고 있었을까요? 강원도의 인물을 조선시대에 3등분하면 초기에는 강릉, 중기에는 원주, 후기에는 춘천이 빼어났다고 하던데요. 아마 강릉에 살다가 원주로 넘어가는 중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시험이 있다고 했는데, 공부는 제대로 하였는지 모르겠네요.

03. 질량이 다른 숲길

대굴령 옛길은 그랬습니다. 대관령 국사 서낭당까지 가고 싶었지만 아스팔트에 놀라 그만 마치고 말았지요. 대관령 국사 서낭은 신라시대의 범일 국사가 죽어서 된 수호신이라고 믿어지고 있지요. 이 국사 서낭이 정씨 집 딸에게 장가를 가고 싶었는데, 거절하여 호랑이를 보내 딸을 데려오게 하여 혼례를 올렸다는 곳이 대관령 국사 서낭이지요. 대관령 국사 서낭이 지켜주어서인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아무 병화를 입지 않았다고 하네요. 당시로는 옛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였겠지요. 지금이야 다르지만, 아무튼 '동대문 밖은 강릉'이라는 말이 있습지요. 서울의 동대문에서 나서면 동해안까지 따로 강릉 말고는 쳐 줄 만한 곳이 달리 없다는 이야기지요. 그만큼 유서깊고 역사와 문화와 전통의 통이 큰 곳이기도 하겠지요.

대관령 옛길은 숲길이지만 질감이 달랐습니다. 특히 중간 즈음에서 펼쳐지는 바닥에서는 신발을 벗고 싶었지요. 귀한 손님 온다고 마당까지 쓸어 두었더군요. 주막 근처였나요? ‘맞이마당’이라고 했나요? 아아...‘마중마당’이라고 했네요. 주택에서는 ‘마중마당’이어야 할 것이고, 주막 같은 불특정 손님이 찾아오는 곳은 ‘맞이마당’이 더 어울리겠네요. 옛길의 빗자루 자국이 기억이 납니다.

경복궁 옆에 대금의 이생강과 함께 피아노로 연주한 임동창의 부인이 사는 ‘효재’라는 집이 있습니다. 왜 부인이 사는 집이라 하면, 임동창은 아주 자주 집을 비우고 전국을 돌아다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부인인 효재씨가 가끔 남편을 찾아 온갖 반찬과 필요한 물품을 형형색색 보자기에 싸서 찾아가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임동창씨가 부인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더군요. 그런 효재씨를 어떤 이는 ‘천상 계집’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말투 하나에서 손으로 머리 매만지는 것까지도 천상 계집이라고 하더라고요. 연기자 김혜자라는 ‘천상 계집’인 사람이 그렇게 그를 표현하더군요.

헌데 이 ‘효재’라는 집 마당이 그렇더군요. 마사토를 깔아 두고, 귀한 손님이 오거나 오지 않더라도 마당을 쓸어 놓는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일본의 고산수식 정원의 모습을 띠면서 말입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생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예전에 마당을 쓸어본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마당을 쓸면 빗자루 자국이 마당에 박힐 정도였지요. 박박 문질렀다고 표현하면 될까요. 그런 상태에서 손님을 기다렸지요. ‘얘야! 마당 쓸어라, 귀한 손님 온다.’ 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은 저절로 돌아갔지요.

‘맞이마당’이든, ‘마중마당’이든 마사토를 풀어서 긁어 놓은 듯 한 고산수식에 가까운 질감보다는, 밟히고 또 밟혀서 딱딱하기 이를데 없는 마당에 몽당싸릿비로 박박 문질러 놓는 빗자루질, 그런 느낌이 내 유년의 기억에는 더 다정다감하고 의미가 있네요. 그 마당으로 누가 알아요. 고운 치마 가볍게 들고 흰 고무신 코가 슬쩍 다가올지 말이요. 얼른 빗자루 챙겨 얼굴 훔쳐보지도 못하고 냅다 도망갈지라도 말이요. 그러고는 한 쪽 낮은 담에 숨어서 지켜보아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바라볼 낮은 담도 대청이나 안방을 향하여 하나쯤은 만들어 두어야겠지요. 내친김에 춘향전의 한 부분을 살펴봅니다.

" 춘향의 집을 차례로 살펴 보니, 사면 팔 자, 입 구 자로 기둥 높은 대문, 안사랑에 안팎 중문, 줄행랑이 즐비하고...... 뒷동산에 정자 짓고, 앞 연못에 연꽃을 심어 두고, 돌 다듬어 면을 맞춰 층층계단 쌓았구나. 쌍이 있는 오리며, 징경이, ...... 금붕어는 물 위에 둥실 떠서 이리로 출렁 저리로 꿈틀 노는구나. 삼층 꽃층계 살펴 보니 동쪽에 매화, 서쪽에 국화, 남쪽에 붉은 국화, 북쪽에 금빛 오죽, 가운데 황색 국화. 예쁘구나 산국화는 좌우에 벌여 있다. 노송, 반송, 계수나무와 왜철쭉, 진달래, 민들레 인물이 일색이다. 봉선화, 석류, 들쭉, 종려, 모란, 작약, 치자, 동백이며 키가 큰 파초 잎과 춘매, 동매, 분도, 포도, 영산홍과 원추리, 구기자는 휘드러져 굽이굽이 얽혀 있다.::춘향전, 경판 30장본::"

04. 옛길, 옛사람

누가 알았겠어요. 대굴령 옛길에 빗자루 자국이 진하게 남아 있는 싱싱한 질감의 바닥을 맛볼 수 있었을지 말이요. 그걸 누가 숲길이라고 하겠어요. 산길이라고 할까요. 옛길 또한 이미 아니지 않나요. 사람들이 오고 가고 찾고 떠나는 그런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계곡물이 길따라 길게 이어지며 세월을 녹이는 그저 사람의 길, 그러면서 굳이 말한다면 사람의 흔적으로 기분이 좋은 길, 그래서 옛길이면서 숲길이고 산길이며, 사람의 길이었다고 보면 될까요? 조선시대에는 시서화에 능하던 문인들이 마음속으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런 것을 의경을 품었다고 하지요. 마음속에 품은 의경을 자유로이 표현하여 상상의 정원을 글과 그림으로 완성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표암 강세황의 처남으로 서화에 능했던 유경종이라는 사람이 '의원지'를 쓰면서 의원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네요.

"의원意園이란 것은 마음에 꾸며 본 원이다. 원을 실제 만들지 않고 마음에 먼저 꾸미는 것을 할 필요가 있는가? 마음에 그려 보니 원이 곧바로 내 눈앞에 나타나 하나하나 또렷하다. 원을 실제로 소유한 자는 그 마음속에 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원을 마음에 꾸며 본 자가 원을 실제로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두 경우 모두 문제가 있다. 그래도 마음에도 없는 원을 소유한 자보다는 차라리 실제로 원은 없지만 마음에 꾸미는 자가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별 자체가 망상이다. 한 세상 사는 인생인데, 그 누군들 잠깐 살 곳을 빌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구구하게 실제와 허구를 구별할 필요가 있으랴! :: 유경종, '의원지'::"

이런 의원의 마음으로 옛길을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옛사람이 그리워지더군요. 강원도를 부르는 말로 '암하노불'이라는 말이 있어요. 곧 바위 밑의 늙은 부처라는 뜻이지요. 세속에 잘 말려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좋은 자연 속에서 초자연스러운 경지를 보는 고장 또는 사람이라는 말도 되겠지요. 그러한 초자연스러움의 덕분인지, 세속스러운 잣대로 보았을 때 이 강원도에 파격스런 인물이 많았다고 합니다. 김시습, 이달,허균, 허날설헌으로 이어지는 분명히 파격스러운 인맥의 인간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밖에도 강원도 철원 언저리에서 활동한 임꺽정과 춘천의 소양강을 무대로 한 흑두건의 이야기까지 있지요. 파격의 격조라고나 할까요.

이 강원도의 여자들도 대단하지요. 시대의 혁명아, 불우한 삶을 천적으로 지녔던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은 어떻습니까. 동생인 허균에 의해 중국에서 그 여류문학을 먼저 알린 분이지요. 어쩌면 허난설헌과 대조를 이루는 사람이 신사임당이지요. 이 두 여자가 비슷한 시기에 강릉에서 태어났다는 것이지요. 누가 그러네요. 자유당 시절 이기붕의 아내로 세도를 부리던 박마리아도 강릉 출신이라고요. 옛길과 옛사람을 떠올리면서 파격성은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강릉에 와서는 이러한 파격스러움이 영동을 특징지워주는 것이라 여겨지기도 하네요.

옛길과 옛사람을 떠올리면, 선교장이 다시 떠오릅니다. 예전에 몇 번 다녀온 곳이지만 이번에 갔을 때는 참으로 많이 달라졌습니다. 집들도 많이 지어졌고요. 동별당과 열화당은 한국의 출판사 이름 중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곳에 속하기도 하지요. 이 선교장은 오죽헌과 경포대 사이의 북쪽에 들어앉아 있는 이 고장 양반의 으뜸가는 '아흔아홉칸'짜리 집이기도 하지요. 조선 후기 대표적 양반 주택이지요. 이곳이 오죽헌과 묶여져 강릉의 관광자원으로 둔갑하고 있는 셈이지요. 거기다가 초당두부집까지 들이닥쳐 있더군요. 사실 선교장 앞은 경포 호수가 더 넓었던 무렵에는 배를 타고 드나들었다고 하지요. 이런 고즈넉한 분위기는 깨지고 말았지요. 선교장 문 앞까지 길을 닦아 큰 차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한 것은 누구의 편의일까요. 선교장 앞 옛길과 고즈넉한 옛사람의 자취 대신 초당두붓집의 상혼만 넘실대고 있더군요.

05. 찬물, 뜨거운 식사

아침을 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찬물에 뜨거운 밥을 얹었습니다. 다들 잘 들어갔느냐는 인사들이 오가는 동안에도 몸을 추스르기 어려웠습니다. 여기 저기서 ‘회장님, 예전 모습 보이네요.’ 하는 건강에 대한 기대와 ‘앞으로는 제가 챙길 것입니다.’의 우려가 섞여 나오더군요. 그러나 나는 괜찮습니다. 견딜만큼 견딜 수 있는 몸을 지녔습니다.  다만 초단위로 변화하는 내 자신을 추스르는 게 우선임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극심한 유쾌함에 들뜨는 일보다는 우울 쪽이 더 심하게 비중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주변에 슬쩍 사람들을 떠 보니, 제 나이 위 아래로 남자들이 조울이 심하더군요. 보통 여자들은 이것을 변덕이라고 하는데, 그까짓 변덕이라고 해봤자, 죽끓기 정도이지 않나요. 내 변덕은 초단위로 바뀐다니까요.

‘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버려야 돌아가는 게 아니겠나요?’
‘그래도 그렇게 변덕을 부려 좋을 게 뭐가 있겠어.’
‘변덕이 아니라니까요. 초단위의 변화라니까요.’
‘그게 그 말이지 뭐야.’
이런 혼자말을 중얼거려봅니다.

초단위의 변화로 세상을 바꾸고, 버릴 수 있는 것은 가려 버리고, 제대로 아구 맞춰 돌게 하면, 돌다보면 제 길로 접어들게 아닙니까. 설사 그러다 샛길로 새면, 새는 것을 안 순간 바꾸어 돌리고, 다시 돌리다 보면 질량이 다른 대관령 옛길 같은 곳도 만날 수 있겠지요. 이 정도면 거의 조울의 중증이지요? 임동창에 대하여 좀 더 말할까요. 주워 들은 이야기에 그럴 것이다는 내 동의의 관점이 함께 섞입니다. 그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악보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진정한 재능이 아니며 서양음악의 노예가 되지 말고 창조적으로 자신의 화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론의 소유자입니다. 누가 노예가 되고 싶겠어요. 노예인 줄 모르고 사니까 노예이지요. 알면 누가 노예 하겠어요.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화음이라는 게 있고, 만들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일까요. 옛길에서 그런 생각을 더 했지요. 옛사람은 중국을 공부하였어도 결국 중국을 버리고 자기 것을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진정한 재능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게 공부의 길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가 음악과 인연을 맺은지는 어언 35년째라네요. 중학생 시절 병을 앓고 피아노와 인연을 맺었다고요. 일명 '피아노 신(神)내림'을 받았다고 하네요. ‘피아노와 신내림?’ 어때요? 잘 어울리나요. 그런 사람입니다. 요즘 가끔 신내림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봅니다. 독학으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며 고민과 번뇌를 거듭했고 출가에 이르기도 했답니다.

클래식, 재즈, 국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색다른 해석을 통해 자신만의 소리를 완성했는데, 그게 바로 '허튼 가락'과 '허튼 연주'라는 것입니다. 파격적인 즉흥연주 중에 피아노 건반 뿐 아니라 놋그릇이나 주변사물을 타악기처럼 두드리고 흥에 겨우면 고함을 내지르는 것까지 포함되지요. 임동창은 '그냥' 사는게 풍류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할 게 없구나. 놀기만 하면 되는 것을 .....‘ 이게 그의 말입니다. 논다는 것은 삶을 흐르게 두는 것이고 바람과 하나 되는 숨결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삶을 흐르게 두어 바람을 느끼고, 호흡을 느끼며, 숨결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옛길에서 옛사람들이 생각해 낸 깊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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