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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01.무량수를 빤히 바라본다 - 관악산 연주암

by 나무에게 2014. 1. 15.




001.무량수를 빤히 바라본다 - 관악산 연주암 / 온형근



연주암 종무소에는 추사의 무량수無量壽 

현판이 걸려 있다. 한참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유한한 삶을 살면서 무한을 꿈꾸고 이야기하는 게 속세이고 그 속에 속인이 산다. 너도 나도 속인이고 먼지와 티끌같은 꿈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랑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고 무겁게 자신을 이끌고 있다. 그러니 무량수라는 말은 셀 수 없는 수명이 되고자 하는 염원일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살아야 몇 살인지 셀 수 없는 나이가 될까. 그러나 그게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수량이 없는 거라고 항변한다. 셀 수 없는 나이까지 오래 살고 싶은 마음보다는 살아가는 일이 수명을 세는 게 아니라는 말로 대신한다. 그러니 훨씬 글씨가 예뻐보이고 그럴 듯 해지면서 친근한 이웃처럼 다가온다. 살아가는 일은 수명을 따지는 게 아니다.


연말이라 종무소에서 달력을 챙겨 들었다. 

연주암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연주대의 사진이 있고 사찰 달력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난 달력 보시다. 불기 2558년, 단기 4347년, 서기 2014년 모두 크게 보인다. 대라는 것은 넓은 바위터나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는 넓은 터를 일컫는다. 경포대, 해운대, 연무대 등등 높은 곳에서 파노라마로 전체의 경관이 잡히듯 보이는 위치에서 이름을 하나씩 가지는 것들이다. 그러니 대라는 말을 얻어 듣는다는 것은 행운이다. 이런 장소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명 놀이를 하는 행위 또한 인간의 행위 중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행위일 것이다. 연주대戀主臺는 연민 그 자체라는 뜻이다. 무엇에 대한 연민일까. 그 무엇에 집착하지 말자. 무엇이면 어떠랴. 연민이 있어야 사람인 것이다.


등산객은 따스한 햇살에 삶을 내려놓는다.

관악산 등산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마루에 걸쳐 앉아 서로 인사 나누고 격려하고 호기심을 나눈다. 남자와 여자가 스스럼 없이 서로 어울린다.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안면이 열려 있다. 오히려 나처럼 드문드문한 사람을 자꾸 쳐다보고 있다. 간단한 차와 먹을 것들을 나누면서 올라오는 동안의 생각이 사람들 틈에서 새롭게 정리된다. 어느 사찰에 이처럼 등산객이 줄지어 마루에 걸쳐서 장관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연주암의 연민만이 가능한 일이다. 대체 엉덩이를 걸쳐 앉을 수 있는 마루 정도의 높이에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하는 걸까. 나도 내 엉덩이를 그곳에 얹어본다. 이 높이에 걸터 앉는 이 행위에 대하여 지극히 만족하면서 꿈꾸듯 멀리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이곳이 연주암이라는 분주하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자유분방한 기운의 사찰인 것이다. 그래서 아까운 곳이다. 늘 곁에 있어주고 싶은 곳이다.